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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자 수필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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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상)

 
                  

 싸인이라는 말이 있기 전에는 으레 도장이 쓰이곤 하였다. 도장이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쓰이는 것 말고는 학교에서 성적표나 과제물, 숙제 같은 데에 부모님 도장 받아 오도록 하는 것이 우리 학교 다닐 때의 일이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시골에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 목도장을 하나 가지고 있다가 필요하면 쓰곤 하였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아이들 말고도 아버지 목도장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들도 더러는 있었을 것이다. 


 인감도장은 본인 아니면 파기 힘들어도 도장 파는 곳에 가면 목도장쯤은 이름만 알면 도장 하나 파는 것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해서 학창 시절이 지났는데 언제부터인지 아이들 숙제 끝에 부모님 ‘싸인’ 받아 오도록 되어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도장 대신 싸인이었다. 


 처음엔 ‘싸인’이란 말이 생소해서 이름을 써넣어야 하는지, 아니면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암호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작은 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일기장인지 숙제 물에 싸인을 받아 오라고 했다며 딸아이가 내 앞에 갖다 내미는 거였다. 그래서 어떤 날은 한문으로 이름을 써넣기도, 어떤 때는 영어로 써보며 몇 번 거듭하는 동안에도 나름대로의 확실한 싸인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하는 말이 선생님이 “너는 집에 엄마 아버지 삼촌 이모 등 그렇게 많은 식구가 사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난 다음엔 아이의 과제물에 싸인을 요구했던 것은 누구인가 그것을 봐주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어쨌든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 아니 내 싸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되겠는데 워낙 잘 쓰는 글씨인지라 어떻게 그 싸인을 좀 멋지게 써 볼 것인가 하는 것이 다시 내게 숙제거리가 되고 말았었다. 


 아마 그 즈음에 백화점 신용카드를 하나 갖게 되었는데 그 카드 뒷면에 또 본인의 싸인을 써넣어야 했다. 그래서 다시 또 싸인을 영어로 써야 하는지, 한글로 내 이름을 써야 하는지 순간 멈칫거려 졌었다. 카드 뒷면에는 영어로 내 이름자를 써넣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백화점 점원에게 싸인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렇게나 하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점원에게 물었던 것은, 내가 싸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기도 했지만 백화점에서 요구하는 그런 형식이 따로 있는가 해서 물어 보게 되었다. 


 그 전에 아이 공책에나 써넣던 싸인이 다시 또 백화점에서 신용카드를 쓰고 난 다음엔 영수증에 으레 본인이 싸인을 해야 했다. 몇 번 어설픈 싸인을 거듭하는 동안 내 영문으로 된 싸인을 이제야 정착해서 쓰게 되었지만 그 싸인 이야말로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도장을 쓸 때와는 달리 싸인을 보면 이미 그 사람의 학력쯤이나 필체를 일별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싸인이 만연되기 시작한 것이 그 신용카드를 쓰기 시작하고가 아닌가 짐작된다. 그 전엔 이미 도장이 대신 했던 것을 도장은 남의 것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는지,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한 후엔 영수증에 싸인을 해야 하기에 본인 아니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더러는 가족의 것을 빌려 쓰거나 도난 당한 것을 남이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싸인이란 것이 몇 번 어설픈 손놀림 끝에 겨우 익숙해졌는가 싶었을 때 도장이 없는, 순전히 ‘싸인’만 쓰는 서양 사회에 와서 처음 은행에 가서 한국 직원이 서류를 내어 밀며 “여기 싸인 좀 하세요.”하던 그 순간에 다시 또 싸인? 하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 순간 다시 또 영어로, 한문으로, 우리말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얼마만큼은 부끄럽고 어설프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하세요.”하는 거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여직원 말대로 한문이든 영어든 한글이든 내가 알아볼 수 있으며, 또 그 싸인으로 일관해야 하는 거였다. 아이의 숙제 장에서처럼 이렇게도 저렇게도 써보는 것이 아닌, 일관성 있게 하나로 통일해서 싸인을 하는 것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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