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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환의 돈 이야기(45)-돈과 평화(2)

 

 

One man with a gun can control 100 without one. (Vladimir Lenin)

 


 
(776호에 이어)


1920년


1차 대전 후 1919년에 찾아온 미국 경제침체는 저이자 정책과 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상품개발로 활성화 되었다. 전쟁무기 공장을 소비품 생산공장으로 만들었고, 전쟁에서 돌아온 장병들의 일자리를 창출해 미국은1920년대의 경제 대호황을 이루었다. 이에 따라 유럽제국도 1924년부터 경제호황을 맞게 되었다. 


1923년


레닌에 의한 공산주의 집단농장체제는 1921년 흉작으로 5백만여 명의 농민들을 굶어 죽게 하였다. 궁여지책으로 레닌은 미국의 산업을 모방하여 신경제정책을 폈고, 개인소유의 사업을 인정하여 중화학공업을 일으켜 가난한 배급제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1922년 레닌 사망 후 그를 계승한 스탈린은 1923년 소비에트 연방을 세워 셰계 최대의 공산주의 국가를 이룩하였다. 스탈린은 반대파들과 부르주아지2천만을 아사, 숙청, 학살하여 7천만의 중국인민을 죽게 한 모택동 다음가는 살인독재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스탈린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레닌의 뒤를 이어 유태인들을 학대하여 러시아계 유태인들은 미국, 영국, 프링스로 대량 이주하게 하였다. 


1928년


스탈린은 모든 사업을 국유화하여 중앙통제계획체제로 바꾸었다. 그나마 레닌의 자본 사유화에 힘입었던 경제성장은 지속되는 것 같았으나 결국 경제개발 뒷걸음질을 시작하여 소련연방의 경제는 향후 풍부한 자원수출에 의존하게 되었다. 


1929년


미국경제 팽창과 저이자 정책은 융자에 의한 주식시장 과잉투자로 이어지고 주가의 고공행진을 야기했다. 결국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1929년 세계공황을 맞게 되어 미국을 포함한 유럽경제는 파국으로 이어졌고, 경제회복과 더불어 1939년 세계2차 대전을 맞게 되었다.


1944 년


세계 2차 대전을 통해 방위산업으로 세계최대의 부강국이 된 미국은 UN 결정권을 이용하여 미국 뉴햄프셔 브레튼우즈에서 미국과 연합국간에 환율을 조정하는 브레튼조약에 서명하게 하였다. 


금본위제도 대신 금 1온스를 미 35달러로 고정시켜 환율을 조율시켰다. 세계2대 강국인 소련은 위 조약은 미국자본주의 중심인 월가의 금융기관이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도모한다고 불참을 선언했다. 향후 위 조약은 IMF와 세계은행을 낳아 미 달러의 기축통화고수는 물론 세계각국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945년


2차 대전 후 세계는 미국의 자본주의체제와 소련의 공산주의체제로 갈라졌다. 미국과 소련은 일본의 속국이었던 한국을 남북으로 분단시켰다. 미국은 2차 대전 중 연합국에 무기수출로 전후 세계 총생산의 50%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전후 황폐된 유럽경제는 마샬플랜으로, 일본은 원조로 재건시켜 1960년대 말까지 소련을 포함한 선진국 세계경제는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1971년


전후 장기간 경제호황은 인플레를 초래하고 월남전쟁으로 악화되어 세계각국이 미 달러를 금으로 요구하자, 미 닉슨 대통령은 달러의 환금을 불법화하고 고정된 금값을 자유시장가격에 맡겼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3차 산업혁명의 태동을 일으키는 트랜지스터 산업이 시작되었다. 


1974년


1973년 석유파동으로 세계는 소련을 포함한 산유국을 제외하고는 인플레에 의한 경제타격으로 극심한 경제침체를 맞아야 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하여 산유국의 수익금을 미 달러로 보유하게 하는 페트로달러 제도를 도입하여 인플레를 막고 경제침체를 해결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실리콘밸리의 인텔 8080 컴퓨터 칩이 개발되었고, 1976년 애플컴퓨터 개발로 미국은 세계 정보산업의 본격적인 수혜국이 되어갔다.


1980년


1979년 제2의 석유파동으로 세계경제는 20% 가까운 하이퍼인플레이션(물가 급등)로 경제침체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애플컴퓨터의 상장과 더불어 미 실리콘밸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같은 기라성 같은 젊은 사업가들을 배출했고, 이후 새로운 정보상품으로 지구인들의 생활양식을 바꾸며 미국 경제성장을 일으켜 인플레를 통제할 수 있었다.


1991년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으로 부를 누리며 미국과 군비경쟁을 하던 소련은 아프간전쟁에서 물러나야 했고, 영국 북해 오일탐사 성공으로 유가가 폭락하면서 경제파멸로 붕괴되었다. 


74년 만에 소련인들은 물론 세계인들은 환상적인 막스 사상을 추종한 공산주의경제가 돈이 없어 몰락하는 것을 확인했다. 대가로 1억 가까운 인류의 목숨이 사라졌다. 

 

결론


우리(국민)의 적은 가난이다. (박정희)


미국의 돈은 자유경쟁에 의한 사업가들이 만들고, 금융통제는 유태계 경제인들, 방위산업은 미 정치인들이 결정하여 국력을 키운다. 한마디로 돈으로 세계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힘을 키운다. 


이 사실을 가장 잘 파악하여 한국의 경제신화를 만든 박정희 경제국부 탄생 101주년(11월 14일)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그의 부국강병 정책을 재 다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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