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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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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아들 어거스틴(제43회)

 

(지난 호에 이어)
 “아, 나는 얼마나 바보였던가!” 그는 알리피우스에게 풀기 없는 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난 그분이 말씀하신, 즉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니 나를 배우라. 그러면 너희는 영혼에 평안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듣지도 않고, 점점 높이 치켜 올라가는 가르침의 죽마 위에 올라타고 앉아 있었던 걸세.”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는 그가 성경에서 읽은 것을 확실하게 해주었다. 주교가 성경의 말씀을 비유로 들려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생명의 교리가 강단에서 흘러나와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감화시켜 주었다.


 플라톤주의는 하나의 신호대처럼 어거스틴을 막연하나마 보다 더 높은 고원으로 인도했다. 이제 암브로시우스는 그에게 왕 중의 왕이신 그분의 높은 영광 속에 몸을 씻은 임마누엘의 나라를 보여주었다. 


 어거스틴이 그의「고백록」에 다음과 같이 쓴 것이 있다. “한 의지는 숲이 있는 언덕 꼭대기에서 평화의 나라를 바라보지만, 그리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헛되이 그들의 왕자인 사자와 용에게 둘러싸인 채 사막을 방황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지는, 하늘나라의 사령관이 마련한 요새 저쪽으로 길을 인도해 줍니다.”


 이제 단 하나의 장애물만이 그가 하늘나라의 요새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를 속박하는 의지였다. 그는 그것을 시인할 만한 지성적인 성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욕망은 고집 센 의지가 만들어낸다. 욕망이 충족되면 하나의 습관이 형성되고, 습관을 이겨내지 못함은 숙명이다. 괴로운 속박이 나를 묶는다. 나는 그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지금은 안 되는구나. 지금은 안 돼.”


 “왜 안 되는가?” 그의 양심은 물었다.


 관능의 소리가 양심에게 대답했다.


 “넌 어거스틴이 우리들 없이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어떻게 어거스틴이 그 많은 만족감을 준 우리를 버릴 수 있단 말이냐?”


 기억이 양심을 지원하려고 달려왔다. 


 “그리스도의 힘을 통해 절제를 찾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어거스틴이라고 해서 왜 안 되는가?”


 그 투쟁은 모니카가 알리피우스와 이야기를 나눈 오후에 절정에 이르렀다. 어거스틴은 심신이 피곤해져서 시골길을 거닐다가 집으로 왔다. 집안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충실한 알리피우스의 우정이 그리워져, 그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알리피우스가 급히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는 어거스틴의 창백한 얼굴이 괴로운 빛을 띠고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 


 “자네, 병이 났군!” 그는 소리쳤다.


 “병이 났어.” 어거스틴이 힘없이 말했다. 그는 가슴을 만졌다.


 “여기가 아파 죽겠네. 자네 신약성경 좀 갖다 주겠나?”


 “그러지.”


 알리피우스는 집안으로 들어가 성경책을 들고 나왔다. 어거스틴에게 책을 건네주고 두 사람은 돌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그는 두 번이나 입을 벌려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알리피우스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말없는 동정의 표시를 했다. 어거스틴은 기운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이봐, 자네 혼자 있는 게 낫겠네. 내가 잠시 들어갔다 나올게.”


 “아니, 내가 가겠네.”


 어거스틴은 성경책을 의자 위에 놓고 일어나 정원 둘레에 있는 무화과나무 숲 쪽으로 갔다. 알리피우스는 어거스틴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연민으로 두 눈이 젖어 있었다. 


 과수원 한가운데에 이르자 어거스틴은 발을 멈추고 떨리는 한숨을 몰아 쉬고는 땅 위에 쓰러졌다. 그는 땅에 엎드려 그 동안 막혔던 울적한 심사를 터뜨렸다. 그렇게 함으로서 생명의 원리를 육체에서부터 찾아내려는 듯이 강한 흐느낌이 그의 몸을 뒤흔들었다. 두 갈래의 태양의 물결이 끓어오르는 커다란 소용돌이로 몰려오듯, 두 개의 거대한 초인적인 힘이 그에게 몰아 닥쳤다.


 그는 대천사 미카엘과 사탄이 모세의 시체를 놓고 논쟁한 것에 대해 유다가 이상한 얘기를 한 것이 떠올랐다. 그는 두 적이 그 불쌍한 영혼을 두고 논쟁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만약에 그랬다면 싸움이 어떻게 끝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괴로운 나머지 땅을 두드렸다. 


 “주여, 얼마나 오랫동안 그 싸움은 계속되는 것입니까?” 그는 부르짖었다. 비웃는 듯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그를 놀렸다. 그는 두 귀를 틀어막았다.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합니까? 얼마나 오래? 내일 또 모레입니까? 지금은 왜 안 됩니까? 어째서 이 순간이 나의 깨끗하지 못한 행위의 마지막이 되지 않습니까? 왜 안 됩니까?”
 순결한 생활을 그렇게 갈망해 본 적도 없었고, 그처럼 이루기 어려운 적도 없었다.


 “하느님,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합니까? 얼마나 더 오래!”


