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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경 칼럼

    (토론토대학교 정신의학 박사,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정년퇴임)
    한국상담학회 수련감독 전문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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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으로 성경을 읽다-인간의 본질(3)

 

 (지난 호에 이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다는 사건에 뒤지지 않는 사건, 즉 아담과 이브가 에덴으로부터 쫓겨난 이유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단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으로 덮여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낙원의 이유를 기독교에서 보아 온 것처럼 단지 “불복종”에 무게를 두게 되면, 하나님이 아담/인간을 하나님 형상대로 지으시고, 하나님 자신의 숨을 그의 코 안에 불어 넣어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잊게 되고 인간의 본성이 본래 악한 것으로 단정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교회에서나 유대-기독교 문화를 배경으로 둔 서양에서의 인간관은 성악설이다. 그 예가 프로이드(Freud)의 정신분석학이다. 그러나 우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면서 인간을 탕자에 비유하게 되고 비록 탕자가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으나 그가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아버지의 아들로서 특권을 그대로 회복할 수 있으리만큼 그의 본성이 선함 그대로임을 지적하셨다. 


인간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선한 것으로 보는가에 따라 신행의 목표와 방법 역시 크게 달라진다. 본성을 악한 것으로 보게 되면, 본성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의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창세기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인간의 본질이 하나님을 닮아있다고 보게 되면 구원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즉 전자가 숙명론인데 비하여 후자는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 후자의 경우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을 살아계신 아버지로 믿고 영접하면 된다. 구약성서의 내용과 신약성서의 내용이 여기서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여기서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불렀기 때문에 처형을 당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불교사상의 핵심은 바로 아담과 이브가 왜 선악이라는 지식을 얻게 되었다고 하는 것 때문에 에덴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해 주고 또한 인간의 “몸이 곧 성전”이라고 말씀하신 그 예수님의 본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도적의 소굴”로 만들고 있는 장사꾼들을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쫓아내면서 자신의 죽음을 성전의 재건으로 비유하신 그 뜻 역시 깨닫게 한다. 


자신의 본심을 되찾는 것, 견성이 불교 수행의 궁극적 목적이 되는 것과 같이 기독교 신행의 목적 역시 견성에 있다. 기독교의 목적을 “거듭 남”이라 하기도 하고 탕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비교하기도 한다. 견성은 불교와 기독교의 공통적 목적이고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교는 성경에서 찾기 어려운 것으로, 인간의 망상을 제거해 버리는 구체적 방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한 가지 목적은 서양의 기독교와 동양의 불교 간에 공통점을 발견함으로써 서양과 동양을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양자가 인류가 지금 처해있는 비극적 상황을 해결할 수 있으리란 희망도 그 속에 있다. 특히 지금을 이민의 시대 또는 글로벌시대라 부른다. 인종과 종교 간의 갈등은 인류멸망의 위협이 되고 있다. 


이 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기독교와 불교가 문제로 삼는 인간의 마음 또는 지식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발달되는지를 학습이론(Pavlov, 1928; Skinner, 1950)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인간이 우주와 공유하고 있는 본심을 회복하게 될 때 얻을 수 있는, 치유와 사랑 그리고 지혜에 관하여 논의한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은 바 되지 않은 것은 없고 누구나 하나님의 숨, 성령으로 생명을 얻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동일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진리, 그 본질이 문화권에 따라 각각 다른 말과 문자로 표현되었다 할지라도 그 핵심에 있어서는 다를 수 없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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