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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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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32)-세 줄기의 밀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 유니스 윤경남 옮김

 

 

 

(지난 호에 이어)

 

<삽화: 조반니노 과레스키>

 

 

 

세 줄기의 밀


 밤 사이 어디선가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 들판을 휩쓸더니, 물이 흠뻑 배인 땅을 얼려 놓았다. 돈 까밀로는 빼뽀네의 코고는 소리에 제일 먼저 눈을 떴다. 기다란 고드름이 창문에 가지런히 매달려 있었고, 큰 난로에서는 아늑하고 따뜻한 불기운이 새어 나왔다.


 여덟 명의 동료들은 전날 마신 술과 여흥에 지쳐서 임시로 만든 잠자리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누워 잠에 골아 떨어져 있었다. 돈 까밀로도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옷을 입은 채 잠이 들었고, 빼뽀네는 그의 침대 옆자리에 누워 있었다.


“저 친구가 저렇게 염치없이 코를 골지만 않았어도, 나는 저 친구에게 꽤나 두통거리를 안겨준 걸 후회했을 텐데.”


돈 까밀로는 혼자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고 인원을 세어 보았다. 오리고프 동무와 페트로프나 동무 빼고는 모두 그곳에 모여 있었다. 카피체 동무는 아직도 그의 멍든 눈자위 위에 젖은 압박 붕대를 올려놓고 있었다.


“예수님,” 


돈 까밀로가 말했다.


“이 가엾은 친구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고 암흑 같은 저들 위에 빛을 비춰 주소서.”


돈 까밀로는 침대 가에 걸터앉아 신발을 신으려고 했다. 왼쪽 신은 제대로 신었는데 오른쪽 신발이 땅바닥에 꽉 붙어 있었다. 신발끈이 마루 틈 사이에 박혀버린 모양이었다. 그가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확 잡아채자 빼뽀네의 코고는 소리도 뚝 멈추었다. 이 우연의 일치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었다. 돈 까밀로의 신발끈이 빼뽀네의 발목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무, ”


돈 까밀로가 빼뽀네에게 비난하는 어조로 말했다. “왜 나를 믿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구려.”


“내가 뻔히 눈 뜨고 있는 동안에도 속임수를 썼는데, 내가 눈 감고 자는 동안엔 무슨 짓을 할는지 누가 알겠소?”


그들은 문 밖에 있는 펌프장으로 세수하러 나갔다. 얼음장같이 찬바람이 그들의 볼을 에는 듯 했고, 초가집 안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집 안에만 박혀있는 듯했다. 그러나 갑자기 산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큰 트럭이 도착하자 오리고프 동무와 지방관리 일단이 그 차를 맞으러 현장에 나타났다. 


빼뽀네와 돈 까밀로도 그들 틈에 끼었다. 한 소년이 트럭에서 뛰어내리더니 모터 사이클 내리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운전 기사가 차에서 내려와 오리고프 동무에게 보고하는 모양이었다. 그 운전 기사가 그의 털 코트 깃을 아래로 내리자, 그가 다름아닌 소비에트 시민 보도니 임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소년은 그레비네크로 부품을 구하러 모터 사이클을 타고 가버렸다. 이제 방문객을 태우고 온 버스 기사는 페트로프나 동무를 동반하고 다음에 할 일을 알아보러 왔다.


“걱정 마세요.”


페트로프나가 빼뽀네에게 말했다. 이미 오리고프 동무와 보도니가 잠깐 의논을 나눈 다음이었다.


“필요한 부품이 도착하는 대로 버스는 곧 수리하게 될 것입니다.” 


“버스를 여기서 끌어야 하지 않을까요?” 빼뽀네가 물었다. 


“그건 안 됩니다.” 페트로프나가 그에게 말했다.


“길은 온통 살얼음판인데다가 트럭은 너무 가벼워서 바퀴가 얼음 위에 꽉 붙어있질 못합니다. 아무튼 바로 수리하러 올 겁니다.”


“나는 기계공이오.” 빼뽀네가 말했다.


“내게 작업복을 한 벌 준다면 내가 기꺼이 손을 봐주겠소.” 


오리고프 동무는 이 말을 듣고 아주 기뻐했다. 그래서 페트로프나 동무는 빼뽀네에게 작업복 한 벌을 마련해 주겠다고 말했다.


“두 벌을 준비해 주시지요.” 빼뽀네가 말했다.


 “여기 있는 타롯치 동무도 기계를 만질 줄 아니까, 우린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오리고프 동무는 이 계획에 찬성하고, 모터 사이클에 올라타고 이웃에 있는 드레빙카 마을로 횡 하니 사라졌다. 그곳에서 그는 그들이 어쩔 수 없이 늦어진 이유를 상부에 전화로 보고할 참이었다.


 “동무,” 빼뽀네가 페트로프나 동무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동무가 나머지 일행을 책임지게 됩니다. 일행 중에서 누군가 벗어나는 행동을 하거든 주저하지 말고 기강을 잡으시오. 특별히 스카못지아를 주의하도록 하시오.

그 사람은 말썽꾸러기니까 말이오.”


“나는 밤새도록 스카못지아 동무가 나한테 모욕을 준 일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페트로프나가 대답했다.


“스카못지아 동무는 내게 해명을 해야 합니다.”


그녀의 두 눈동자 속에 차가운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폴리의 이발사가 시간을 내어 그녀의 머리를 새로 나온 퍼머약으로 퍼머를 해주었기 때문에 그녀의 표정은 곧 부드러워 보였다.


“나도 그걸 의심치 않네.” 돈 까밀로가 대답했다.


“정치에 관해서라면 여성들은 언제나 극단론자가 되는 법이니까.”


트럭을 타고 가는 동안 보도니는 전혀 입을 떼지 않은 채, 두 이태리 출신 사람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한다는 듯이 행동했다. 버스 기사는 차 뒤쪽으로 기어올라가 잠에 골아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보도니는 굳이 말할 기회를 찾지 않았다.


보도니는 필요한 연장들을 모두 가지고 왔다. 그래서 그들 일행이 그 꼼짝도 않는 버스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가를 알아냈다. 버스 뒤쪽은 들어 올리기가 쉬웠지만, 얼음판에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차 밑에 널빤지를 깔 필요가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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