 완전히 지친 그는 그의 귀를 막았던 손을 떼고 뒹굴었다. 너무나 힘이 빠져 울 수도 없었다. 전신이 마비되어 오고 생각이나 감정도 얼어붙은 듯 했다. 그는 두 팔을 뻗고, 눈을 감고, 무력하게 전혀 감동이 없는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Augustine baptized by Ambros

 


 얼마나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는지 몰랐다. 매미 우는 소리가 그를 부드럽게 달래며 들려왔다. 비웃는 새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땀에 젖어 있었다. 처음엔 희미하게, 그 다음엔 명확하게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동안은 그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나, 그 소리는 계속하여 그를 사로잡았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그 말들은 과수원 저 끝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소녀의 음성이었다. 소녀의 음성이었던가, 아니면 소년? 그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집어 들고 읽어, 집어 들고 읽어, 집어 들고 읽어.” 음성은 단조롭게 떠올랐다가는 가라앉았다. 


 “들고 읽어, 들고 읽어, 들고 읽어. ”


 한 가지 생각이 번쩍 떠올라 그를 놀라게 했다.


 “아니, 저건 천사의 음성이 틀림없어. 하느님께서 성경을 집어 들고 읽으라고 내게 명령하시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니 힘이 솟았다. 활기를 되찾고 감동에 젖어 그는 벌떡 일어나 황제의 시종처럼 재빠르게 숲을 가로질러 꽃밭으로 뛰어들었다. 알리피우스는 돌 의자 위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어거스틴!”


 어거스틴은 숨을 헐떡이고 흥분에 몸을 떨며 그 옆에 앉았다. 그는 성경책을 들고 손 가는 대로 펼쳐 보았다. 그의 눈이「로마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에 머물렀다. 그는 그것을 소리 없이 읽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 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 몸을 무장하십시오.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그는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이 말들은 하느님이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와 전달된 것이 분명했다. 이 말씀이야말로 내가 필요한 것에 대한 응답이 아닌가! 이렇게 그는 생각했다. 내가 튜닉을 입으면 외부의 힘으로부터 나를 보호받을 수 있는 것처럼, 그는 하느님의 축복받은 아들로 옷 입혀야 했다. 그러면 그 분은 모든 악의 세력을 꺾어 줄 것이다. 나의 욕망까지도. 그는 눈을 감고 알리피우스가 경건하게 옆에서 기다릴 동안 기도를 올렸다.


 “오, 나의 왕이여, 구세주시여, 나는 나의 죄와 무거운 불행의 짐 때문에 공포에 떨며 당신 앞에 왔습니다. 나의 이런 죄는 너무나 크고 많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약은 더 위력이 크십니다. 당신은 정복자, 나는 정복을 당한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당신은 승리자, 나는 당신의 뜻하는 희생자가 되게 하소서. 당신은 화해하는 자, 나는 화해 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당신은 군주, 나는 신하가 되게 하소서. 오 나의 위대하고 높으신 사제시며 나의 병을 고쳐주신 분이여, 은총으로 내 마음을 하나 되게 하소서. 이 불쌍하고 병들고 더러워진 저의 마음을 붙잡아주소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


 두견새의 노래 소리처럼 아름답고 깊은 평화가 모니카의 아들을 고스란히 찾아왔다. 그는 눈을 떴다.


 “알리피우스.” 그는 한 손을 알리피우스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왜 그래, 어거스틴?”


 “나는 이제 다시 소생했어.” 그는 기쁘게 말했다.


 “나도 기뻐. 말해봐, 어느 구절이 그렇게 강렬하게 자네 마음을 움직였는지?”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3절과 14절을 가리켰다. 알리피우스는 그 부분을 천천히 읽고는 다음 구절로 넘어갔다.


 “이것 좀 읽어 보게.” 그는 활기 있게 말했다.


 “내게도 희망이 있네. 바울은 또 이렇게 말했어.‘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거든 그의 잘못을 나무라지 말고 반가이 맞으십시오.’ 나보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또 있을까?”


 어거스틴이 웃으며 그의 팔을 가장 다정한 친구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자네한테도 희망이 있지. 우리 함께 더욱 많은 빛을 얻기 위해 말씀을 연구해야 하네. 기도도 해야 하고, 암브로시우스에게서 가르침도 받아야 하네.”


 그는 일어나 환희에 넘치는 두 팔을 하늘로 향해 올렸다.


 “이것 좀 보게, 굉장한 격류가 내 영혼에 흘러 들어 깨끗하게 씻어준 것 같네 그려.”


 “정말 놀라운 일이야.” 알리피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이 굉장한 일이야. 자, 집으로 들어가세. 어머님께 말씀 드려야지. 어머닌 기뻐서 어쩔 줄 모를 걸세.”


 그들은 팔을 끼고 모니카가 기다려 왔고 기도해온 방을 향해 갔다. 문에서 어거스틴은 잠시 멈추었다.


 “내가 들어갈까?” 알리피우스가 말했다.


 “그래 주게. 난 어머님께 말씀 드리기 전에 잠깐 시간이 필요해.”


 알리피우스는 집안으로 사라졌다. 어거스틴은 눈물을 글썽인 채 라일락나무 숲을 돌아다보았다. 그에겐 그 과수원 땅이 영원한 성지가 될 것이었다. 무화과나무는 정말로 생명의 나무의 상징이 되었다.


 “집어 들고 읽으라”고 한 그 말씀은 하느님이 그에게 사고력을 주신 만큼이나 그의 기억 속에 울려 퍼질 것이다. 


 모니카의 기도 소리가 들렸다. 멜라니의 기도 소리도 들렸다. 멜라니의 기도! 그는 숨을 죽였다.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멜라니를 다시 만나게 될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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