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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선의 大佳里(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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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41)-감람산 위의 교회들(2)

 

(지난 호에 이어)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살던 감람산 기슭의 베다니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던 길목인 “주 기도문 교회” 가까이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기드론 골짜기 너머로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곳이 황금 돔, 이슬람 성전입니다.

그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곳이 지금은 닫혀 있는 황금 문 앞에, 수도 없이 많이 놓여 있는 하얀 석관들입니다.

메시아가 오실 때 황금문으로 입성하신다고 믿는 유대 사람들은 빨리 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망으로,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감람산으로 오신다고 믿는 기독교인들은 먼저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믿음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비싼 돈 주고 구매하였다고 하는데, 이젠 그나마도 자리가 없는 것 같이 꽉 들어찬 모습입니다.

 

예수 눈물교회(Dominus Flevit Church)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3번 눈물을 흘리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요 11:17-44), 유월절이 다가 오매 벳바게에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감람산을 넘어서 서쪽으로 내려오시며(눅 19:41~44), 그리고 잡히시던 날, 이 곳보다 조금 더 아래,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실 때입니다. (눅 22:39~45)

아마도 누가복음 19장 41~ 44의 말씀을 하신 곳이 바로 이 지점일 것 같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너와 가운데 있는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하나도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 당시에도 구세주의 오심을 믿는 수많은 유대인들의 석관이 놓여 있었을 터이니 주님께서도 지금의 모습을 보시었을 뿐만 아니라, 불과 30여 년 후에 일어날 일을 예견하시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눈물을 흘리시던 바로 이 자리에 5세기 무렵, 비잔틴 양식의 작은 성당이 있었으나 1187년에 파괴되었던 것을 1955년,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바르루치(AntonBarluzzindl)가 설계하여 다시 건립한 “예수 눈물 교회”가 서 있습니다.

안토니오 바르루치는 이 교회뿐만 아니라 다음 호에 설명할 겟세마네 만국 교회, 십자가의 길에 있는 채찍질 교회, 베다니의 성 나자로 교회, 에인 케렘의 방문 교회 등 많은 교회를 예루살렘에 지었으나, 이 눈물 교회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프란시스코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교회로, “도미누스 플레비트(Dominus Flevit)”라는 교회 이름은 라틴어로 “예수가 눈물을 흘리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건물 외관이 눈물방울 모양을 하고 있으며 지붕의 네 귀퉁이에는 예수의 눈물, 슬픔을 상징하는 4개의 항아리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교회(Church of St. Mary Magdalene)

금빛을 찬란히 반사하는, 감람산에서 유난히 눈에 잘 띄는 교회가 있습니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Tsar Alexander III)가 1888년에 그의 어머니인 황후 마리아 알렉산드로프나(Empress Maria Alexandrovna)를 추모하며 지어 봉헌한 러시아 정교회로, 양파 모양처럼 생긴 일곱 개의 황금 돔으로 이루어진 교회 모양이 특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3년의 공생애 동안 예수님과 제자들이 어떻게 의식주 문제를 해결 하였을지가 참 궁금하였었는데, 그 답이 누가복음 8장 1~3절에 나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이 여인들 중에 가장 성경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매스 미디어에 각광받는 여인이 “막달라 마리아”일 것입니다.

안식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요20: 1~2) 전하여 준 여인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인 것처럼, 예수의 부활을 처음 목격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교계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여인입니다.

성경의 각 복음서에는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특정되어 있지 않은 몇몇 “마리아”들이 등장하지만 그중 예수의 발에 눈물을 떨어뜨려, 스스로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향유를 발랐다는 “죄지은 한 여자(눅 7:37)”와 “베다니의 마리아(요12:3, 마 26:7)”가 동일시되어 여겨졌다는 설도 오랫동안 있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26:13)”는 말씀도 있어서인지, 오랜 세월 동안 교계에서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옆에 있었던 여성으로, 예수의 제자이자 기독교의 성인으로 여겨 오던 중,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죄지은 여인”과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베다니의 마리아”가 별개의 인물임을 선언하고,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막달라 마리아”가 중요한 사도의 역할을 했다고 인정했으며, 이어 2016년 6월 3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황청 경신성사성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의무 기념일”을 축일로 격상시키는 교령을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이 조치로 “막달라 마리아”의 지위를 사도와 동급의 위치에 놓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비공식 사도였고,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런 전통적 견해를 받아들여 사도라는 칭호를 준 것이지, 사도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는 반대 견해도 있다고 합니다. 여성 사제 문제와도 얽혀 있기에 간단하지가 않은 문제인가 봅니다.

사회적으로는 음모론으로 치부되기는 하지만 작가들의 공상 속에서 예수에게 상당히 중요한 인물로 그려지며, 스승과 제자를 넘어 연인 관계, 심지어 아내였다는 설정으로 의문과 흥미가 더해진 다빈치 코드와 같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였지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는, 향유를 부은 여인이나 간음한 여인과 그 캐릭터가 합쳐지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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