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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자 수필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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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별(惜別)의 피크닉

 

 어느 날 개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산책길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그분은 개들을 좋아한다며 첫 만남부터 마음이 통하는 듯했다. 그때가 이민 오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모녀지간이라고 했다. 


 몇 번 만나면서 우린 호칭을 정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나와 성 씨가 같기도, 나 보다는 12살이 연배였다. 그래서 주로 형님, 아우, 기르시던 개 이름이 아롱이라고 해서 우리 애들하고는 아롱이 할머니, 난 개들의 어미인 삼순이 엄마로 통한다. 


 그분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키우던 개를 보내고 그때는 개를 키우지 않고 있었기에 우리 개들을 무척이나 좋아 했다. 상황이 그리 되다 보니, 혼자 다닐 때보다 같이 다니니 즐겁기도 더 자주 나가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삼순이가 새끼들을 두 번이나 낳고 보니 우리가 키우는 개 숫자도 7마리나 되게 되었다. 그리 되니 점차 개들을 좋아해서 산책을 같이 다니는 것을 넘어서서 나를 좀 도와주려는 마음도 크셨을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쯤은 개 2, 3마리를 데려다 목욕까지 시켜 주시기도 했다. 해를 더할수록 체력이 힘에 부치다 보니 1, 2마리에서 그래도 한 마리는 거의 매주 데리고 가셨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산책을 나가는 줄 알면 빨리 나가자고 보채기도 하고 신바람이 나서 콧노래라도 부르는 듯 좋아한다. 


 그러니 집을 나서서 찻길을 건너서면서부터는 아예 할머니 집 방향으로 나를 끌기도하고 멀리서 할머니가 오실 것 같으면 걸음이 빨라져 주변에 다른 개들이 없어 안전하겠다 싶으면 내가 아예 줄을 놓아주면 한걸음에 달려가곤 했다. 


 그렇게 산책을 다닌 지도 어느덧 10년 세월이 되어 온다. 그런데 이젠 내가 이사를 가게 되어 더 이상 개들이나 나, 할머니와의 정겨운 산책도 할 수 없으리라 싶어 난 평소에 차를 타고 다니는 20분 거리의 공원을 가기로 했다. 차로 20분 거리의 공원까지 가려면 개 몇 마리가 처음엔 멀미를 하는 듯 핵핵, 헉헉대며 보채기도 하더니 이젠 많이 얌전해지기도 하고 차를 타려면 펄쩍 뛰어 오른다. 


 20분 거리의 공원엘 가면 줄을 잡고 한바퀴 돌지만, 10분 거리의 공원엘 가면 평일엔 사람이 거의 없어 그 넓은 공원에 풀어 놓으면 서로 달리기 경주라도 하듯 달리며 나 잡아 봐라 술래잡기라도 하듯 놀더니, 이젠 그런 시간을 언제 다시 가질 수 있으려나 돌아보니 10년 세월이 엊그제 같다. 


 개들이야 그 느낌을 얼마나 알기나 하려나. 난 이사를 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것이면 뭐 그렇게나 아쉽고 허전할까. 


 이번 이사는 개 세 마리 중에 한 마리는 내가 데리고 큰 딸네로, 두 마리는 작은 딸네로 가야 하기에 그래서 가슴앓이를 했다. 그것도 작은 딸이 처음부터 확실하게 데려가겠다고 했으면 마음고생이 이리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큰 딸네 집엔 이미 개 두 마리가 있으니 세 마리를 다 데리고 갈 수는 없으니, 당연히 두 마리는 작은 딸이 데려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사 날짜가 다가와도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으니 이번엔 그리 방치할 것 같으면 두 마리는 유기견센터나 보호시설로 보낼 것이라고 선언을 했다.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고 보니 그 견공들을 어쩔꼬! 싶은 생각에 동네 산책길을 나설 때나, 언제 다시 이것들을 데리고 차를 타고 공원산책을 하려나 싶으니, 그야말로 아쉬운 ‘석별의 피크닉’이네 싶어 우정 시간을 내어 두 곳을 다녀왔다. 


 평소에도 공원산책은 자주 하지만 차를 타고 가는 공원엘 가는 날엔 마치도 소풍, 피크닉을 가는 마음으로 먹을만한 음식 한두 가지에, 커피까지 들고 나가서, 10분 거리의 공원엘 가면 돗자리를 펴고 앉아 편하게 있다가 오곤 했다.


 난 가끔은 산책길에 개들을 데리고 나가지 않고 편하게 다녔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형님과 같이 나갈 때면 개들을 두고 우리끼리 나가기가 늘 마음에 걸려 거의 언제나 개들을 데리고 같이 다녔다. 


 그런데, 이젠 내일 모레면 정들었던 산책길, 공원에서의 만남도, 아롱이 할머니, 개들과 같이 할 수 없겠지, 아니, 애써 시간을 만들어 나간다 해도, 이전에 가졌던 그런 느낌, 감상은 아니겠지 싶으니 그동안 지나온 시간, 순간이 아쉬워 벌써부터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구멍이 아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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