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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숙 코너

    손정숙
    문협회원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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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변경선 동(東)과 서(西) (31)

 

 (지난 호에 이어)
 병원 문을 나서니 눈이 부셔서 뜰 수가 없었다. 한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비척비척 하는데 
 “엄마!”, ‘영’이 달려 와 덥석 매 달렸다. “아 ‘영’이구나.” 머리가 길어서 덥수룩한 ‘영’이 싸늘한 대기 탓인지 까칠해 보였다. 깡충거리는 ‘영’을 보니 눈물이 나게 반가웠다. 


 “하이. ‘수지’ 축하합니다.” ‘웨슬리’가 곁에 와 서며 인사를 했다. 덩치 크고 키가 훤칠한 미국 총각이 갓난애를 안고 나오는 ‘숙’에게 인사를 하며 계면쩍어서 얼굴을 붉혔다.


 뒷좌석엔 애기를 안은 아빠와 ‘영’, 앞좌석에 ‘숙’이 올라타자 문을 닫아주고 차는 떠났다.


 “‘웨슬리’ 참 고마웠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오 노오. 내가 도와 줄 수 있어서 아주 다행이었습니다.” 겸손히 사양하였다. 


 엄마를 못 보았던 ‘영’은 아예 의자등받이를 짚고 일어서서 엄마 귀에다 대고 쉴 새 없이 재잘 거렸다. 


 며칠사이에 가로수들은 빨갛게 노랗게 단풍이 들고, 파란하늘은 티 없이 청명하고 높았다. 집집이 앞 뒤 뜰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고, 보도 위에는 바람에 밀린 가랑잎들이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있었다.


 바깥 날씨는 쌀쌀했지만 차창으로 몰려드는 따가운 햇살을 흠씬 받으며 내다보는 가을 풍경은 다니는 차도 별로 없이 조용하고 한가롭기만 하였다.


 한주일이 지나자 버펄로시장으로부터 공문서 봉투하나가 배달되었다. 


 “미국시민 Henry young song 의 출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부모님께 감사드리며 새 미국시민의 탄생을 기쁨으로 환영합니다.”


 봉투엔 의료혜택, 애기 용품, 심지어 애기사진촬영까지 선물 쿠폰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렇게 광대한 나라, 한국의 몇 배가 되는 많은 인구의 나라에서 한 동양아기의 출생을 이처럼 기뻐하며 축하하고 환영하다니 놀랍기만 하였다. 미국인의 국민성과 국가관에 감복하였다. 엄마들에게 국가가 부여하는 가장 숭고한 경의와 사명임을 가슴깊이 새겼다. 


 1967년 10월 1일, 오후 4시 15분. 미국이라는 날개 아래서 둘째 아들 ‘현영을 얻었다. 미국생활은 순서도 없이 임의로 이루어져 갔다. 그것은 뿌리를 다지는 정지작업의 소용돌이였다.

 

 엄마 아빠수련(修鍊)


 진통제와 수면제 덕에 제한된 병실 공간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었던 몸은 퇴원하고 마취에서 깨어나자 동시에 통증과 빈혈도 일깨워주어서 허약한 체력의 무기력을 다시 몰고 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도와 줄 손길은 없었다. 이층까지 ‘숙’을 부축해서 올라간 ‘훈’은 썰렁한 쇠 침대에 걸터앉은 ‘숙‘에게 자신있게 말했다.


 “‘현영’이만 보며 쉬고 있어. 내가 ‘영’이 돌보고 밥하고 다 할게.”


 셔츠소매까지 걷고 내려가더니 무얼 하는지 냄비 부딪는 소리, 도마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스럽더니 저녁을 먹자고 데리러 올라왔다. 아빠가 차려주는 밥을 앉아서 얻어먹는가 보다고 농담을 하며 밥상을 바라본 순간 어처구니없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미역국에 밥이라고 하였다. 걸쭉하니 거무튀튀한 풀떼기 같은 국물에 빳빳하게 살아있는 미역을 꾹꾹 눌러 담은 국 한 그릇과 쌀이 다 삭아서 풀어진 죽 한 그릇이 전부였다. 


 따뜻한 미역국을 속까지 후끈하게 마시고 싶었던 기대가 여지없이 꺾인 것에 순간적으로 절망감이 치밀었다. 밥을 해줄 것을 기대한 자기의 불찰이 더 없이 화가났던 것이다. 언제 밥이라는 것을 지어 본 적이 있는 아빠인가. 미역국은 고사하고 꼼짝없이 굶게 된 처지가 서러워져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할 말을 잊고 낙심해서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아니. 아주 양질로 엄선한 동물성 식물성 식품을 모두 고루 고루 배합해서 만든 음식인데 왜 그래?” 볼멘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애쓰고 만들어준 음식을 어두운 얼굴로 바라만 보고 있으니 미안스러워 부리는 퉁명이라 생각되니 오히려 더 난감하였다. 이대로 저녁을 굶는다고 해서 내일아침이라고 온전한 밥이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목이 콱 메어서 아무리 억지로 한술 뜨려 해도 되지가 안았다. 


 “지-이-잉.” 도어 벨이 울렸다. 조금 있자 환성이 쩌렁거렸다. 


 “아. 마침 잘 오셨습니다.” 미시스 ‘황’이 커다란 누런 봉투를 조심스레 안고 들어왔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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