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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병선의 大佳里(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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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찬아서(36)-소금 기둥이 된 여인 '롯의 아내'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천지창조와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 이어 출애굽에서의 홍해가 갈라지는 이야기만큼이나 잘 알려진 이야기로, 10명의 의인이 없어 일어난 재앙이었습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 19:24~26).

이 일 후, 죽음의 바다, 사해가 생기게 된 원인이라고 말들 합니다.

기원전 2500-2250년 사이에 시리아의 에블라 지역에서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약 1800개의 토판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의 이름이 발견될 정도로 도시는 번성하였으나, 10명의 의인이 없을 정도로 타락하였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도시들의 잔해를 고고학적으로 찾을 수가 없었기에 신화로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반박의 여지가 없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사해가 마르며 해수면이 더 낮아지자 소돔과 고모라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1965년에 체계적인 발굴이 시작된 사해의 요르단 쪽에 밥 엣-드라(Bab Edh-Dhra)라는 곳이 기원전 3,100년부터 대략 기원전 2,250년까지 있었던 소돔으로 생각되는 매우 유력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남쪽으로 15km 지점에 누메이라(Numeira)라고 불리는 지역은 1975년부터 체계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이 곳이 고모라로 생각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누메이라는 소돔보다도 그 면적이 두 배정도 더 컸다고 합니다(약 8만 평방미터). 이 이야기는 2001년 8월, 한국에서 동아일보에 소개되었지요.

현재의 사해 남쪽에는 남북으로 11km, 동서로 1~3km, 그리고 땅으로부터의 높이는 제일 높은 곳이 약 200m가 되는 독특한 산이 있습니다. 이 산은 보기에는 와디에 흔히 있는 사암 같은 산처럼, 나무 한 그루 없는 “소돔산”인데, 이 산의 80%가 암염, 즉 소금입니다.

옛사람들은 소금으로 이루어진 이 산 주변 어딘가에 사라져 버린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여서인지 이 산을 “소금산”이라고도 부르며, 기슭에 삐쭉 솟은 바위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사해 조금 못 미쳐서 천둥을 동반한 늦은 비를 만난 것은 우리에게는 정말 축복으로 내리는 비였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말로만 듣던 “와디”의 진면목을 정말로 실감나게 보았으니까요.

스콜(squall)처럼 잠시 후 비가 멎고, 땅은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말라 있는 중에 정차한 곳이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으로 변한 곳이라고 전승되는 곳이었습니다.

비는 그쳤지만 잔뜩 찌푸린 회색빛 하늘을 등지고 외로이 서 있는 “롯의 아내”라 불리는 소금 기둥을 바라보며 이는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돌아가는 혼돈을 깨우며, 나의 아내가 어느새 주위의 흙더미 속에서 반짝이는 소금 알 몇 개를 주워 들고 와서는 신기하다는 듯이 내게 보랍니다.

허기사 땅에서 소금을, 그것도 반짝거리는 소금 알맹이를 처음 주울 수가 있었으니 신기할 수밖에요….

성경에 나오는 많은 여인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한 두 여인을 꼽으라면 그 하나는 인류의 어머니가 된 이브요, 또 한 여인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부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브로 인하여 먹지 말라는 사과를 먹음으로 낙원에서 추방되어, 실낙원(失樂園)에 사는 우리들이 되었고, 이름조차 없는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그 말 때문에 오히려 더 보고 싶은 유혹이 일어 돌아본 결과, 소금 기둥으로 변해 지독히도 짠 사해의 근원을 이루어 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 딸들로 하여금 롯과 동침하게 하여, 큰 딸은 “아비의 소생”이라는 뜻을 가진 모압 사람들의 조상이 되게 하였고, 작은 딸은 “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암몬 족속의 시조가 되게 한 여자들이 되어, 오늘까지 중동 분쟁의 불씨가 되는 팔레스타인들의 조상이 되었으니, 두 여인의 호기심으로 인한 행동이 실로 유구한 인류 역사의 끈임 없는 분쟁의 시발점이 되어버린 셈인가 봅니다.

그 대열에서 “롯”과 이름마저 비슷한 “룻”이라는 모범 며느리가 나와, 예수님의 족보에 끼이는 은혜를 입기도 하였지만, 보지 말라면 꼭 보아야 하고, 먹지 말라면 꼭 먹어야만 하는 그 아내라는 이름의 여자가 문제는 문제인 모양입니다.

따 먹지 말라는 말씀만 안 하셨더라도 그리고 돌아보지 말라는 소리를 안 했더라면 돌아보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이렇듯 하지 말라면 더욱더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내라는 대명사를 가진 여인들.

그 아내의 대열에 요즈음엔 옛날의 소돔같이 남정네들까지 합세하려 하고, 사회와 정계와 교계에서마저 그네들을 축복해 주겠노라며 동성애를 부추기고 있으니, 혹시 남자가 남자의 아내가 되면 뒤를 돌아보지 않을까요?

남자와 남자가 결혼을 하면 대가 끊길 테인데,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가증스러운 일이라고 기록된 일들을 “축복해 주겠노라”는 교회가 되도록

목사님들을 교육하고 배출한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일까요?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해서 학문적으로 필요한 것이 신학일진대, 그 신학이 신앙을 혼돈되게 만드는 요즈음이고 보면 그 신학과 신앙과의 사이에 생긴 괴리의 깊은 골은 언제 즈음, 누가 메워 줄 수가 있으려는지….

그런데…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요? 지금보다도 더 좋은 곳으로 간다면 뒤도 안 돌아볼 터인데… 아마도 갈 곳은 모르겠고, 지금 가진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한 번은 “앞으로 올 것은 모르는데, 두고 갈 것은 명확하니 미련이 생길 수 밖엔 없을 순간”을 당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었지요.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17:30~32).

 

소금 기둥으로 변한 채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외롭게 서 있는 이름 없는 여인.

그 딸들로 하여금 혼돈된 촌수를 만들어 놓게 하여 아직까지도 서로 싸움질을 하게 만든 롯의 부인은 이제 돌로 변해 아무 상념 없이 서 있는 것이 더 편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의 손바닥에서 반짝이는 소금 알을 들여다보며 “롯의 아내”를 뒤로 하고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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