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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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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포도원 농부 비유


 

“또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있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로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마 21:33-46)

 

 

“두 아들 비유” 다음으로 마태복음에 나오는 “포도원 농부 비유”는 마가복음(12:1-12)과 누가복음(20:9-19)에도 기록되어 있다. 세 복음서에 모두 다 같이 나오는 이 비유는 표현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내용과 핵심은 같으며, 예수님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두고 한 비유라는 점도 세 복음서에 명시되어있다. 또한 이 비유는 당시 유대 사회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유대인들에게 잘 전달되고 이해되는 내용이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안에는 포도즙 틀을 들여놓고, 망대를 세우는 등 포도나무를 재배하여 열매를 거둘 수 있는 모든 조처를 취한 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먼 곳으로 떠난다. 당시에 흔히 있던 일이었다. 그 시기에 팔레스타인 지역은 여러모로 불안전한 상태였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들이 농장이나 집 또는 포도원을 그들 명의로 장만해 놓고는 세를 주고 장기간 여행을 하거나 아예 안전한 곳에 가 살면서 세만 받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는 현금이나 농장 소산물의 일정 양을 받는 것이 관례였다. 경제가 일반적으로 침체된 시기였기에 그런 식으로 계약을 맺고 남의 농장이나 포도원을 경작하는 사람들을 구하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비유에 나오는 포도원의 경우 땅을 사서 포도나무를 심고 재배하여 포도를 수확하는데 필요한 제반 시설을 갖추는 데 드는 경비는 주인이 부담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4년 간 포도원을 운영하는 비용과 농부들의 생활비도 주인이 책임져야 했다. 


포도나무는 심은 지 5년이 되는 해부터 열매를 맺는 나무다. 따라서 새 포도원에서 포도를 수확하여 수입을 얻기 시작하려면 많은 자금을 계속하여 투자해야 했음은 물론 5년이란 세월을 끈기 있게 기다리는 인내심도 지녀야 했다.


5년이 흘러 포도가 열릴 때가 되자 주인은 세를 받기 위하여 사람들을 포도원으로 보낸다. 그런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농부들이 마땅히 내야 할 세를 내지 않고 주인을 대신해 온 사람들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뜻밖의 사태에 놀란 주인은 더 많은 사람들을 보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엄연한 계약위반일 뿐 아니라 형사적으로 처벌받아 마땅한 범죄행위를 농부들이 저지른 것이다. 


따라서 포도원 주인은 법에 호소하여 농부들을 엄하게 처벌받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낸다. 아들이 가면 농부들이 생각을 달리하여 그들의 잘못을 사죄하고 세를 바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주인으로서는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자비와 관용을 농부들에게 베푼 것이다. 그러나 완악한 농부들은 주인의 넓은 아량과 관용에 감사하는 대신 상상 못할 만행을 저지른다.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여버린 것이다. 주인의 아들을 살해하면서 그들이 한 말은 “상속자인 아들을 죽여 주인의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였다.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여 땅을 사서 포도나무를 심었고, 포도가 달릴 때까지 모든 경비를 지불하며 그들을 지원해준 주인의 배려와 인내를 또다시 배반함과 동시에 탐심에 사로잡혀 포도원 자체를 그들의 소유로 만들려는 천인공노할 죄악을 범한 것이다. 이 비유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은 이스라엘이다.(사 5:1-2, 7)


포도원 경작을 맡은 농부들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이며, 주인의 명을 받들어 포도원에 갔다 봉변을 당하고 죽기까지 한 사람들은 선지자들이다. 주인의 아들이 예수님임은 명약관화하다. 이 비유를 들으며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즉석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선조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비유를 읽는 우리들도 이 비유를 들려주시던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진리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신뢰는 크기만 하다. 아담과 하와에게 “이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며 이 세상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며 그가 창조하신 세상을 관리하는 전권을 주신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예수님은 포도원 주인이 막대한 자본과 노력을 투입하여 이룬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일임하고 멀리 떠났다는 사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책임의 막중함과 우리를 향한 기대가 어떤 것인가를 들려주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했다.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사명을 주시고 그것을 감당할 능력까지 주셨건만 우리들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바빠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몫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농부들이 주인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고 떠난 포도원에서 제대로 일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탓하거나 벌하지 않으시고 우리들이 제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아버지가 집 떠난 탕자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하지만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인내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인내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때가 되면 공의에 따라 우리를 심판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자기 아들까지 죽인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제 때에 세를 낼 다른 농부들에게 맡기는 것이 이를 말해 준다. 


반드시 오고야 말 심판의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할 인생의 열매를 맺으며 사는 것이 복되고 성공된 삶이다. 그런 축복받은 사람들의 대열에 서려면 공의의 하나님의 진로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그가 세상에 오시면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고 배척하며 핍박하다 끝내 참혹한 십자가에 처형할 것을 알고 계셨다. 


죽을 줄 알면서도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이다. 동시에 그가 향하는 길이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로 뚫린 것을 알면서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을 맞아 파멸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처럼 악하고 큰 죄악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용서받지 못할 죄악을 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고 그 시신을 바위굴에 눕혔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어 그의 우편에 앉아 세상을 통치하며 역사를 주관하는 만왕의 왕으로 삼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고 완악한 무리들에 의해 “건축자의 버린 돌”이 되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셨다. 악인들이 아무리 머리를 맛 대고 악랄한 음모를 꾸미며 하나님의 뜻에 도전한다 해도 패배를 모르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결코 악인들의 사악한 계교가 이루어지게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비유를 끝내시면서 예수님은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님 위에 떨어지는 사람은 깨어질 것이요, 그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전적인 헌신과 충성을 바치는 대신 하나님의 뜻에 반항하여 대항하는 자마다 비참한 패배자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이 되는 이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에 들어가게 될 것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넓은 사랑의 품에 안기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에 붙잡히느냐의 차이는 크기만 하다. 어느 것을 택하느냐는 우리들의 선택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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