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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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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28)

 

 

그는 그러한 표정들을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나디아 페트로프나 동무가 문 앞에 나타났다. 


“일이 잘 되어갑니까?” 그녀가 물었다.


“모든 일이 완벽하게 되어갑니다.” 돈 까밀로가 말했다.


“우리는 소비에트 시민 스테반 보도니같이 유능한 안내자를 우리에게 배당해 주신 것에 대해 오라 고프 동무에게 대단히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빼뽀네가 집주인과 손을 흔들며 악수하고 문으로 걸어가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돈 까밀로는 그 집에서 제일 나중에 나왔다. 그는 문지방에서 몸을 돌리면서 십자가의 성호를 그었다.


“Pax vobiscum,” 그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노부인의 눈이 이에 응답하는 듯이 말했다. “아멘” 

 

비가 멎다


방문객 계획표에 명백하게 기록된 것처럼, 원래 그들은 그레비네크 마을의 콜호즈에 점심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자발적으로 베풀어 주는 호의는 그들 사이에 어떤 열기마저 불어 넣었다. 


빼뽀네는 조심스럽게 돈 까밀로를 그의 옆에 앉도록 배려했고, 돈 까밀로는 빼뽀네의 귀에 대고 뭔가 속삭이고 있었다.


“동무, 나는 무엇이나 자기 나라 것보다 남의 나라 물건이 더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오. 그러나 이 양배추 수프만은 우리네 부르조아가 먹는 스파게티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네그려.”


“동무” 빼뽀네가 중얼거렸다.


“동무가 오늘 아침에 피운 재주 때문에, 동무는 삶아놓은 손톱과 비소로 만든 국을 먹어야 하는 건데.”


“이 국도 그 국만큼이나 맛있는 걸.” 돈 까밀로가 대꾸하며 말했다.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보드카와 구운 양고기는 아주 맛깔스러웠다. 빼뽀네가 틀에 박힌 인사말을 했으며, 이에 대해서 오리고프 동무도 똑같이 틀에 박힌 답변을 보냈다. 다행히 돈 까밀로는 두 잔의 독주와 마음 훈훈해지는 오늘 아침의 일들에 들떠 있었고 아주 최고의 기분 속에 잠겨있었다. 


그가 맑스, 레닌, 흐루시초프의 말을 인용하여 열변을 토로하자, 나디아 페트로프나 동무는 그 말을 통역하면서 황홀경에 빠졌고, 오리고프 동무의 두 눈은 반사된 빛으로 인해 더욱 빛났다.


돈 까밀로가 그 콜호즈 농장에 대해 마치 살아서 숨쉬는 존재인 것처럼 실감나게 말해주자, 청중들은 마치 그들이 행복하고 중요한 인민들이라는 듯 새삼스러운 만족감을 얻었다. 


돈 까밀로가 극적인 결론을 내린 다음, 오리고프 동무가 벌떡 일어서더니 그의 손을 아래 위로 올렸다 내렸다 흔들어대고 두들겨대며 말했다.


“오리고프 동무 말씀이, 우리 당은 농촌 선전을 위해서 동무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페트로프나 동무가 돈 까밀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동무가 이곳에 머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는 러시아어 학습 과정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오리고프 동무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주시오.” 돈 까밀로가 대답했다.


“고향에 돌아가서 아내와 아이들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에 동무의 제의를 받아들이겠소.”


“동무는 동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소유할 수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페트로프나 동무가 그에게 확신을 주듯이 말했다.


“동무가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할 것입니다.” 보드카 몇 병이 식탁 위에 더 올랐다. 그래서 방문객들은 오후 내내 자리를 뜨지 않았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도로는 진창길이 되었고, 버스는 시동을 거는데 힘이 들었다. 5마일쯤 가자 ‘붉은 깃발’ 소브코스로 가는 교차로가 나왔다. 관개 수로의 운하가 넘쳐 흘러 도로는 15인치나 물 속에 잠겨버렸다. 


오라고프 동무의 허락을 받고 운전사는 티피즈 쪽으로 좌회전을 했다. 두 시간 동안 트럭은 좁고 구불구불하기는 해도 바닥이 단단한 오솔길을 굴러갔다. 운이 나쁘게도 비가 다시 내렸고 운전사는 또 다른 고통을 겪어야 했다. 


버스는 빗길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길 아래로 굴러 떨어질뻔했으며 브레이크를 건 채 계속 달렸기 때문에 결국 변속기어가 고장 나고 말았다. 비는 그칠 것 갔지 않았는데 어둠이 덮이기 시작했다. 


티피즈 마을은 그곳에서 이삼 마일 밖이었으므로 운전사를 먼저 보내서 트랙터나 견인 트럭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기사는 좋지 않은 소식만 전했다. 티피즈 마을에 있는 한 대의 기계는 곡식 창고에 배속되어 있었다. 이런 사정은 현재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티피즈에 있는 콜호즈는 전화가 없어 고통을 받는 단지 6퍼센트 속에 들어가므로, 방문단은 남은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을 등에 업고, 발목까지 빠지는 진창길을 철벅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이 마을 또한 전기가 없어 불행한 단지 8퍼센트 속에 들어 있었으므로, 환영하는 사람의 모습은 하나도 볼 수가 없었다.


평의회의 회의실은 건초가 든 부대자루로 꽉 차있었다. 오리고프 동무는 전 같지 않게 무겁고 엄숙한 음성으로 자루들을 당장 치우라고 명령을 내렸다. 빗자루를 든 한 떼의 남자들이 청소를 끝내자, 방문객들은 그 먼지를 모두 뒤집어 쓴 채 방 한쪽에 몰려 있었다. 


방 안에는 램프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돈 까밀로는 자신이 소작농민인 타반 동무 바로 옆에 서있는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사기를 떨구는 일에 즉시 착수했다.


그는 빼뽀네에게 들릴 정도로 말했다. 


“내가 오늘 아침에 농민에 관해서 동무에게 말한 것 기억하겠지요? 정부가 직접 경영하는 소브코스는 모든 일이 능률적으로 돌아가고 있소.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 일을 직접 처리하는 이 콜호즈에선 온통 재난뿐이오. 트럭과 트랙터는 꿈쩍도 않고 있으며, 회의실은 창고로 쓰이고 있지요.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요. 전쟁이 끝나고 농가를 많이 지은 삐오빼떼에서 동무는 무얼 발견했지요? 감자는 목욕탕 속에, 땔감나무와 병아리들은 차고 속에, 그런가 하면 트럭과 트랙터들은 노천에서 녹슬고 있고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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