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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경 칼럼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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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우리가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15)

 

(지난 호에 이어)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을 이전 행동 경험의 결과로 보면 벽관을 위시한 묵조선(?照禪)이나 참선(參禪)이 모두 마음을 씻는 방법이고 초심(初心)을 회복하게 하는 방법이다. 즉 “거듭남”을 의미한다. 


성경이 모두 사람의 말과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사람의 말과 문자로는 사람이 지상에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계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의 말과 문자로 기록된 그 이면에 이심전심으로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머리로서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내린 십계명의 본의가 바로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며,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에 있음을 지적하신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너희 몸이 곧 성전”이란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은 과학자들이 사람은 우주자연에 속한 것이므로, 우주자연의 통제 하에 살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잊지 않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람은 누구나 이미 성전이다. 사람은 다만 그것을 잊고 있을뿐이다. 도에 들어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방법은 교학(敎學)에 의존하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외우며 설교를 듣고 생각하며 듣고 배운 그대로 행동하도록 힘쓰는 것이다. 


이 방법에서의 문제는 마치 오래된 가죽포대에 새 술을 담는 것처럼 새 술조차 곧 변질되어 버린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의 방법은, 예수님이 성전으로 직접 들어가 성전을 더럽히고 있는 장사꾼들을 밖으로 쫓아내신 것처럼 이미 자신 안에 들어와 자신을 성전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들을 소재하는 것이다. 


사람의 본심은 이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이므로 사람의 간교한 생각만 자신으로부터 제거하면 그대로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되찾게 된다. 왜 유대인들은 그들이 믿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동일한 하나님으로 섬기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미워하였을까? 그리고 유대인 지도자였던 바울은 무엇을 깨달았기 때문에 변하여 예수의 제자가 되어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수 있었을까? 


사람의 몸이 곧 성전이다. 하나님은 사람 안에 거하시고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한다. 사람이 우주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게 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과 법에 따라 살게 되어 있다. 그것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과 소통하며 동행하게 되어있다. 사람이 자기라고 믿고 있는 것은 잡다한 이전 행동 경험이 쌓인 냄새 나는 쓰레기통에 불과하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의 본성을 방해하고 있다. 


공 또는 무념행은 불교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성도가 속한 교회나 인간 사회나 우주를 유기체로 보는 기독교나 과학이나 심리학에서까지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실존적 조건이다. 인간의 지식으로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지식으로서는 자신의 본질 역시 보지 못한다. 


인간의 지식이나 논리는 사회적으로 이미 조건화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각을 떠나있다. 하나님, 창조주의 말씀은 사람이 무아로 따라야 할 법이며 이(理)다.

바울의 눈은, 아담과 이브의 눈이 선악과라는 지식의 열매를 따먹고 열린 것과는 다르게,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감기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오직 안으로만 볼 수 있다. 도에 들어가는 두 가지 방법은 불교에도 있고, 기독교에도 있고 또한 심리치료법에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미 분별망상으로 오염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 마음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보지 못하도록 되어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 방편으로서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유대교 지도자들과 예수님 간의 논쟁이나 유대교 지도자였던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암시하는 것은 사람이 만든 문자로 기록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고 해석할 때와 성경이 문자의 한계를 넘어 따로 전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을 때의 차이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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