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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사역과 기도(38)

 

(지난 호에 이어)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시144:8)”. 하는 말이 우리들 사이에는 없게 하시고 나를 들어 말할 때에도 옳은 것은 분명히 옳다고 말해 주고 잘못된 일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해 줄 수 있게 도와 주소서! 주님은 한없이 미쁘셔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신 일이 없고, 또 어떤 시험을 받게 되더라도 능히 피할 수 있도록 그 길을 마련해 주시는 분이십니다(고전10:13). 


그렇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인고에 인고를 인내로 극복하는 “소망”을 갖게 된다. 한편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더욱 사랑하여 주시고 불쌍한 자들에겐 더욱 자비를 베풀어 주심을 알자! 불신자가 누리는 기쁨이 참 행복일 수 없다. 참 기쁨은 주님을 섬기는 데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주님을 들어 말하고, 그리고 주님을 위하여, 주님으로 말미암은 일만 그것이 진정한 기쁨이요, 참 행복임을 알자! 그밖에 다른 것을 기쁨과 행복으로 아는 것은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다. 결국 참된 행복은 주님 한 분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슬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슬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결론적으로 행복이란 참된 것을 누리는 일이요, 참된 것은 진리이고 지혜자이신 “주하나님” 밖에 없다. 주하나님이야 말로 우리의 거룩한 기쁨이다. 주님의 자비는 항상 우리 영적 가난을 살피시기 때문이다. 


주하나님 없는 세상은 결국 이 땅의 인생이란 끊임없는 시련의 연속임을 알자! 또한 주님은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쫓는 것이나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요일2:16)을 반드시 억제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크리스천들은 자면서도 평소의 결심을 다짐하면서 어떤 유혹에도 동의하지 않고 온전히 순결을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과음과 과식으로 정신을 둔하게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이 주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즉 주님께서 지혜를 주시기 때문에 절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나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이것은 우리가 하늘나라의 백성들인 것을 보여준 말씀이다. 우리는 내 행동에 알맞게 주어진 칭찬이 아니라면 그것은 칭찬이라 할 수 없는 일임을 알자! 그래서 우리는 엉뚱한 칭찬이나 지나친 칭찬은 달갑지 않음을 알자! 


또한 우리는 <성 어거스틴>은 미래도 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고, 곧 과거란 현재의 기억이요, 현재란 현재의 확인이며, 미래란 <현재의 기대>라고 했다. 


즉 그저 지난 일이나 미래의 일이 현재 안에는 없다는 것이다. 즉 현재는 지켜 보는 의식 안에 엄연히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하나님은 태초부터 견고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그 후에도 변함없는 지식과 “지혜”로서 하늘과 땅을 운행하고 계심을 알자! 이를 알게 된 자는 누구라도 주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고, 아직 알지 못한 자도 주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우리 <크리스천>들은 네 종류의 악한 세대(잠30:10-14)의 무리에서 탈피 하여야만 한다. <첫째>로 부모를 학대하는 악한 무리들은 자기 부모를 저주할 정도로 극악한 경지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부모를 축복하지 않으며 고운 말로 대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도 드리지 않으려는 자들은 “독사”무리의 사촌쯤은 되는 것이다. 


<둘째>로 스스로 잘난 체 하고 허울뿐인 성결을 가장하여, 남들뿐만 아니라 아마 자신으로부터도 많은 악행을 숨기는 자들이다(잠30:12). 그런고로 “자기들의 더러운 것을” 즉 그 마음의 더러움을 “씻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의 가장 선한 부분이라고 내세운다. 


아마 그들은 비로 쓸고 아름답게 장식은 할지언정 깨끗이 씻고 성화(聖化) 시키지는 않을 것이고, 안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던 바리새인과 같다(마25:26).


 <셋째>로 자기 주위사람에게 거만하고 냉소적인 자(잠30:13)가 적지 않다. 그들은 “저희 눈이 심히 높으니라!” 그들은 또한 자기 이웃과 형제들을 얼마나 괄시하는지, 자기의 양 지키는 개보다도 못한 자로 경멸의 시선을 던지고 있지 않은가! 


누구든지 자기를 슬금슬금 피해주기를 여간 기대하는 게 아니라,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어떤가! 실은 자신을 가소로운 존재로 만드는 것인 줄 모르고 화려하게 되는 것으로 착각하여, 공작새처럼 뽐내며 자랑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그런 무리가 왕왕 있으며,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분께서 그런 자에게 치욕을 쏟으실 것이다.


<넷째>로 가난한 자에게 잔인하고,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자에게 야만적인 자들(잠30:14)이다. 주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도록" 정하시고, 또 그들이 “땅에서 그치지 않도록” 하셨다. 악한 심보를 가진 자들의 혀와 이는 “장검과 군도(軍刀) 같으니라(잠30:14)”. 


인간은 자기 능력에 알맞게 얻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빈부 두 가지의 생활을 다 소화할 줄 알아야겠지만(빌4:12), 오히려 이 양자의 중간에 항상 위치하게 되기를 원해야 하겠다(아굴의 기도—잠30:8). 


내 주하나님 이시여! 내가 도적질하여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신앙 고백과 부합되지 않는 행위로 경건한 신앙을 먹칠하게 되지 않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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