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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okyung
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29)
kimbokyung

 

(지난 호에 이어)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선 수행을 통하여 습 또는 조건화된 감정이나 행동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조사들의 언행은, 이전 행동 경험으로 학습 또는 오염된 사람의 언행과는 다르다. 


조사들이 보이는 언행의 특징은 그의 생각이나 행동이 지금-여기에 머문다. 즉 그들은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고, 미래에 대한 보상이나 기대도 없다. 그들은 시장하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그들에게는 이전 경험의 흔적으로 생기게 되는 자타나 성법이나 귀천이나 미추라는 분별이나 경계가 없다. 그들은 사람의 본심으로 주어진 자연지, 근본지로 산다. 


그들 안에 본심으로 주어져 있는 우주의 지혜를 가지고 우주와 소통하며 산다. 그들은 여기서 신통기적을 나타낸다. 그 기적이란 본심이 망심에 의하여 방해를 받지 않게 될 때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신통기적이다. 


실은 지금의 과학기술이 모두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주자연의 법칙에서 빌려 온 것을 알게 될 때 무아로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사람이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담의 초심, 즉 자기의 몸이 성전으로 비워져 오직 그 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만이 머물게 될 때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 역시 상상하기 쉽지 않다. 


지기의 몸이 성전으로 기능하게 될 때 사람은 고통에 빠지거나 병들거나 죽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의 몸이 오로지 창조주의 뜻 또는 우주자연의 법에 일치하여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창조주의 숨으로 살게 되어 있는 사람의 본질과 행동이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떤 갈등이나 괴리가 있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즉 자기라는 것이 따로 없는, 자신이 이(理)에 들어가 살기 때문에 이(理)에 따라 나타나게 되는 생로병사라는 현상으로부터도 자신이 벗어나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촛불이 타다가 꺼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촛불이 꺼졌다고 해서 촛불이라는 현상 이면에 있는 이(理)가 변하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라 하는 것은 사람의 몸이 비록 흙으로 흩어진다고 해도 그 안에 거하시는 참 자기로서의 하나님의 영은 없어지지 않음을 뜻한다. 예수님과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의지한 사도들은 모두 자신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산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아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며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 기독교인들에게 무아와 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무아와 공은 사람의 몸이 성전으로 하나님의 뜻과 법이 자신의 뜻과 법이 되게 할 때 요구되는 조건이며,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로 기능하게 될 요구된 절대 조건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고, 이웃을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선행 조건이다. 그리고 무아는 우주에 속한 인간이 우주의 법에 따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데 있어서도 요구되는 필수적 조건이다. 


제행무상이며 제법무아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은 바 된 것은 모두가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마셔도 다시 목마르게 하는 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 생명수로 산다. 


부활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진리란 자기라는 것을 버림에 있다. 자기란 관념은 사막에서 갈증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신기루와 같다. 사람의 마음이란 학습된 것이다. 학습된 마음이 인간의 본심이 될 수는 없다. 


 29. 깨달음의 결과, 평상심 중국의 조주 선사는 “달마 대사가 동쪽으로부터 오신 연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수행자에게 “차 한 잔 들게!” 라 말하고, “경전의 대의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은 사람에게도 “차 한 잔 들게!”라 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끽다거(喫茶去)!”하는 유명한 화두(話頭)다. 참선(參禪), 즉 화두를 들게 하는 선 수행의 목적은 평상심이 곧 도라는 것을 깨닫게 함에 있다. 목이 마르면 차를 마시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여 잠이 오면 자는 것“이 곧 도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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