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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기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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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가꾸기-팬데믹 이겨내기

 

 우리 집 앞마당의 작은 정원에 항상 꽃을 심었었다. 재작년 봄부터 집사람이 모종을 몇 개 얻어다 꽃대신 심었다. 그러고 얼마 후부터 저녁때가 되면 밖으로 나가 바가지에 깻잎이나 상추, 고추 등을 따와 고기와 맛있게 먹었다.

 

 간혹 오이를 따오기도 했는데 보이지 않던 오이가 어느 날 내 손바닥 길이만한 실한 것들 두어 개 갖고 들어오기도 했고, 단 한번이지만 근 30 Cm 정도 되는 것이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 대박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식물을 기르다 보니까 먹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들여다보는 것 이었다. 이것들이 얼마나 자랐을까? 오전에 사무실 나가면서 들여다보고 오후에 들어오다 들여다 보고 가끔은 집사람이 바가지를 주며 나가서 뭐 좀 따오라고 시키면 얼마나 반가운지.

 

 상추야 밭에 다가가면 바로 보이니까 그만이지만 고추나 오이는 이파리를 제치고 들여다 봐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손을 드는 것도 있고 꽁꽁 숨어있다가 손으로 두어 겹 정도 제쳐야 ‘아이쿠 들켰네’ 하고 나오는 것들도 있다.

 

 그러다 단톡방에서 천지농장이 모종을 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 농장주인님이 예전부터 아는 형님이었기에 전화를 드렸다. 서울플라자 주차장에서 5시부터 7시까지 파는데 이른 시간에는 사람이 많이 몰리니 느지막이 오라고 하셨다.

 

 다섯 시가 지나고 5시 40분쯤 주차장에 가보니 줄이 한 삼십 미터 정도 늘어서 있었다. 앞사람과 2m 정도 떨어져야 하니까 얼추 15명은 넘어 보였다. 잠깐 줄에 서있다가 한 사람 빠져나가는데 이삼 분 정도 걸리는지 통 줄어들지 않길래 집으로 돌아갔다 한 30분쯤 쉬었다 다시 가보니 두서너 사람만 있어 집사람이 분부하신 대로 몇 가지를 사다가 앞뜰정원에 심었다.

 

 심은 지 며칠 후부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단다. 그래서 홈디포에다 덮어줄 비닐을 주문했더니 통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날씨는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사람 세탁소에 가서 세탁물 포장용 비닐을 가져다가 부동산 오픈하우스 팻말 꽂는 철사를 구부려 기둥을 세우고 일일이 덮어주었다.

 

 나는 그저 서리나 막아줄 수 있으면 한 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밖에 나가보니 상추는 그런대로 견디었는데 고추와 깻잎 모종의 몰골이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하루가 더 지났다. 고추와 깻잎은 상태가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가 않았다. 사나흘간은 더 추워야 한다는데, 이걸 어쩌나.

 

 집사람도 걱정스러운지 “담요를 덮어줄까?”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래 전에 골프대회에서 경품으로 받은 텐트가 생각이 났다. 한번도 써보지 않은 텐트를 가라지에서 찾아다가 텃밭에 덮어주니 사이즈가 맞춤이었다. ‘왜 이제서야 날 불러줬어요, 애들이 이지경이 되도록 뭐하고’ 하는 것 같았다. 낮에는 벗겨주고 저녁에는 덮어주기를 너 댓새, 거기다 한날은 눈까지 와버렸으니.

 

 드디어 추운 날들이 다 지나고 따뜻한 날씨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나가 텐트를 걷었고, 모든 비닐과 철사를 다 철수시켰다. 그리고 모종을 살펴보았다. 중군 상추는 한판(한판은 모종 48개) 전원이 살아남았고, 우군 깻잎은 한판 중 4개만 살아남았고, 좌군 고추는 한판 반이 거의 전멸, 별동대 파는 전원 다(8개) 살아남았다. 마치 전쟁터에서 몇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처절하게 죽은 모습이었다. 돈 몇 십 불을 잃은 것이 아니고 같이 살던 생명들이 처절하게 죽어간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가만히 들여다 보니 누렇게 처진 고추모종 밑동에 쪼고만 파란 잎이 한두 잎씩 붙어있다. 위의 잎들은 죽은 쥐색이 되어 축 늘어졌는데 아래에서 생명이 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죽은 깻잎 쪽에도 위는 다 죽었는데 땅에서 올라오는 아랫부분은 생명의 색으로 파릇파릇하다. 이 동상 걸린 용사들을 야전병원에 데리고 가 다 살려야 할 텐데, 그들이 일어날수 있을지, 지켜볼 요량이다.

 

 앞의 텃밭이 너무 작아 사위와 뒤뜰 햇빛 잘 드는 한쪽에 텃밭을 하나 더 만들었다. 땅을 파서 잔디를 뜯어내고 테두리를 박고 흙을 사다 덮어 놓고 매일 받아놓은 빗물을 뿌려주고 날씨가 좋은 때만을 기다려 왔는데 내일 모종을 심어야겠다. 그곳에는 케일과 토마토와 부추를 심을 양이다. 그리고 화분에 쑥을 심어 놓았다, 밭에 심었다간 쑥대밭이 될까 봐.

 

 텃밭을 파놓으니 우리보다 더 좋아하는 식구가 생겼다. 땅을 파서 지렁이가 나오는지 날개는 검고 배 부분이 빨간 새 한 마리가 집 뒤뜰에 나타나 며칠을 홀로 놀더니 지난 주말쯤에 날개까지도 빨간 어여쁜 새 한 마리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람쥐의 출몰도 훨씬 늘었다.

 

 인간들이 자리를 비키니 동물들이 우리의 영역을 채운다. 공간은 충분하니까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Corona Virus 를 이겨내려면 시간을 때워야 하는데 텃밭을 가꾸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우선 생명의 신비를 바라볼 수 있다. 줄기가 자라고 잎이 피고 열매를 맺는 모든 과정을 보는 재미는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

 

 게다가 자연의 포용성을 느낄 수 있다. 파나 상추, 케일 등은 우리가 뜯어 먹어도 또 그만큼 우리에게 다시 제공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뿌리를 뽑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에게 충성을 다한다. 그리고 우리가 재배한 싱싱한 먹거리를 먹는 맛은 보너스다. 이것으로 코로나를 이겨나가야겠다. (20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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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 kimchiman
    78854

    kimchiman

    2020-05-26

    텃밭을 크게 만드셨다니!!!! 이왕이면 방울토머도(Cherry Tomatoes) 모종도 구해다 심어보세요! 넝쿨이 뻔어 나가는 것 염두에 두시고! 3-4포기 심으면 그것 따먹는 재미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