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ON
  • daekim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 631
    •  
    • 521,251
    전체 글 목록

예수님의 기적-물 위를 걸으시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데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요 6:16-21)

 


 요한이 기록한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신 다섯 번째 기적은 마태복음(14:22-27)과 마가복음(6:45-52)에도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기적 자체에 대해서는 요한 보다 마태와 마가가 더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기적이 일어나는 과정과 예수께서 이를 행하신 목적을 올바로 깨닫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태, 마가, 요한 세 복음서를 하나로 묶어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한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하자 예수님은 산으로 들어가신다.(요 6:15) 그 후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를 걸어 제자들이 탄 배로 오실 때까지의 과정을 마태와 마가의 기록을 통해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군중들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까지 예수께서 로마정권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의 주권을 되찾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음을 알고 계셨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군중들에게서 떼어놓기 위해 갈릴리 바다 동편으로 먼저 가라 이르시고,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킨 후 홀로 산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이때 예수님의 심정은 참으로 슬프고 괴로우셨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이 그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들러냄에 따라 유대 왕 헤롯 안티파스가 그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군중들은 그를 앞세우고 로마정부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을 표면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그의 무겁고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고 싶으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간절히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 쪽 해변을 향해 노 저어 가고 있었다. 갑자기 바다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어부출신인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 예고 없이 풍랑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거센 바람을 맞으며 작은 배를 노 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 3시 경이 되었을 때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제자들이 풍랑 이는 갈릴리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는 유월절이 가까운 4월 중순이었기에 은빛 같은 보름달이 바다 위에 비치고 있었다. 작은 배에 타고 풍랑과 싸우는 제자들을 발견한 예수님은 조용히 일어나 산을 내려가신다. 기도의 시간이 지나고 행동의 시간이 온 것이다. 예수께서 위험에 처한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산을 내려오신 사실은 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이들은 결코 외롭지 않으며, 어떤 인생의 폭풍우를 만나도 안전하게 항해를 계속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지켜보시며 그들이 위험한 경지에 이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오시기 때문이다. 


 필사적으로 해변을 향해 노 젓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접근하자 그들은 크게 놀라 비명을 지른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마 14:26; 막 6:49) 때때로 우리들은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시기 위해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감사와 기쁨으로 맞아드리지 못하고 불안해하거나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베드로를 디베랴 바닷가로 찾아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물시지자 주님을 배반한 죄책감에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잘 아시면서 왜 자꾸 물으십니까?”(여 21:17)라며 물러서는 자세를 보였던 베드로가 그 좋은 예 중의 하나다.


 그들을 풍랑의 위기에서 건지기 위하여 다가 오시는 예수님을 기뻐하며 맞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 소리치는 제자들을 보며 Bruce Milner는 “요한복음이 주는 메시지”에서 “그들은 폭풍우 보다 예수님을 더 무서워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접근하는 그를 보고 무서워 떠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말들 중 “두려워 말라.”는 것처럼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과 용기를 주는 말도 드물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섰을 때 그들의 두려움은 크기만 했다. 앞에는 검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홍해가 놓여 있었고, 뒤에는 전차 600대를 앞세운 애굽의 정예군이 추격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백성들에게 외친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고 말이다. 


 예수님만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떠나가신다는 사실을 알았을 대 슬퍼하며 좌절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말씀하신다. “두려워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우리들을 모든 환란과 시련에서 건져주시겠다는 “약속”이시다. 따라서 “두려워 말라.”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그들을 속박하는 모든 문제들로부터 해방되어 기쁨과 소망 속에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들을 안심시키시며 “나니 두려워 말라.”라 하신 데은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 말씀은 그를 못 알아보는 제자들에게 그가 누구신가를 밝히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이들은 그를 배척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신분을 확인한 후에는 결코 그럴 수 없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직접 그가 누구신가를 일곱 번이나 밝혀 주셨는데 그 첫 번째가 “나는 생명의 떡”(요 6:36, 51)이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하신 것으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영원히 주리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 후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빛이라.”(요 8:12)하심으로 그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의 빛” 속에 살게 될 것임을 가르쳐주신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나는 문이다.”(요 10:19)라 하셨는데 이는 “문”되신 그를 통해 들어가야만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의미하신 것이다. 네 번째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다.”(요 11:11)라 선언하셨다.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선한 목자 되신 그를 따라야만 영생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다. 다섯 번째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요 11:25)이라 말씀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만이 영원히 죽지 않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고 약속해 주신 것이다. 


 여섯 번째로 예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하신 것은 그를 통해서 만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원한 하늘나라까지 실족하지 않고 행군할 수 있다고 알려주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참포도나무”(요 15:1)라 하신 까닭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서 가지가 되어야만 크고 단 삶의 열매를 맺으며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집으로 향할 수 있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나니 두려워 말라.”고 그의 신분을 밝히시자 겁에 질렸던 제자들은 기뻐하며 예수님을 배로 영접해 드린다. 그러자 배는 곧 그들이 목적했던 해변에 도달하게 된다. 난파될 뒤기에 놓여있던 배에 예수님이 오르시자 일어난 일이다. 예수께서 풍랑 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셔서 폭풍과 싸우는 제자들을 구하신 사건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 만나를 내려서 그들을 먹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으신 기적을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할 때 하나님께서 베푸신 권능이나 2,000여 년 전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행하신 기적에만 국한시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와 풍랑 속의 제자들을 구하신 것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도 혼자가 아니며, 인생의 풍랑이 아무리 높고 거세게 일어도 그것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주시며 예수께서 동행하고 계심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기적을 통해 우리는 지금 하늘보좌 위에 앉아 계신 예수님께서는 온갖 고통과 고난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들을 건져내어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다시 우리 곁으로 오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과 더불어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갈릴리 해변 산 위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신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그것은 그는 정치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를 유대의 왕으로 삼으려 한 중중들이나 그의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렇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들의 구세주이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