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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읽고(8)-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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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안길령을 넘어


대동강을 따라 뱃길로 내려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우리 일행은 남쪽으로 돌아 다른 길로 한양을 향했다. 그 길은 대동강 오른쪽 둑과 여기 저기 맞닿아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


나는 길을 떠나기 전에 가난에 찌들어 무감각하고 더럽고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쓰레기 잡동사니가 쌓인 여인숙 뜰에 않아 있었다. 나는 조선이 희망 없고 무기력하고 한심스럽고 애처로운 존재이며 어떤 큰 힘에 의해 퉁겨 다니는 배드민턴 공과 같은 사람들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안길령을 지나 가난한 농가를 보면서 왜 조선 사람들이 하루 두 끼 수수밥도 구할 수가 없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살지 못하는지 몹시 의아스러웠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도로가 활기차있을 무렵인데도 종이와 담배와 같은 농산물을 제외하고는 운반되는 물품이 없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평양으로부터 벽지로 물건을 운반하는 말과 짐꾼들의 행렬을 볼 수 없으며 장날을 찾아가는 보부상들 이외에는 교역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훌륭한 기후와 적당한 강우 그리고 비옥한 토지가 있어, 내란과 강도로부터 벋어날 수만 있다면 조선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만약’ 착취하는 아전과 강제징수, 그리고 관리들의 악덕한 행위를 금지시키고, 토지세를 공정히 부과하고 법이 불법의 도구가 아니라 보호를 위한 수단이 된다면 조선의 농부는 일본의 농부만큼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거기에 '만약'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어떤 곳에서 번 것이든 간에 자신이 번 것을 안전하게 지킬 수만 있다면, 지치고 무감각한 민족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개혁은 일본에 의한 것이며, 그러한 개혁을 수행해야 하는 남성들은 전통과 인습으로 타락해있고 내가 도처에서 느낀 바로는 일본은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조선을 그들의 종속국으로 삼으려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외국 여행자들은 조선사람들이 게으르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으나 러시아나 만주에 이주한 조선 사람들의 활력과 인내를 보고 난 후에 나는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조선의 모든 남자들은 가난이 최고의 보신책이며 가족과 자신을 위한 음식과 옷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탐욕적이고 타락한 관리의 눈에 뜨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관리의 강제징수가 참을 수 없어, 때로는 반항의 방법으로 그를 쫓아내거나 가끔 참을 수 없는 관리들을 죽이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나뿐 평판을 얻은 수령의 아전들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태워 죽이는 일이 있었다.


가렴주구의 형태 가운데에는 강제노역, 합당한 세금보다 양을 두 세배 늘리거나, 소송의 경우 가혹한 뇌물을 요구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가령, 어느 사람이 조그만 돈을 모았다고 알려지면 관리들은 그것을 빌려줄 것을 요구한다. 만약 거절하면 체포되어 그 돈을 낼 때까지 구타한다. 이러한 정도로 가렴주구가 심하기 때문에 겨울에 농부들은 추수한 돈이 생기면, 땅에 구멍을 파고 돈을 넣어 그 위에 물을 붓고 얼린 다음 그 위에 흙을 뿌린다. 이렇게 해야 관리들과 도적들로부터 돈을 지킬 수 있다.


6. 시베리아에 사는 조선 이주민들


저자가 러시아령 만주를 굳이 방문한 목적은 조선과 다른 환경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에서 추정하기는 그들이 약 2만 명에 이르렀다(지금은 80만 명).


우선 여행에 필수적인 통역과 하인을 겸할 사람을 구하려 했으나 허사였고, 거의 이 값진 여행을 포기하려는데, 마침 시베리아 전신국 국장이 전신국의 직원을 나와 동행하게 해 주었다.


그는 독일인으로 영어, 러시아어에 능통했고 매우 잘 생긴 중년 신사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작은 우편선을 타고, 다시 포시에트만에서 우편 마차에 쪼그리고 않아 노보키에브스크에 도착했다. 이곳은 군사도시로서 1000명의 민간인 중 태반이 조선인 이었다.


이들은 소로 연료, 물자를 수송했다. 몇 개의 상점은 주로 중국인이 경영하고 있었고, 조선 농민들은 군대에 밀, 곡식을 납품하고, 중국인에게서 야윈 소를 사들여 살찌게 키워 파는 등, 조선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믿어지지 않을 능력을 발휘하여 돈을 벌고 있었다.


이곳 관리에 의하면 하바로프스크에서는 조선인이 야채시장 등 도시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경찰서장이 내준 4륜 마차를 타고 얀치헤에 이르니, 가을 수확을 끝낸 땅이 말쑥히 갈아 엎어져 있고 상류층 가족이 거주할 듯한 조선가옥이 마을 전체에 산재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조선 통역도 만나 그들의 뜨거운 환영도 받았다. 조선에서 흔히 보는 위축된 농민의 모습은 없어지고, 여자까지도 유쾌한 모습으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농장은 말끔했고, 가축우리도 깨끗했다. 조선에서는 관리들이나 꿈꿀 수 있는 아늑함이 넘쳐 흘렀다. 그러나 주택 모양이나 의복은 조선에서와 똑 같았고 상투도 그대로였다.


다시 조선 마을을 통과 했는데, 이 마을에서는 소금을 만들어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훈춘으로 운송했다. 3, 4마일 떨어진 곳에도 조선 마을이 있었는데 집들은 크고 잘 지었으며, 아이들도 잘 입고 있었고, 농장에는 가축이 사육되고 있었다.


여기 저기 흩어져있는 조선인 마을은 모두 자치권을 누리고 있고, 경찰과 관리가 조선 사람이며 주민들이 선출했다. 촌장이 세금을 거두고 마을의 청결을 책임지며 위생규칙이 엄격히 시행되어 조선의 가난하고 불결한 마을과는 다르게 말쑥하게 지은 한옥에 갈대의 울타리가 둘러싸여 있고 매일 아침 청소를 한 것처럼 보였다.


양반의 거만한 몸짓과 농부의 기운 없이 어슬렁대는 태도도 보이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번대로 안정과 재산을 즐기며, 나는 그 모습이 독립심 강한 영국적인 남자다움으로 보였다.


조선에서 나는 그들이 열등 민족이고 삶에 희망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나는 이 곳에서 생각을 수정해야 할 이유들을 발견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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