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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숙 코너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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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과 서(38)

 

(지난 호에 이어)
무녀 독남 2대 독자인 아빠는 경제관념이 적었다. 의대를 다니는 동안 적지 않은 과외수강비를 벌었지만 의례히 용돈은 타 쓰는 것인 줄 알았다. 결혼해서 새 며느리와 함께 살게 된 시어머님은 우선 아들에게 말씀했다.


“이제 너희 두 식구 하숙비는 매달 얼마씩 내도록 해라.”


‘영’이 태어났을 때는 거기다 우유 값을 가산해서 받으셨다. 돈이 필요해서 보다는 있으면 있는 대로 다 써버리는 아들한테 생활이 무엇이며 가장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게 근본 의도인줄 잘 알았다.


그런데도 3년간의 시집살이 동안 끝내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차라리 따로 살아보면 어떨까. 자기가 받은 돈으로 살림을 해 보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이번에는 노 할머님이 펄쩍 뛰었다.


“집안에 식구가 누가 있다고 애들을 내보내서 그 고생을 시키려니. 나는 그 꼴 못 본다.” 


 어느 것이 더 고생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3대(代)의 여자들이 옥신각신 속을 끓이던 차에 도미해 버렸으니, 생각하면 한 숨이 절로 휴~ 내쉬어진다. 미국에 오자마자 그 돈을 아빠에게 맡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다음날 아빠는 송금수표를 보내고 들어왔다. 수수료를 빼고 나니 수중에 남는 것이 단돈 2불이었다. 매달 1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봉급을 받으니까 이제 새해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것도 년 초 휴가를 지나려면 5일이나 되어야 돈이 생길 텐데 그 동안 2불을 가지고 지내야 된다. 저녁에 식탁에 앉은 아빠는 완전히 위축이 되어 있었다.


 늦게야 철이든 아이처럼 지난날 자신이 끼친 사고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생각 할수록 마음이 언짢은 모양이었다. 고마움을 느낄수록 마음은 더욱 무겁고 미안스러워졌다.


 “이걸 가지 구 어떻게 하지? “ 몇 번이고 되 뇌이고 있었다.


“뭘 그래요. 식료품은 사다 놨 구, 어차피 공휴일 중에는 집에만 박혀있을 건데 안 쓰면 되지 않아요.”


“ ‘현’이 우유도 저렇게 잔뜩 있겠다,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요. 빚지지 않고 그 돈 다 보내주었으니 또 왜식집에서 처럼 망신은 안 당할거 아니에요.” 


그 말에 아빠는 와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한창 데이트하던 어느 날, 밤늦게 영화구경을 마치고 왜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요금을 내려고 주머니를 뒤지던 그가 당황해 하더니 얼굴까지 빨개져 가지고 쩔쩔 매었다.

직감적으로 돈이 없음을 알아차린 ‘숙’은 덩달아 난감해지면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제 돈을 좀 빌리라고 손을 내밀 찰나라고 생각하고 지갑에 손을 가져가는 순간 그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뚜벅뚜벅 카운터로 걸어갔다.


“아 미안합니다. 돈이 있는 줄 알았는데 한 사람 분밖에 없으니 여자분 것은 받으시고 내 몫은 이 시계를 대신 맡아 주시면 내일 갖다 드리겠습니다.” 


어이가 없어 바라보기는 ‘숙’도 마찬가지였다. 모자라면 모자라지 여자분 것만 받으라는 건 또 무언가.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퍽 순진하고 직선적인 성격을 가졌구나 생각하였다.


 “뭐 괜찮습니다. 사노라면 그런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대로 가지고 가십시오.”


 주인 역시 그가 딱할 정도로 순진해 보였던 것 같다. 떳떳이 자기의 난처함을 알려왔는데 주인으로서도 보답을 해주고 싶을 만큼 신뢰가 갔는지도 모른다. 고맙다며 시계를 도로 받아 찬 그와 함께 합승에 올라탔다. 돈이 없다는 것을 확인 한 ‘숙’은 주저치 않고 지갑을 열어 두 사람의 합승 값을 내려고 하였다. 


“그대로 넣어 두시지요.” 


그는 바지 뒤에 달린 작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뭉쳐서 꼬기작거리는 지폐 두 장을 꺼내서 차장에게 주는 것이었다. 


 “아니 돈이 모자라는데 보태서 내지 그건 왜 감추어 두었어요.” 


“기왕에 망신당할 거 한번이면 됐지 두 번이나 당할 맹꽁이가 어디 있누… 하하하.”


 그날 참으로 등에서 식은땀이 날 정도로 난처했다고 후에 실토하였다. ‘숙’ 앞에서 그런 변을 당했으니 정말 당황했는데 의외로 주인이 그처럼 호의를 보여 주어서 천만 다행이었다고 했다. 너무도 고마워서 다음날 일찍 그 돈을 갚았노라며 자기 딴엔 큰 모험이었다고 그 얘기만 나오면 파안대소를 하였다.


“한 사람분이면 한 사람분이지 여자분 것만 받으라는 건 또 뭐에요 글세.”


그때를 떠 올리고 놀리자, “누가 알아. 혹시 돈 대신 사람을 잡아두려는지… 하하하.” 마주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정말 크게 웃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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