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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9)-토리스 델 리오 ~로그로뇨 (8일차 / 21 km)

 

길 잃은 순례자들을 위한 '쿠폴라 정탑' 


 오늘도 그댄 안녕하신가? 싸늘한 기온에 잔뜩 움츠린 내 그림자를 보며 싱거운 인사를 청했다. 여기저기 조금씩 삐걱거리긴 해도 견딜 만 하다는 자문자답을 하며 어깨를 곧추 세웠다. 떠오르는 아침 해를 등지며 서쪽으로 내 닿는 길은 세상을 향해 내 자신을 조금씩 열어가는 길이다.

 

 

 


 까미노에 들어선지 일주일 여, 다른 사람들의 행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무거운 배낭을 차편으로 보내고 가볍게 걷는 사람, 아예 택시나 버스를 타고 한 두 구간 건너뛰기를 하는 사람, 자신의 배낭무게를 견디며 묵묵하게 걷는 사람 등 똑 같은 길 위에서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는 모습이 우리의 인생길과 흡사하게 닮았다. 지나온 나의 인생길은 어떤 유형이었을까. 불현듯 마음 속에 들어온 생각에 잡혀서 걷느라 능선 하나를 담담하게 넘은 듯 하다.


 오전 내내 포도 농원을 이웃하며 걸었다. 산자락, 구릉지 가릴 것 없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거대한 포도 재배 지를 보니 이곳의 후한 포도주 인심을 이해 할 듯 하다. 이제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앙증스런 포도나무는 순조로운 자연의 흐름과 지극한 농부의 정성으로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리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질 좋은 이곳 포도주로 목마름을 해소 할지 내심 기대가 된다. 

 

 

 


척박한 자갈밭도 아랑곳 않고 새 움을 틔워내는 포도나무가 지금 우리의 모습인 듯 하여 눈길이 자주 그 언저리를 맴돌았다. 


 오늘 여정의 중간 지점인 비아나에서 점심과 휴식을 취한 후 산타마리아 성당을 한 바퀴 돌았다. 예루살렘의 성묘성당과 유사하게 지어졌다는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 팔각형 평면 성당 쿠폴라 정탑은 길 잃은 순례자들을 이끄는데 오랫동안 주력했다고 한다. 뎅그렁, 뎅그렁 가슴을 파고드는 강렬한 종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역할에 목이 쉴 겨를도 없는 모양이다.


진정한 순례자란


 오후 네 시경 리오하의 주도 로그로뇨에 입성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숙소에 들어가려나 했는데 왠걸 시내 통과하는 데만 두어 시간 족히 걸렸다. 육중하게 닫힌 알베르게 문을 두드리니 나이 지긋한 형제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숙소로 안내 해 주었다. 20여 개의 잠자리를 구비한 수도원 공립 알베르게는 고작 2층 침대 몇 개만 남겨놓고 있었다. 


달리 대책이 없으니 불편함을 감수하리라 다짐하는데, 친절한 형제님이 아래 칸 순례자와 상의하여 자리를 바꿔주었다. 흔쾌히 자신의 자리를 양보해 준 한국인 K님과는 이후 좋은 인연으로 이어져 함께 어려움을 헤쳐가는 동조자가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음날 점심 준비를 위해 시내로 향했다. 오랜만에 들어선 대형 마켓은 절제 중인 나를 향해 유혹의 손길을 수시 보내왔다. 하지만 오늘의 충만함은 내일의 아픔인 것을.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손에 들고 부자가 된 양 행복하게 나왔다. 


 외출에서 돌아와 살그머니 숙소 문을 열었다. 깜깜하리라 여겼던 방안에서 더운 열기가 훅 끼쳤다. 스페인 순례자 안토니오가 헝가리 출신 재콥에게 다리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 마사지의 강도가 얼마나 높았던지 안토니오 얼굴이 온통 땀으로 얼룩져 번들번들 했다. 


삼 십 여분이 지났을까. 또 다른 부상자 러시아 여인에게도 치료와 마사지를 병행하며 혼신을 다하는 그를 보면서 진정한 순례자란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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