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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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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누룩 비유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에 갔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눅 13:20-21)

 

누룩 비유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타나 있는 비유로서 겨자씨 비유 바로 다음에 나온다. 연속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들 두 비유는 “겨자씨”와 “누룩”이란 단어만 다를 뿐 그 내용과 의미는 거의 비슷하다. 그러기에 이 두 비유를 하나로 묶어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설교를 할 때도 둘을 한 번에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천국이 작고 미약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놀라운 성장과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해주는 점에 있어서는 일맥상통하지만 하늘나라의 시작과 그 성장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들려주고 있다.


마태가 기록한 누룩 비유는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가 전부다. 그러나 이 짧은 비유를 듣는 사람들은 여자가 수북이 쌓인 밀가루 속에 작은 누룩 덩어리를 넣고 반죽하는 모습과 그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장면을 선명하게 머리에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누룩의 일상생활에서의 필요성과 그 효능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소량의 누룩이 엄청난 양의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과 끝이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큰 차이가 나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신 것이다. 


여인이 반죽한 밀가루 서 말은 50 파운드에 해당된다. 이처럼 많은 양의 밀가루에 작은 누룩 덩어리 하나를 넣어 반죽하면 100여 명이 먹을 수 있는 빵을 구울 수 있게 부풀어 오른다. 


뿐만 아니라 누룩을 넣어 반죽하여 빵을 구우면 구멍이 숭숭 뚫리고 부드러워서 유대인들이 유월절에 먹는 누룩 없이 구운 건조하고 딱딱한 빵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맛이 좋다. 하지만 성경에는 누룩을 좋지 못한 효능을 내거나 나쁜 영향력을 끼치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기록한 대목들도 여러 군데 있다. 


예수께서 “삼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마 16:6)라 하신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그들의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언행에 현혹되지 말 것을 가르치셨다. 사도 바울이 “적은 누룩이 온 땅에 퍼지느니라.”(갈 5:9)한 것은 그 당시 만연하던 유대주의의 그릇된 교훈과 사상에 물들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놀랍게 성장하게 하는 누룩의 효능을 통하여 천국을 우리들의 마음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을 가르치고 계시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천국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크고 영화롭게 성장함을 말해주는데, 전자가 외적인 성장을 말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외적인 성장과 병행하여 일어나는 내적인 성장에 관하여 말해준다. 


복음의 씨앗이 그 마음에 심어져 뿌리내리는 사람마다 새롭게 변화한다. 예수님이 선포하기 시작한 천국복음은 세찬 세파에 묻혀 소멸되는 듯싶었다. 작은 누룩 덩어리가 밀가루 반죽에 섞여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전하는 천국의 진리는 서서히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복음이란 누룩이 완악한 마음으로 그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행하던 사람들이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음란한 사람, 우상을 섬기며 간음하는 이들, 탐색하거나 남색 하는 자들, 도적질하며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 술 취하고, 욕설을 일삼으며 남의 소유를 착취하던 무리들이 그들 안에 들어온 복음이란 누룩으로 인해 거룩하고 의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전 6: 9-11) 


이처럼 복음은 육에 속한 사람을 영의 사람으로 바꾸는 능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쓸모 없는 인간을 유용한 인간으로, 나약하고 비겁한 자를 강하고 용기 있는 자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다. 


복음의 능력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역사운영에 동역자가 된 사람들을 말하면서 여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그들이 이방인이나 노예나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다. 여자들이 주어진 인간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남자들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으며 살았던 그 시대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해주는 사실이다.


구약시대를 살펴보면 미리암, 훌다, 데보라 등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여자들이 남성들의 종속물과 같은 존재로 무조건의 복종과 희생을 강요당해야 했던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예수님의 복음은 억눌리고 짓밟힌 여인들의 인격과 인권을 회복시켜 주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힘없고, 연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인간의 대열에 끼지 조차 못하고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가련한 존재들 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들의 삶 속에 넣어주신 복음의 누룩은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누리고 행하며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오늘 날에는 노약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때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들을 위한 특별한 정책이 없었음은 물론 의지할 곳 없는 그네들을 천대하고 박대하며 유통기간이 지난 상품이나 쓸모 없는 폐기물 정도로 취급했다. 기독교는 그런 그들에게 자존감을 일깨워주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을 지니고 살게 해주었다. 


어린이들을 향한 사회의 시선도 냉대와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그들을 위한 사회나 국가의 배려 같은 것을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특히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한 시점에 유대사회에는 이혼풍조가 만연했다. 여자들이 몇 번을 재혼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쉽게 맺어지고 부담 없이 헤어지는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애정이나 사랑 같은 것은 받아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오늘 날의 문명사회에서는 어린이들은 가정의 보배요, 희망이다. 사회적으로도 어린이들에 관한 관심과 배려는 크기만 하고, 국가적으로도 그들을 위한 특혜를 늘려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공식적인 집계에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당시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어떠했나를 잘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셨으며,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주시며 천국의 비밀까지 들려주셨다. 더 나가가서 예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어린이 같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에게 나오는 이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며, 어두운 세상을 새로운 세계로 개조하는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다. 누룩 비유에는 천국이 이같이 형성되고 성장하는 과정이 은밀한 가운데 진행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작은 누룩 덩어리 하나가 밀가루 반죽에 섞이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고, 따라서 그것이 어떻게 반죽을 부풀게 하는 지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확실히 느끼며 보는 가운데 확장된다는 사실도 이 비유에 포함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의 유대인 회당에서 전도할 때 거기 있던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을 향해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행 17:6)이라 외쳤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깨닫게 하려고 3차에 걸쳐 3만 키로 이상을 다니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파했다. 예수께서 배척당하시고, 핍박 받으시다 십자기에 처형된 것도 조용하고 은밀하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지 않으시고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룩한 기득권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었다. 


복음은 소리 없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말씀선포와 행위를 통해 전파되는 것이다.


누룩 비유의 핵심은 작기만 한 누룩 덩어리가 엄청난 양의 밀가루 반죽을 크게 부풀게 하듯이 들릴 듯 말 듯 전해지기 시작한 예수님의 복음은 그것을 받아드리는 이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자라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하늘나라의 성장은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게 조용히 이루어지기도 하고, 온 세상이 알게 요란스럽게 일어나기도 한다. 이 사실을 윌리엄 바클리(William Barclay)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들려준다.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의 능력, 성령님의 역사는 세차게 흘러내리는 강물과 같다. 그런데 굽이치며 흐르는 강 바닥 밑에서도 보이지 않게 흐르는 또 다른 물줄기가 있다. 누룩 비유는 하늘나라는 강 밑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흐르는 물줄기에 의해 형성되기도 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보고 듣는 가운데에 힘차게 흐르는 강물로 인해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복음이라 이름하는 누룩이 스며든 우리들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되어 점차로 커지고 있다. 그 나라가 속히 완성되어 우리 모두 거기서 평안을 누리며 살며, 많은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 관해 말해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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