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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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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16)

 

 

 

(지난 호에 이어) 


스카못지아가 항의했다.


“동무는 어딘가 자본주의자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실수했군요, 동무. 동무가 나를 도와줄 의사가 있으시다면, 난 자기 반성을 하겠소.”


페트로프나 동무는 이 솔직한 말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앉으세요, 동무.”


그녀는 엄격한 자세를 조금도 버리지 않고 말했다. “동무의 이야기 좀 들려 주세요.”


“내 이름은 나니 스카못지아요. 나이는 스물 여덟이고 내가 성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공산당원이 되었소. 나는 스쿠터를 판매도 하고 수리도 합니다.”


“스쿠터가 뭔가요?”


그는 주머니에서 자기 사진을 한 장 꺼냈다. 그 사진엔 그가 흰 작업복 차림으로 베스타에 올라 앉아있는 건장한 모습이 보였다.


“이런 것이지요.” 그가 말했다.


“누구든지 한 대씩은 가지고 있지요.”


“정말 재미있군요. 동무의 식구들은 모두 당원입니까?”


“나의 아버지는 레그혼 지구 당원이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오. 누이는 의복 제조업자 노동조합의 세포 조직 지도자요.”


“동무의 부인은요?”


“동무, 내가 결혼한 남자같이 보이나요?”


 “하지만 그렇게 많은 여자와의 가능성을 두고 무엇 때문에 한 여자에게 매입니까?”


그녀는 이 말에 본능적으로 움칠했다.


“그게 바로 부르조아 정신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 예입니다. 자본주의자들만이 여성들을 가지고 노는 노리개로 취급하며 이용하지요. 사회주의 체제에선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지위와 존엄성을 갖습니다.”


“동무, 내가 표현을 잘못한 것 같군요. 내 말은, 일하기 싫어하고 정치적인 신념이나 사회적인 원칙 같은 게 없이 사는 그런 종류의 여성들을 말한 겁니다. 그런 여성들은 존엄성도 없고 따라서 권리도 없지요.”


“알겠습니다.”


그녀가 말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당원은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가정을 가져야 하며 새로운 당원을 또 키워내야 합니다.”


“동무, 나도 그 말엔 동의해요. 하지만 우린 당신네와는 아주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요. 이기심과 위선이 가득 차있는 그런 곳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신부들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들에게 순종합니다. 그들 중에도 또 많은 여성들이 성직자의 밀정들이라서 남자는 자기 발걸음을 조심한답니다.”


“훌륭한 여성 당원은 모르시나요?” 


“아니, 많이 알고 있지요.” 그는 지친듯한 몸짓을 하며 말했다.


  그녀는 스카못지아를 엄격하게 바라보았다. “동무 나이엔 여자가 필요하지요.”


“아마 모두 내 잘못이겠지만 마음에 드는 여성은 하나도 없더군요.”


“믿어지질 않는데요, 동무. 정말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요?”


“아니, 한 둘은 있겠지요. 그러나 그 여성들은 결혼했고요.” 


페트로프나 동무는 잠시 동안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사태가 심각한 걸 난 알 수 있어요, 동무. 그러나 동무는 그 사태를 똑바로 보고 있질 않습니다.”


 “동무!”


 그는 방어선을 늦추면서 말했다.


“세월은 흘러갑니다. 우리에겐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이 있고, 갖가지 꽃들이 우리 둘레에서 피어나고 공중엔 노래 소리가 울리고, 우리가 마시게 될 좋은 포도주가 있어요. 그래서 영원히 젊게 산다는 환상에 젖지요. 우리나라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왔지요”


 “동무!” 그녀가 말을 가로겠다.


“그건 이단이요! 신에게 축복을 받았다든가 저주를 받은 나라는 없습니다. 신은 존재하질 않아요!”


“알고 있어요. 그건 다 못된 신부들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와 성당들 때문이고요. 한데도 우린 왠지 하느님이 실제로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되거든요.”


“동무, 동무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에요.”


“동무 말이 맞을 거요. 그런데 동무는 내게 이야기할 때 내 눈을 바라봐 줄 수 없겠소?”


‘나는 스탈린과 같은 과오를 저질러선 안 된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짐했다.


“동무는 러시아 사람과 이태리 사람이 같은 언어를 쓰리라고 기대하진 않겠지요? 모든 나라는 각기 다른 그 나라 특유의 기후와 관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개의 열쇠로 모든 자물통을 열 수는 없습니다.”


스카못지아 동무가 그녀의 생각을 흔들어 놓았다.


“동무 이야기나 좀 들어 봅시다.” 그가 제의했다.


“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여성입니다.” 그녀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당원이며 관청의 관광국 직원이지요. 나이는 26세. 모스코바에 살고 있고요.”


“혼자 살고 있습니까?”


“아니요, 불행히도 그렇진 못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저는 두 여자와 한 방을 쓰고 있지요. 하지만 불평할 이유는 없어요.”


“나도 불평하진 않겠어요.” 스카못지아가 큰 소리로 말했다. 페트로프나 동무가 놀랐다는 듯이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에요?”


“난 동무가 남성 동무와 함께 살고 있구나 생각했지요. 그래서 동무가 두 여성과 살고 있단 말을 들으니 기쁜 것이 당연하지요.”


그녀는 계속해서 스카못지아를 쳐다보았다. “나는 동무의 말을 못 알아 듣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부끄러운 거짓말이었다. 그녀가 스카못지아의 사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그녀의 핸드백 속에 슬쩍 밀어 넣었다는 사실로 보아 확실히 알 수가 있었다. 아무리 공산주의 사상에 철저히 물이 든 사람이라고 해도 인간의 연약함엔 어쩔 수 없는 법인가 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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