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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경 칼럼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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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11)-인간의 본질(13)

 

 

 (지난 호에 이어)


6. 구원의 여정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으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요 오매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장 1-7) 

 

구원은 계명을 지키는데 있다. 구원을 위한 유일한 계명은 “하나님을 신령과 진리로 섬기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측면, “하나님을 신령과 진리로 섬긴다”고 하는 것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실은 두 가지가 아니라, 손등과 손바닥과 같이 하나다.


하나님을 신령과 진리로 섬기는 것과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둘로 갈라질 수 없는, 불교식으로 말하면 체(體)와 용(用), 본질과 기능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본질이 선한 것이면 선이 밖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선이 밖으로 나타나면 본질이 선할 수밖에 없다. 선이 본질이 아니면서, 선한 척 하는 것이 “양 가죽을 뒤집어 쓴 이리”이며 “회칠한 무덤”이다. 밝은 날에는 이러한 가짜는 청청백백하게 드러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예수를 믿든, 믿지 않든 무관하게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숨, 성령으로 생명을 얻은 존재다. 유대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든 할 것 없이 그러한 본성에 있어서는 한 점도 다를 바 없다. 


유대인이라서 미리 선택된 것도 아니고 사마리아인 이어서 선민이 아닌 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사람을 유대인이며 그 위에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기까지 한 사람과 비교하여 ‘착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대인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의 자손, 야곱의 자손으로 자랑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흔하게 발에 차이는 돌로도 유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써 그들의 오만을 쳐부쉈다.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섬기거나 이웃을 자기의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거듭 남”이다. 이것은 사십 년 동안 지은 예루살렘 성전을 한 순간에 파괴해 버리고 그 위에 새로 성전을 세우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그것을 상징한다. 죽음이란 예수님이 성전을 “도적의 소굴”로 만들고 있는 장사꾼들을 쫓아낸 것과 같이, 본래 성령으로 소통하게 되어 있는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성경의 본의는 성도가 되는 조건으로 그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는 지체가 되고,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태초로부터 이미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는 지체,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임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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