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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숙 코너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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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미 영 전쟁의 교훈

 

 1812년 미 영 전쟁 중 제 2린컨 연대에서 복무한 삼형제 군인 레오나드 하니(Leonard Haney), 마튜 하니(Matthew Haney), 제임스 하니(James Haney)의 참전용사인증 현판식이 인근 펠함(Pelham)의 한 묘지에서 거행되었다. 200여 년 전의 기록을 찾아 묘지의 주인공을 밝혀낸 사람은 4800Km나 떨어진 알라스카에 사는 고손녀 바바라 하니(B. Haney)다.

 200여 년 전 병사들의 묘를 찾아 참전용사인증현판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군악대와 군기의 사열식을 동원하고 시장으로부터 군의 장성, 이른바 전 동네 유지들과 주민이 다 나와 예식을 치르는 행사가 어찌나 엄숙한지 그저 경이롭기만 하였다.

 삼형제의 종군이유는 단순히 생업이 위태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전쟁에서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 이전에 삶의 터전을 짓밟히는 위기를 구하기 위해 17, 18, 19세의 어린 나이로 군에 입대한 것이다. 그들이 남겼다는 입대 동기는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였다.

 1812년 6월 18일에 미국(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이 영국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서 발발한 미 영 전쟁은 1814년 12월 24일 미국과 영국 두 나라에 명분도 이익도 아무 성과없이 ‘겐트조약’으로 끝이 났다. 1812년 미 영 전쟁의 전선은 크게 오대호지역과 캐나다전선, 대서양전선(메릴랜드), 남부전선(뉴올리언스)이었다.

캐나다지역전선은 거의 모든 영토가 이미 인디언들의 영토였으나 영국과 미국 양 진영의 경쟁에 휘말려 인디언들이 처참히 학살되는 전장이 되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미 영 두 진영에서는 서로 자기네가 사상자를 적게 내고 승리하였다고 외쳤지만 그 사이에서 죽은 병사는 다 인디언이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진다.

미국이 노린 것은 무역봉쇄해제와 영국의 지원을 받는 인디언과의 분쟁을 종식시켜 서부개척을 쉽게 하는 것이었으며 영국령 캐나다의 장악이었다. 미국은 이리 호, 온타리오 호수를 장악하고 ‘어퍼 캐나다’의 제압에 성공하였으나 세인트로렌스 강의 수운(水運)을 통제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몬트리올, 퀘벡의 공략은 실패하여 ‘로워 캐나다’의 제압은 이루지 못했다.

캐나다전선은 용맹을 떨치던 쇼니 인디언추장 ‘테쿰세’와 ‘아이자크 부록’ 장군이 전사한 유명한 전쟁이다. 볼티모어의 치열한 대서양전선에서는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이 전소되고 해안에 퍼붓는 함포사격의 불꽃이 캄캄한 밤하늘에 쏟아져 내리는 별과 같다고 읊은 미국국가 Stars and Stripe의 탄생을 가져왔다.

남부전선 뉴올리언스 전투에서는 적은 군사력으로 우세한 영국 해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앤드류 잭슨 장군이 후에 미국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명성을 얻게 하였다.

미 영 전쟁은 로키산맥을 기준으로 캐나다 국경선을 확정하여 오늘의 지형으로 자리잡게 하였으며, 캐나다에 대한 미국의 야심은 좌절 되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여느 다른 전쟁보다 더욱 마음 아프게 하는 사실, 곧 영토회복에 나섰던 아메리카원주민 인디언이 가장 많이 희생된 것이다.

영국은 인디언중립국가의 건설을 약속하고 ‘테쿰세’와 동맹을 맺어 여러 전투에서 영국에 승리를 가져다 주었으나 겐트조약 이후 지켜지지 않았다. ‘테쿰세’의 전사로 인해 삶의 터전마저 빼앗긴 인디언들의 현실은 지금도 그들이 부르짖는 권리투쟁에서 열을 뿜는다.

‘앤드류 잭슨’은 대통령이 되자 우호관계를 맺어오던 인디언 주요 부족들을 계획적으로 미시시피 서부의 보호구역으로 쫓아냈다. 그들 중에는 강요된 추방을 당한 동맹군 체로키족도 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아버지가 아끼는 벚꽃나무를 자기가 베었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정직한 토마스’의 일화는 초등학교시절 모든 어린이들의 독본적인 교훈이었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토마스)이 대통령이 되기 전 장군으로서의 행적은 동심을 무참하게 짓밟힌 듯 모멸감마저 들게 한다.

그는 이로쿼이족의 몰살을 지휘하고 그들의 마을을 철저하게 파괴함으로 이로쿼이 족들은 그를 ‘마을파괴자’라 두려워하였다. 이로쿼이족이 영국군과 동맹을 맺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워싱턴은 죽인 이로쿼이족의 껍질을 벗겨 군장을 장식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미 영 전쟁 발발 1주일 후에 6.25사변이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묵상한다. 육이오사변으로 세계16개국에서 유엔군이 참전하여 미군 2만여 명, 영국군 9백여 명, 캐나다군 516명이 전사하였다는 기록이다. 생업에 위기를 느껴 구원하려고 선택한 참전도 아니며 내 나라의 국익을 위한 전쟁도 아니었다. 순수한 인류 사랑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귀한 목숨을 바친 그들 전몰장병들의 뜻이 더욱 고귀하고 감사할 뿐이다. 영원히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으며 우정에 소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이 땅에 이민자로 사는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될 일이 있다. 그것은 이 땅을 지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며 죽어 갔는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살아갈 수 있는 땅이 아니라는 걸 역사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지혜롭게 주인의식을 진작시켜야 될 교훈이 여기에 있다.

 

 *겐트조약(Treaty of Ghent): 미 영 간의 휴전조약으로 1914년 12월 24일. 벨기에 겐트에서 체결함. 미 영 양국의 모든 것을 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으로 양 측의 영토손실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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