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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홍 서평] 장편소설 ‘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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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칼의 길’

 

박용만, 아까운 독립투사의 삶/최연홍(워싱턴 거주 시인/ 정치학 박사)

 

 

 

최연홍(워싱턴 거주 시인/정치학 박사)

 


  

  

 

 

토론토에 사는 이상묵 시인이 식민지시대를 살다 간 박용만의 삶을 조명한 책을 내놓았다. 이승만, 안창호, 박용만 3인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활동한 조선의 독립투 사들. 이승만은 외교(말의 길), 안창호는 교육(글의 길)에 비해 박용만은 무력(칼의 길)으로 노선들이 달랐다. 박용만의 이름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묵은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한다. 한국사가 그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그가 오히려 미국에서 맨 처음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죄송하다. 박용만은 네브래스카 주립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소년병학교를 창설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꿈을 꾸고 실천에 옮긴다.


조선의 독립이 그의 삶이었고 종교였다. 만주, 연해주, 중국을 전전하다 북경에서 비명에 죽어갔다. 참으로 애석한 죽음이다. 


독립을 위해 무력을 키워야 한다고 군사교육을 젊은이들에게 설득하고 실천한 선각자. 흩어진 독립운동단체들을 규합하여 하나로 모으려고 노력했던 애국자. 신한민보 발행인, 주필과 편집인, 국민회보 발행인, 주필과 편집인, 사탕수수밭에 노동자로 온 조선인을 하나로 모으고 자치권을 획득한 지도자, 안창호와 연대하고 이승만을 하와이로 불러드린 인물이지만 이승만에게 배척 받고 유랑하게 된 불운의 사나이. 


그러나 끝까지 하와이 동포들이 그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철원 출신의 큰 인물. 나는 박용만을 미국 속의 한인사 첫 장에 나오는 조금은 특이한 인물로 알고 있었다. 한인의 군사력을 키워서 일본과 군사적으로 맞서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 인물이어서. 그러나 이 책을 읽고 그는 그 당대 ROTC 군사훈련을 대학 교육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인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일본과 싸워 이겨야 독립한다고 믿었던 인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시인이요, 문필가요, 군사전략가였던 보기 드문 독립투사. 조선이 식민지가 되었던 직접적인 이유는 군사적 열세였다고 그는 믿었다. 


400 쪽에 이르는 이 책을 받고나서 나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이 책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역사적 활동을 정리하고 인용하고 그의 문장을 섭렵하고 그의 발자취를 찾아간 저자의 공을 높이 평가한다. 


소설적 재미도 사용하며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시인이 써놓은 전기가 독자가 읽기 좋은 매력적인 역사서가 되었다. 가장 큰 저자의 공은 박용만이 살았던 시대의 인물들의 조명이다. 


이승만, 안창호, 상해임시정부의 인물들이 끓임없이 등장한다. 특히 하와이에서 이승만과의 반목은 “필요한 악”의 일부분이다. 저자는 이승만의 조직 파괴, 분열, 권위적인 성격으로 그가 가는 곳마다 한인사회가 분열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 이승만은 안창호도 모함하고 박용만을 위협하는 테로를 뒤에서 자행한 인물이다. 초대 대통령을 지내고 10년 집권 후 4.19 학생의거로 물러난 이승만의 어두운 비인간적인 성품이 그대로 나타난다.


그가 해방된 나라에 돌아와서 남한이라도 자유민주국가로 세우고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공을 치하 하지만 그의 어두운 정신분석학적인 음모와 파괴 성품은 더 연구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이 책의 저자처럼 이승만이 한국을 남북으로 나뉘게 한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고통스러운 한국인의 비애는 분열의 유전인자가 아닌가? 이승만이 "뭉쳐야 산다”고 아우성 했지만 그가 분열의 씨앗을 뿌리고 다닌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 안에서 서재필, 안창호, 박용만과 친화하지 못한 책임을 다 이승만에게 돌릴 수 없지만 가장 큰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립투사들끼리도 화목하지 못하고 지역적으로 사상적으로 분열된 백성들. 지금 우리 들은 얼마나 달라져있는가 묻고 싶다. 그리고 애국자를 죽이는 사회, 자객이던 부랑자들이던, 이를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한국인이나 다른 민족이나 똑같은 인간의 유전인자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공동목표 앞에서 구성원들의 다자간 갈등과 분쟁의 해결을 위한 장치가 문화적이던 법적이던 필요했던 것 아닌가? 


독립된 나라를 세우는 목표는 같았다고 말하면서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 달랐다면 누가 어떻게 조정자의 역할을 맡아야 했던가? 상해 임시정부는 오합지졸들의 엉성한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대 훌륭한 우국지사들이 모여서 왜 오합지졸로 변했던가? 여기서 한국인의 지성적인 논쟁이 시작해야 한다. 


나는 1996-2006년 환경정책학자로 한국에 살면서 정책토론회가 폭력의 제물로 변하고 감금당하는 테러를 체험하기도 했다. 그 후 얼마나 한국사회가 변했는지 모른다. 아직 분단된 나라. 그 원인은 UN 감시 하의 선거를 거부한 북한이라고 생각한 다.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국가를 세워 나는 다행으로 생각하며, 김일성 치하에서 살기 보다 분단된 나라에서 살아왔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남북이 다 똑같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승만을 친일파로 몰아가는 비난은 온당하지 않다. 그도 한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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