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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의 시비

 
바나나의 시비  
 

 

 

 

식탁 위에 바나나는 늘 곤혹스러웠지
애매모호한 겉과 안의 시비  

 

학교에서 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지도 위에 떠 있는 나라 코리아에서 이민 온  
노란 소녀가 흰밥에 김치 도시락 먹다, 아뿔싸
또래 친구들 빗자루를 들고 쫓았지
곁에 올까봐 멀리서도 슬슬 피해 다녔지 
흰 바나나가 되기 전에는 곁에 얼씬도 못하게 선을 그었지
동물원에 원숭이 쳐다보듯 놀리곤 했었지

 

새학기 단체사진에서 내가 바나나란 걸 발견했지
과일 사이에 노란 바나나로 앉아있는 나
하지만 아무도 바나나를 희다고 말해주지 않았지

 

하지만 바나나를 원망하며 숨은 적 없었지
그것은 내가 철든 이래 가장 견고한 안쪽이었지
비바람과 곤충의 노략질에도 견뎌낸 껍질임을 알았지
노란 살갗을 벗겨내면 비로소 나의 정체가 드러났지
흠없이 잘 생긴 바나나로 살아가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아이덴티티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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