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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하이델베르그(1) -황태자의 첫 사랑
bs2000

 

 

하이델베르그는 고전영화인 “황태자의 첫사랑”에 등장하면서 우리에게 친숙하게 된 독일 남부, 프랑스 국경에 가까운 곳에 독일 최초의 대학이 세워진 교육도시다. 


1899년에 출간된 독일의 빌헬름 마이어 포르스터(Wilhelm Meyer Forster)의 소설, ‘칼 하인리히(Karl Heinrich-Old Heidelberg)’가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수많은 연극과 오페레타의 무대를 걸쳐, 1923년에는 독일에서, 1927년에는 영국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결정판은 1952년,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프러시아(Prussia), 칼즈버그(Karlsberg) 왕국의 왕위 계승자, 즉 황태자인 칼 하인리히가 하이델베르그로 유학을 가면서 사랑이 시작되는 ‘학생 황태자(The Student Prince)’가 마리오 란자의 노래로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치며 노래와 더불어 하이델베르그 시 또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 영화에 얽힌 이야기 또한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남성 테너가수들의 명멸과도 깊은 관계가 있기에 먼저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20세기 말에 남성 성악가들을 꼽으라면, 모두가 주저 없이 ‘테너, 삼인 방(Tenors, Big Three)’이라 불리던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 이태리 모데나),
도밍고(Placido Domingo. 1941, 스페인 마드리드), 카레라스(Jose Carelas. 1946,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꼽을 것이다. 


인기가 대단하였던 이 세 사람이 거의 반세기 가까이 테너의 영역을 독점하다시피 하여 다른 테너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어 성장할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파바로티는 2007년에 작고하였고, 호세 카레라스는 백혈병으로 고생하다 완치되었지만 거의 공연을 안하고, 지휘자로 활약을 하면서 노래도 부르던 도밍고는 “미 투 Me too” 소문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있는 요즈음이지만 이 세 사람 모두가 자라나면서 우상으로 생각하였던 성악가는 바로 마리오 란자 라고 한다.

 

20세기 초에 최고의 성악가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얻었다는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 이태리 나폴리)가 서거하던 1921년에  공교롭게도 카루소의 빈 자리를 메워 줄 3명의 테너가 태어났다.

 

 

 


스테파노(Guseppe Di Stepano. 1921-2008, 이태리 시실리)와 코렐리(Franco Corelli. 1921-2003, 이태리 안코나)는 이태리에서, 그리고 마리오 란자(Mario Lanza. 1921-1959, 미국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이탈리안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이 세 사람들이 카루소의 혼을 받았다는 말도 회자되었으니까.


그러나 오페라 가수들로부터 오페라 무대만 고수한 정통 성악가가 아니라는 혹평을 들으면서도 1951년도에는 타임지의 표지에도 등장했듯이 대중의 인기는 마리오 란자가 훨씬 더 대단하였는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RCA 레코드를 통하여 1945년에서부터 발매한 팝 뮤직에 가까운 음악들과 9편의 영화 출연의 영향이었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더구나 1951년에 출연한 그의 세 번째 영화 ‘위대한 카루소(The Great Caruso)’에서 카루소 역할을 맡으며 노래한 그를 단연 세계 최고의 테너로 부각시키며, 마치 카루소의 계승자 같이 승승장구하였다. 


당시, MGM은 전속계약을 맺고 있던 마리오 란자의 대중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황태자의 첫사랑”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 대형화면으로 리메이크하기로 하고 독일 출신의 이민자인, 커티스 베른하르트(Curtis Bernhardt. 1899-1981, 1924년 데뷔) 감독을 교섭하였으나 첫 장면에서부터 “창법에 문제를 삼는 감독과는 절대로 같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선언한 란자와 부딪치게 되었다.  

 

 

 


란자는 1952년 8월에 이미 이 영화에 사용될 OST의 녹음을 끝낸 후이기에, 이 녹음을 사용할 권리와 남은 계약기간(15개월)과 맞바꾸기로 합의를 하고 MGM을 떠나는 바람에 당시로는 영화사상 보기가 드문 ‘목소리만의 출연’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MGM사에서는 1951년에 ‘위대한 카루소(The Great Caruso)’에서 마리오 란자와 같이 일을 했던 리처드 쏘프(Richard Thorpe. 1896-1991, 미국 캔사스) 감독에게 맡겨 결국 영화를 마무리 지었는데, 이런 복잡한 속사정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성들에게 대단한 인기였던 록 허드슨(Rock Hudson. 1925-1985, 미국)을 무척이나 많이 닮았다는 에드문드 퍼돔(Edmund Purdom. 1924, 영국)이 립싱크를 하면서 만들어낸 이 뮤지컬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덩달아 RCA 레코드까지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마리오 란자의 목소리가 연기를 대신하는 영화이다 보니 이 영화의 음악들은 더욱 각별한 주목을 받았었는데, 러시아에서 이민을 온 니콜라스 브로즈스키(Nicholas Brodszky. 1905-1958)가 만든 화려한 오리지널 스코어(OS) 외에도 별도로 만들어 삽입을 한 10곡 정도의 추가 창작곡들(Additional Songs)이 매우 훌륭한 극중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결국 마리오 란자는 이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1956년에 한편의 영화를 더 완성한 후(‘Serenade’), 할리우드를 영원히 떠나게 되었고, 이 후 유럽에서 ‘로마여 안녕(Arrivederci Roma. 1958)’과 ‘첫 사랑(For The First Time. 1959)‘ 이라는 두 편의 영화를 더 만든 후 1959년10월7일에 심장마비와 폐렴의 후유증으로 38세의 황금 같은 시기에 세상을 떠나면서 비운의 일생을 마치게 된다. 그를 흠모하며 성장한 3 Tenors는 그래도 오랫동안 명성을 날리며 장수하였는데….


마리오 란자의 ‘목소리만의 출연’으로 보는 장면이지만 미남 배우, 에드문드 퍼돔의 절묘한 립 싱크로 우리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준 황태자가 첫 사랑을 하였던 하이델베르그의 고성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김제건의 영화음악 이야기에서 발췌,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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