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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경 칼럼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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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34)

 

(지난 호에 이어)
태초에 천지는 혼돈 속에 있었다. 이를 사법계라 한다. 하나님의 영을 물위를 운행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법계다. 하나님이 혼돈 속에 있었던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질서 있게 하시고 또한 하늘에 나는 새와 육지에 기는 짐승과 물 속에 물고기를 창조하시고 번성하게 하셨다. 이를 이사무애법계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된 그 모습대로 질서를 지키며 평화롭게 그리고 지혜롭게 살게 되어 있었다. 이것을 사사무애법계라 한다. 


사람이 부모에 의하여 태어나 살게 되는 과정에도 이 네 가지 법계가 포함되어 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理)시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숨으로 생기를 얻어 생령이 된 사람의 본질 역시 이(理)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고 사람의 몸이 곧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다. 사람의 영혼이 곧 성령이다. 하나님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하신다. 우상이란 나무나 돌이나 철로 어떤 형상을 만들어 거기에 절하거나 그것을 섬기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 나름으로 생각해 내어 그것을 선이나 악이라고 믿고 따르는 것도 우상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를 만들어 놓고 절한다. 그러나 선 수행자들은 돌부처, 나무부처, 쇠부처에 절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사람은 바위 위에 올라가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지만 그 바위를 깎아 부처로 조성해 놓으면 그 위에 앉거나 눕기는커녕 그 바위를 보고 절을 한다” 하기도 하고, 제자가 “부처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말에 스승은 “절 안에 있는 것!”이라 대답한다. 


제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이(理)를 따르게 되어 있다. 물도 이(理)에 따라 흐르고, 바람도 이(理)에 따라 불고, 나비도 이(理)에 따라 난다. 사람의 몸도 이(理)에 따라 태어나기도 하고, 성장하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하고 늙어 죽는다. 


사람의 마음이나 행동도 이(理)를 따라 선한 사람도 되고, 선하지 못한 사람도 된다. 하나님은 이(理)시다. 사람의 몸은 흙으로 된 것이지만 이(理)인 성령으로 채워져 있다.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며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다. 아담과 이브가 낙원으로부터 쫓겨나게 된 이유는 이(理)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한 것이며 또한 이(理)를 따라 살아야 할 것을 자신 나름의 지식으로 살려고 한 것에 있다. 


이(理)는 관계성을 말한다. 이(理)란 사람의 몸이 상하좌우 서로 쌍, 대법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다. 불교에서는 이(理)를 연기라 부른다. 과학에서는 상대성이라 부른다. 


학습 및 행동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연합이라 부른다. 이(理)를 다른 말로 하면 자비와 사랑이다. 한 몸에 속한 지체와 지체의 관계가 자비와 사랑이다. 부분은 전체와 하나를 이루고, 부분과 부분이 한 몸이 된다. 


바울 사도는 “성도를 그리스도의 몸이요, 각 지체”라 선포한다.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 간의 관계에서는 선악이나 미우나 귀천이라는 관념이 없고 또한 서로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면서도 수고하고 희생한다는 관념이 없다.


지체와 지체 간의 관계가 곧 무조건 사랑과 무조건 용서다. 깨달음이란 자신이 이(理)의 세계에 들어가 이(理)와 하나가 됨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다. 불성이 곧 이(理)에 일치하는 자비심이다. 


기독교 역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니라”는 말씀을 믿는다. 사랑이 곧 이(理)가 되는 것은 천지만물이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지체들처럼 우주라는 천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부분마다 모양이 다르고 기능도 다르다. 그러나 부분들은 전체로 한 몸을 이룬다. 한 몸을 이루고 각각의 지체들의 본질이 사랑이 아니라면 전체란 있을 수 없다. 


아담의 후예인 사람들은 아담처럼 지금도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자타나 내외나 선악이나 귀천이라는 관념으로 전체로부터 자신이 분리된 것과 같은 망상에 빠져있다. 이러한 망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인간에게 참 구원이란 없다. 


사람의 마음이란 “새끼줄을 보면서도 뱀을 보았다”고 고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이 지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자신의 이전 행동 경험의 결과로 본심이 무엇에 엉긴 탓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본래 이웃과 하나가 되고 우주와 하나가 되게 되어 있는 본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는 본심이 무엇에 엉기어 망심이 된 것을 어떻게 하면 망심을 다시 본심으로 회복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 수행법을 제공한다. 그것이 도에 들어가는 두 가지 방법으로, 행입과 이입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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