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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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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그의 아버지 요셉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니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 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18-25)

 

2000여 년 전, 유대 땅 나사렛이란 작은 마을에 요셉이라 이름하는 청년이 살았다. 성경에는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과 직업이 목수였다는 것 외에는 기록된 것이 없다. 따라서 그의 집안, 성장과정, 학력 등에 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지내는 나사렛처럼 작은 고장에서 목공소를 했다는 사실은 그가 주위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임을 말해준다. 이 같은 청년 요셉은 순박하고 아름다운 처녀 마리아와 약혼하고, 단란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설계하며 목공소 일에 더욱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요셉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당시엔 약혼을 하면 법적으로는 부부였지만 결혼예식을 올리기까지 동침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그녀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졌음을 의미했다. 더 큰 문제는 율법은 처녀가 임신을 하면 돌로 쳐 죽이기로 규정하고 있었기에(신 22:23-24) 임신사실이 알려지면 마리아의 운명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마리아를 사랑하는 요셉은 그녀의 일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도 없었고, 그녀와 결혼식을 올릴 수도 없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심한 고민과 갈등 속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던 요셉은 남몰래 파혼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성경에는 이 같은 그의 결단을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라 말해준다. 


그런 결심을 한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심이라.”일러준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 마리아의 몸 속에 생성된 생명은 성령으로 인한 것이며, 태어날 아이는 지은 죄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할 구세주이심을 밝혀주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에게 추방명령을 내린 에덴의 법정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때 하나님은 하와를 유혹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겠고,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창 3:15)라 말씀하셨다.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날 인류의 구세주를 의미한 것이다. 


처녀에게서 태어날 구세주를 통하며 이루실 하나님의 인류구원 계획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에도 나타나 있다. 


이 같은 하나님의 깊고도 원대한 계획을 요셉이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모르고 있었다면 요셉은 천사가 들려준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요셉이 세상에 오실 구세주는 신성과 인성을 다 지녀야 하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서 나오되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자기 아내 마리아가 그 처녀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은 꿈에 천사가 들려준 말을 믿었기에 마리아에 대한 오해를 거두고 그녀를 그의 아내로 맞아드린다.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요셉의 분노는 컸을 것이다. 믿고 사랑한 여인이 그를 배신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요셉은 마리아의 불륜행위를 율법에 의해 형벌을 받게 하거나 다른 방법을 통하여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렇게 할 당당한 권리가 있었다. 모세의 율법은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갚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 19:21) 


요셉의 선택은 그가 조용히 물러서는 것이었다. 마태는 이 결정을 한 요셉을 가리켜 “의로운 사람”이라 기록했으며, 그 같은 요셉의 의로움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되는 복음의 시대에는 정죄와 보복 아닌 용서와 화해가 지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예수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며(마 5:44), 다른 사람의 죄를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마 18:21-22) 가르치신 것은 복음의 목적은 정죄나 처벌 아닌 사랑과 용서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요셉이 자기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아니한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도 천사의 말을 믿고 그녀를 받아드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보여준 사랑과 용서의 자세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것이기 때문이다. 


요셉은 의로웠을 뿐만 아니라 순종의 믿음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마리아에게 잉태된 생명이 성령에 의한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드렸다.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남자를 모르는 그녀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고 반문했지만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에 의한 것이란 천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드린 것이다. 요셉이 믿음의 사람임을 입증해주는 대목이다.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에 그의 말씀을 무조건 받아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그런 믿음의 용장이었다. 하란 땅에 살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그곳을 떠나라고 하셨을 때 그는 “어째서 여기서 애써 마련한 삶의 기반을 다 포기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먼 곳으로 가라하십니까?”라 항의하지 않았다. 


그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며, 그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란 땅을 떠난 사람이 아브라함이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천사의 말을 듣고 파혼하려던 마리아와 결혼한 요셉은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하니 애급으로 피신하라는 천사의 말을 듣는 즉시 아내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급으로 간다. 온갖 고난과 난관을 극복하며 남의 나라에서 몇 년을 지내다 헤롯이 죽었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요셉은 또다시 멀고 험한 길을 걸어 나사렛으로 돌아온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따르는 이 “순종의 믿음” 이야말로 그가 보여준 의로움과 더불어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 역할을 잘해낼 수 있었던 요소였다. 


고향에 돌아온 요셉은 나사렛에서 목수의 일을 계속하며 아내와 자식들(예수님 외에도 요셉에게는 적어도 네 명의 아들과 두 딸이 있었다.)을 양육하며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았다. 특별히 맏아들 예수가 구세주로서의 능력을 배양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요셉은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유월절을 지키려 예루살렘에 갈 때마다 소년 예수를 동반했다는 사실로부터도 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들 예수로 하여금 유월절 축제에 참석하며 유대종교의 의식을 보고, 듣고, 배우며, 익히게 하기 위한 것이 요셉의 의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12살이 되던 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돌아갔던 마리아와 요셉은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일행 중에 없는 것을 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3일 후에 성전에서 선생들과 토론하고 있는 예수를 발견하고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도 어째서 혼자 여기 남아 있느냐고 나무라자 어린 예수는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몰랐습니까?”(눅 2:49)라 되묻는다. 


이것이 요셉이 성경에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 마리아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요셉은 그때 이미 세상을 떠났던 것으로 추측된다. 


성경에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마리아와 요셉이 결혼할 때 마리아는 13세 전후였을 것이고(그 당시 여자들의 결혼 적령기는 13-14세였다.), 요셉은 30이 조금 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때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45세 정도였다고 하니, 예수님이 30세가 되어 지상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요셉은 죽었을 것이란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요셉은 높은 학력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사회적으로 공헌한 바도 없는 서민의 한 사람으로 2000여 년 전 유대에서 짧은 기간을 살다 갔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졌던 인생의 사명은 구세주의 아버지라는 막중한 것이었다. 요셉은 이 무겁고 중요하면서도 값진 임무를 두려움을 정복하는 용기와 순종의 믿음으로 충실하고 성실하게 수행했다. 


구세주 예수님이 험하고 힘든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가실 수 있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로지 사랑과 헌신과 희생으로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한 요셉의 삶은 우리들 인생의 이정표가 되어야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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