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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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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9)

 

(지난 호에 이어)
그가 책을 주머니 속에 다시 넣자 빼뽀네가 말을 걸어왔다.


 “매우 좋은 책이겠군요.” 


“최고의 책이오.” 돈 까밀로가 말했다.


“레닌의 말씀을 모아서 만든 어록이니까요.”


그리고 한 번 읽어 보도록 책을 건네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불어로 써 있어서 참 안됐소. 하지만 자네가 듣고 싶은 부분은 번역해서 들려 줄 수가 있네.”


“그럴 건 없소, 동무.” 빼뽀네는 책을 그에게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그 책의 임자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 보고는, 다른 동료들이 졸거나 만화잡지를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책의 겉 표지는 붉은 색이었고, 《Pensees de L’enine》이라는 불어가 쓰여 있었지만 사실은 그 책이 라틴어로 된 매일 기도서 이었음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첫 번째 역에 도착하자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스가못지아 동무가 포도주 한 병을 들고 왔고, 론델라 동무는 저녁 신문의 호외 뭉치를 들고 왔다. 그는 호외를 들여다 보더니 혐오감을 느끼는지 고개를 저었다. 신문 1면에는 흐루시초프가 미국에서 마지막 날에 찍은 사진들과 그를 둘러싼 군중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실려 있었다. 


“난 뭐가 뭔지 모르겠군.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이 웃고 있는 얼간이들 속에서 흐루시초프 동무가 함께 웃고 서있는 모양은 비위가 틀려서 더 이상 못 보겠소.”


“정치란 건 두뇌가 문제지, 감정이 문제되는 건 아니지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평화의 공존을 성취하려고 여태껏 노력해왔소. 냉전 이데올로기를 키워온 자본주의자들은, 웃을 자격도 없는 자들이오. 냉전의 결말은 자본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테니까 말이오.”


그러나 론텔라는 밀라노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고집을 세우며 말했다.


“다 좋아요. 하지만 난 자본주의자들을 싫어한다고 말할 권리가 있소. 그리고 그자들과 함께 웃다가 잡히느니 차라리 죽는 꼴을 보여주는 게 낫겠소.” 


“동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권리가 물론 있소. 그러나 우리 앞에서 말하지 말고 흐루시초프에게 가서 말해 보시오. 우리 그 양반을 만나자고 해서 이렇게 말해 보시오. ‘흐루시초프 동무, 동무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이오.”


돈 까밀로는 교활할 대로 교활해진 공산당 첩자만큼이나 교활했다. 론델라 동무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동무는 나를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할 겁니다.”


그가 항의하며 말했다.


“만약 내가 밭을 기름지게 하기 위해서 비료를 써야 한다고 칩시다. 난 비료를 쓰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나보고 비료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강제로 말하게 할 순 없습니다.”


“동무,”


돈 까밀로가 조용히 말했다.


“동무는 빨치산들과 싸운 적이 있겠지. 동무가 위험한 곳에 들어 가도록 명령 받았을 땐 어떻게 했나?”


“명령대로 했지요.”


“그렇다면 동무는 동지들한테 내 생명을 걸고 싸우는 일은 비위 틀리는 일이라고 말했소?”


“물론 그런 말은 안 했지요. 그러나 그게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냉전이건 열전이건 전쟁은 전쟁이란 말이오, 동무. 그리고 대의 명분이 있어서 싸우는 사람에겐 자신의 견해를 고집할 여유가 없는 법이오.”


“그 얘긴 그만 집어치워요, 론델라 동무.” 빼뽀네가 끼어 들었다.


“우린 지금 동무가 자본주의자들과 맞부딪치지 않아도 되는 나라로 가고 있소. 그것만은 분명하오.” 


“그래서 난 기분이 아주 좋다오.”


론텔라는 그 점을 인정했다.


“내가 가장 다행이라고 여기는 일은,” 스카뭇지아가 말을 꺼냈다.


“2주일 동안 우리가 신부를 통 만나지 않게 되는 일이오.” 돈 까밀로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동무, 그 일에 관해서 전혀 확신할 수 없소. 소비에트 연방엔 종교의 자유가 있잖소?”


“종교의 자유라구요? 하! 하!” 스카못지아가 비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말라구! 소비에트 연방은 자유를 진지하게 생각하니까.” 


“그곳에도 신부가 있다는 얘긴가요? 그 더러운 종자가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거요?”


“가난과 무지가 사라지는 날, 그것도 추방되겠지요?” 빼뽀네가 끼어들었다.


“가난과 무지가 저 까마귀 제복의 무리들에겐 먹을 것이며 마실 것이니까요.”


그러나 돈 까밀로는 전보다 더욱 냉정하고 엄숙해졌다. 


“상원의원 동무, 소비에트 연방에는 무지와 가난이 이미 없어졌다는 사실을 동무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소. 만약 아직도 그곳에 신부가 있다면, 그건 아직까지 극복할 길이 없는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이오.”


“그 사람들이 무얼 갖고 있단 얘깁니까?” 스카못지아가 소리쳤다.


“그들도 우리처럼 살과 피로 되어있지 않단 말이오?”


“아니오,”


빼뽀네가 큰 소리로 대꾸했다.


“사제들은 지구의 찌꺼기들이오. 그들은 비겁자, 위선자, 탈취자, 도둑놈 그리고 암살자들이오. 독사도 오히려 물릴까 두려워 신부를 피할 겁니다.”


“상원의원 동무, 말이 너무 지나치군요.” 돈 까밀로가 말했다.


“동무의 그 모욕적인 발언은 아주 개인적인 게 분명하오. 말씀 해보시지, 동무에게 비열하게 구는 신부라도 있는지?”


“내게 비열한 짓 할 수 있는 신부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소.” 빼뽀네가 항변했다.


“동무에게 세례를 베푼 신부는 어떤가요?”


“그때 난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었소.” 


“그러면 동무를 결혼시켜준 신부는 어떤가요?” 돈 까밀로가 물고 늘어졌다.


“지도자 동무, 그 사람과 싸우지 마십시오.” 스카못지아가 웃으며 말했다.


“이 동무는 변증법적이고 따지기 좋아하는 유형입니다. 항상 결론 지을 말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는 돈 까밀로에게 몸을 돌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동무, 당신은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오! 자기가 할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고, 나만큼이나 신부들을 미워하고 있거든!”


그는 포도주를 종이컵에 따라서 건배를 올렸다.


“소비에트 연방을 위하여!”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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