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ON
  • hansoonja

    한순자 수필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 14
    •  
    • 87,533
    전체 글 목록

마지막 식사

 

 내일이면 남편, 딸들, 견공 7마리와 13년 동안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해야 한다. 남편이 그 집에서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으니, 그 동안 나와 남편이 같이 키웠던 개 세 마리를 나 혼자 데리고 살 수가 없어 이사를 앞두고 보니, 평소에 남편이 이따금 되뇌곤 했던 밥도 제때, 제대로 먹지 못한다며 아쉬움이 배어든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


 그 말 뒤엔 이렇게 식구들이 아니, 아내한테 따뜻한 밥상도 제대로 받아 보지도 못하려고 이민을 왔나, 하는 후회도 아닌 한탄도 아닌 그런 마음으로 내겐 들리곤 했다. 밥상은커녕 나와 남편이 교대를 해야 하기에 대부분 혼자 들어와 밥을 먹어야 했다. 


 한국에서부터 아내가 밥상을 차려 놓고 밥상보를 씌우고 기다리는 모습을 뇌이듯 하던 사람이니 아내가 없는 빈집에서 반찬을 꺼내 먹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면 몇 번씩 전화를 해서 지금 뭐 하느냐, 밥은 먹었느냐, 개들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왔느냐, 비타민12를 먹었느냐며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그 약은 꼭 먹어야 한다며 당부하듯 했다. 그것은 난 영양제를 챙겨 먹기는커녕 있는 것도 먹지 않는 내 습성을 알기에 내게 일러주는 말들이었다. 


첫 눈이 온다고 전화,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운전 하는데 신경 쓰인다며 버스 타고 나오라고, 날씨가 많이 추우니 옷을 따뜻하게 입으라는 등의 거의 일상적인 얘기를 내가 집에 있는 시간에, 뒤이어 나와 교대를 하고는 집에서 가게에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하곤 했다. 


 전화를 건 남편에게 밥은 먹었느냐고 물으면, 맥주 한 잔 하고 있다면서 밥은 나 들어 온 다음에 먹으려고 안 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시간이 언제인데, 밤 10시 반이나 되어야 먹을 밥을 그때까지 기다린다는 얘기다. 


 가끔은 도시락 쌀 수 있는 정도의 밥은 남아 있어 물어보면, 어차피 바로 갓 지은 밥이라도 갖고 나가면 찬밥이 된다며 찬밥이라도 그냥 싸달라고 한다. 그래도 밥을 새로 해서 가지고 나간 밥과, 찬밥은 다르다고 밥을 새로 해서 싸주겠다고 하면 괜찮다며 그냥 싸달라고 한다. 그러니 많은 날들 가게에 나가서 먹는 밥은 찬밥이 많았는데, 그걸 먹고 하루 종일 있다가, 저녁에 들어가서는 밥 대신 술을 먹고 내가 집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겠다던 남편이, 그야말로 대접은 말고라도 아내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몇 번이나 먹었을까.


 주일이나 공휴일엔 가게 문을 좀 늦게 여니 그런 날은 밥을 새로 하고 좋아하는 생선을 굽고 찌개나 국을 끓이고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 먹는 것이 일상이긴 했으나, 어림잡아 일주일, 한 달, 일 년으로 계산해 보면 과연 며칠이나 된다는 말인가. 그러니 마음은 늘 허기진 사람처럼 그랬을 것 같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살아 왔는데, 그런 밥 타령도 할 수 없는 하늘나라로 간지도 어느덧 일 년이 흘렀다.


 이민을 와서 살며, 남편은 자기가 계획하고 꿈꾸어 왔던 삶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마음이 늘 안착을 못하고 발이 허공에 뜬 사람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난 캐나다에 와서 살며 물질적인 것엔 연연하지 않고, 내가 그나마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별다른 불만이 없었으니 나와 남편은 그런 면에서도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민을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사회에서는 아이들도 여자도 다 일을 한다고 하는 말에 딸들이 더 놀랐었다. 좋은 건 모르고 그런 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아느냐고. 그런 점들을 견주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좀 합리화시키려는 마음이 없지도 않았겠지만, 그 마음 한 구석엔 나나 딸들에게 잘 해 줄 수 없었다는 현실 때문에 크게 어깨 한 번 펴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부부나 자식 지간이라도 서로 속마음을 털어 놓지 않는다면 과연 그 마음을 어느 만큼이나 헤아릴 수 있는 것일까. 새삼 돌아보니 과연 난 남편을, 남편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남편 역시도 나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 동안 살면서 남편의 고충, 외로움을 외면하고 산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지니 측은한 마음이 가슴을 적신다. 


 그 집을 떠나기 전 남편을 생각하고, 그 동안 잘 살았다며 집에 대해 고마운 마음 표하고 싶어 시루떡을 하고 새로 밥을 짓는다. 비록 남편과 함께 하지는 못하는 밥상일지라도, 이사를 가게 되면 영원히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집, 밥상도 없을 것이란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렇게도 밥 타령이더니, 도대체 하늘나라에서는 어떤 나날을 맞고 있으려나, 아직 이승에서 다 하지 못한 시간을 갖고 있으려나 싶기도 하고 참 궁금하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