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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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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도들-사도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자라.(마 10:2-4)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명단에 아홉 번째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순번으로 열둘 중 아홉 번째이며, 그의 사역에 관해서도 특별히 기록된 것이 없다고 해서 그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역사는 앞장선 소수의 지도자들에 의해 그 흐름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표면에 나타나지 않으면서 뒤에 숨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영웅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예수님을 보좌하며, 초대교회를 이끈 베드로와 요한 같은 사도들도 명단에는 있지만 그들의 역할이나 행적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없는 사도들도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탁월한 지도자들과 그들을 도와 묵묵히 주어진 임무에 완수하는 이들 모두를 사용하여 그의 뜻을 펼쳐 나가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로 그 이름이 성경에 나오기는 하지만 그의 사역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구분하기 위해 “작은 야고보”라 불리기도 한다. 


세베대의 아들을 “큰 야고보”로, 그를 “작은 야고보”로 부르게 된 것은 그가 세베대의 아들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늦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고, 그의 체구가 세베대의 아들보다 작았던 까닭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가 “작은 야고보”가 된 것은 “큰 야고보”보다 인간됨이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이며, 그에게는 “요세”라 이름 하는 형제가 있었다(막 15:40).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가 야고보의 부모였다는 사실과(눅 24:18)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세리 마태와 야고보는 형제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마태의 아버지도 알패오라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막 2:14). 만약 마태와 야고보가 형제였다면 야고보도 세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어떤 기준에 의해 열두 제자들을 선정하셨을까 하는 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명단을 보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사실은 열두 명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부유하지도 않았고, 높은 학력의 소유자도 아니며, 특권층에 속하거나 높은 지위를 지닌 사람들도 아니었다. 탁월한 능력과 넓고 깊은 식견을 지닌 지도자들은 더욱 아니었다. 예수께서 부르신 제자들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그러나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이었다. 


예수께서 원하신 제자들은 해박한 지식과 지혜로 충만한 특출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능력과 재능을 보신 것이 아니고 그의 가르침을 받아 그들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보신 것이다. 


예수님은 “현재의 그들” 아닌 그와 동거하며 “변화할 그들”을 보신 것이다. 따라서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 주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님의 충성된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선택하신 열둘의 제자들 중 어부들이 제일 많았다는 점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갈릴리 호수 주변에 어부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여러 명의 어부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이 어부들을 택하신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은 학력도 변변치 못했고, 사회적인 배경도 내세울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서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남들이 없는 것이 있었으니 “인내심”이 그것이었다. 낚시를 던지든, 그물을 내리든 고기가 걸려들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직업이 어부였기 때문이다. 


세상 연락을 즐기며 죄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전도자들이 지녀야 할 필수적인 성품이 인내심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줄 안다. 어느 선교사가 선교의 열매를 맺으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선교의 지침이 아닐 수 없다.


이 선교의 기본 지침을 예수께서는 참을성이 강한 어부들을 그의 제자로 삼으심으로 그의 뒤를 따르는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어부들은 용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큰 물결이 설레는 거친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나갈 수 있어야 하고, 사나운 풍랑과 싸워 이겨야만 하는 것이 어부들이기 때문이다. 


갈릴리 호수는 해면보다 낮은 까닭에 예상 못한 광풍이 몰아치기로 유명한 곳이다. 거기서 고기를 잡으며 담력을 기른 어부들의 용맹스러움이 예수님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복음 증거자들에게는 온갖 시련과 역경이 찾아 들고, 상상하기 힘든 핍박이 가해지기에 그들은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함을 예수님은 너무도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어부들은 용기의 사나이들이었을 뿐 아니라 용맹스러워야 할 “때”까지 알고 있었다. 낚시를 던지고 낚아챌 때와 그물을 내리고 올릴 순간과, 돛을 달고 내릴 시간을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부들이 고기를 잡을 순간을 정확히 판단해야 하듯 전도자들도 천국의 진리를 선포할 시기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어야만 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께도 인도할 수 있다. 


경험 있는 어부들은 장소에 따라 어떤 미끼를 사용하며, 어떤 그물을 던져야 하는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늘의 진리를 외칠 때도 장소와 대상에 적합한 말씀을 선택하여 듣는 이들의 정서와 수준에 맞게 가르치고 설교해야만 말씀의 열매를 거둘 수 있는 법이다. 이 원칙을 가장 효과적으로 적용하여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전도자가 사도 바울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을 줄 안다.


어부들이 많은 고기를 잡는 또 하나의 비결을 그들이 낚시를 내리고, 그물을 던지는 것을 고기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전도자들이 그들을 과시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그들에게 쏠리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닦고 조용히 사라져 간 세례 요한은 철저하게 자기를 노출시키지 않은 사람 낚는 어부였다. 


예수님이 세리 마태를 제자들 속에 포함시킨 사실 또한 무심히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세리들은 유대인들이 멸시하고 증오하는 민족의 배반자들이었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에 아부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던 친일파들처럼 로마정부에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그들이 경멸하는 창녀들과 같이 취급하였던 것이다(마 21:31).


하지만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그의 제자로 삼으셨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주 안에서 새로워지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시몬 같은 민족주의자도 있었다(마 10:4; 눅 6:15). 민족주의자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통치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가 되어있었다. 따라서 시몬과 마태는 결코 손잡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예수님을 섬겼고,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생사를 같이 하는 전우로서 복음전선에서 싸우는 사도가 되었다. 아무리 서로를 적대시하며 증오하는 사이일지라도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들의 적대감과 증오심 또한 사랑으로 변한다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보잘것없으면서도 제각기 독특한 특성과 인류구원의 사역을 감당할 잠재력을 구비한 열두 제자의 하나로 선정된 야고보의 생애와 그의 행적에 관해서 성경이 특별하게 증언해주는 바는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사가였던 유세비우스는 야고보에 관해 “그는 한 때 구국운동에 매진하는 애국자였으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로는 주님의 성실하고 충실한 제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관리하기에 최선을 다했으며, 열두 제자들 중 가장 준수한 용모를 지녔으며, 기도를 제일 많이 한 제자이기도 했다.”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인생의 배역을 기쁘게 받아드려 그 역을 충성스럽게 수행한 제자가 야고보였다는 것이 유세비우스의 평가인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진술은 성경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우선 예수께서 그를 원하셨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질을 구비했음을 말해준다. 3년 간 예수님을 섬기며 한 번도 동료 제자들과 갈등이나 불화가 없었으며, 주님의 뜻을 거역한 일도 없었음은 그가 겸손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주님께 순종한 제자였음을 말해준다.


그는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분부하신 대로 예루살렘에 남아 기도에 전념하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제자이다(행 1:4, 12-14). 이 같은 사실들은 야고보가 주연은 아니었지만 조연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음을 말해준다. 


초대교회에 대한 박해가 표면화 되면서 사도들과 성도들이 사방으로 흩어질 때 야고보도 예루살렘을 떠나 시리아로 갔다고 한다. 핍박 받을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기 위함이었다.  


시리아에서 선교하며 교회를 세운 야고보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하늘의 진리를 선포하다 유대인들에 의해 주후 62년경에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바쳐야 할 모든 충성을 바치며 인생의 경주를 마침으로 천국에 세워진 열두 진주 중 하나에 그의 이름이 새겨지는 빛나는 승리자가 되었다(계 21:14). 


사도 야고보를 닮아가는 성도들이 늘어갈 때 죄로 물든 어둔 세상이 밝아지며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 위에 충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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