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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靑春)을 돌려다오!

 

 

 

 

처연(凄然)했던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날인 6.25일을 대회 날짜로 잡아 온 것은, 어떤 특별한 연유가 있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매년 이날에 나의 성당 노년회(성심회, 聖心會)에서는 [노인(시니어) 골프대회]를 열어오고 있다. 상호간에 친목도 다지고, 하루 푸른 들판의 좋은 경관(景觀)에서 운동도 할 겸.


지난해에는 허리의 통증으로 불참했었고, 금년에는 대회를 주관하는 이형(李兄)의 권유도 있고 해서 등록을 했었다. (해밀턴에 있는 Carlisle 골프장)
좀 달뜬 마음으로 1시간여 드라이브를 해서 골프장에 도착해 보니, 성심회 봉사자를 위시해서 벌써 여러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예정된 시간이 되어 60여 명의 참가자들이 샷건(Shot-gun) 방식(각 홀을 나누어 Tee-off 하는 방식)으로 대회가 시작되었는데, 나는 의사이신 이 박사님과 그리고 금년 86세이신 이형과 한 조가 되어 south(남쪽) 코스 8번 홀부터 시작하였다.


"잘해야 할 텐데." 내가 80이 넘은 노구라 해도 골프 구력(球歷)이 40년(주말골퍼)이 넘는데, 젊어서 물이 올라 한창일 땐 70대도 기록하곤 했는데.


그때 쌓여진 기예(技藝)가 도움이 되려니? 괜찮은 play를 할 수 있겠지? 했는데. 웬걸! 부풀었던 기대는 첫 시작 홀부터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333yd, par 4에서 170yd 호수를 못 넘기고 공은 물속으로 잠수를 해버렸나 보다.


다시 마음을 다잡아서 다음 샷을 잘해야지! 다짐하는데 문득 골프의 전설 Ben Hogan(벤 호건)의 말이 생각난다. 'The most important shot in golf.(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샷은?) 라 언급해 놓고는 is next shot!(그것은 다음 샷이다.) 이라고 했던 말.


그러나 그것도 어디 뜻대로 되어주어야 말이지. 꼬여가는 play는 갈수록 더하고. short game(그린 주변의 가까운 거리 플레이) 하나도 되는 것이 없고, 겨우 퍼딩(putting)만이 명맥을 이어주는 듯 하나, 동반 play 하는 파트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고 마음은 벌써 정심(正心)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하기야 일 년에 서너 번 라운딩 하는 게 고작인 형편에 너무 좋도록 바랬던 건 아니었을까 뒤집어 보게 되었다. 천방지축으로 전반 9홀을 끝내고 후반 9홀을 시작하는데 몸에 이상한 증후(症候)를 느끼게 됐다. 앞에 좌, 우에 보이는 물체가 겹쳐 보이는 착시현상(錯視現象)을 감지했던 것이다.


Tee에 공을 얹어 놓고 자세를 잡고 목표지점을 향해 정확히 공을 때려내야 되는데 양발 사이의 공이 하나였다, 둘이었다, 겹쳐 보이니 무슨 재주로 작은 백구(白球)를 정통으로 그것도 sweet spot(명중을 위한 클럽의 한가운데)에 맞추어 낼 수 있겠는가?


동반하는 이 박사님께, "박사님! 사물이 겹쳐 보입니다. 둘이였다 하나였다 이상합니다." 이미 이 정황을 짐작이라도 한 듯이 "형제님, 당뇨를 다스리고 계십니까?"


"네, 가정의가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고 오셨습니까?"


'커피에 토스트를 구워 먹고 왔습니다."


"그리고 점심은 성당 봉사자들이 준비해온 김밥을 드셨고요?"


"아! 그러니 안됩니다. 아침 토스트 한쪽에 점심 김밥 반 줄로 그 열량을 가지고 6200yd 5시간 이상을 잘 버티리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그것도 80이 넘은 연세에 말입니다."


주머니에서 무슨 약을 꺼내주면서 "이 약 두 알을 입에 넣고 녹여 드세요."


"혈당을 조절해 주는 상비약입니다. 당뇨로 인한 어떤 합병증이 오면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되고, 심한 경우에는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결국 후반 3홀을 접은 채 그냥 카트의 운전사로 대회를 마쳤다.


대회가 끝나고 저녁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형과 이 박사님은 "번거롭고 귀찮아도 미루지 말고 균형 있는 식사를 하도록 하세요. 간단한 운동이라도 꾸준히 이어가도록 하시고요." 


그 동안 몸을 챙기는 데 소홀하였고, 적절한 섭생을 이어오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쉽고 불편했던 심기를 달래보려는 마음에서 속으로 한번 부질없이 외쳐보는 소리 ‘청춘을 돌려다오’


80대에 푸른 구장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 것을. 좋은 날, 좋은 벗들과 멋진 초원(草原)에서 하루를 잘 즐겼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겠나.


세월은 쉼 없이 흘러가고 그 흘러가는 세월 따라 더불어 인생도 도리없이 늙어가는 것. 마음을 비우고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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