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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기(5)

 

헤밍웨이 발자취, 팜플로나(4일차)
(빌라바~자리키에기/ 15km)

 

 

 

 

 '여보! 아홉 시야. 다 나가고 아무도 없어.' 남편의 황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두터운 아침 해가 방안 깊숙이 들어 와 있었다. 숙소 퇴실 시간을 삼십 분이나 넘긴데다가 독실을 배정해 준 형제님께 민폐를 끼치게 되어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옆방에선 수십 명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준비하느라 어수선했을 텐데, 세상 모르고 깊은 잠에 빠졌으니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펼쳐진 물건들을 대충 배낭에 집어넣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체리 꽃이 만발한 수도원의 정원은 딴 세상이었다. 향긋한 꽃 냄새에 마음을 진정시키며 겨우 한 숨돌리려는데 고마운 형제님이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리 꽃만큼이나 화사한 표정으로 셔터를 누르는 그 분의 모습을 보니 가슴 속에서 뭉클함이 올라왔다. 


 모처럼 쾌청한 날씨임에도 컨디션이 난조를 보였다. 발바닥엔 물집이 잡혀 한 발짝 옮기기도 어렵고 배낭도 점점 무거워져 진척이 순조롭지 않았다. 무리하는 것보다 몸을 먼저 달래야 하겠기에 동네 어귀에 있는 조그만 바에 주저 앉았다. 


커피와 타파스(빵 위에 하몽이나 치즈를 올린 간단한 음식)로 아쉬운 아침을 해결하려니 숙소의 냉장고 안에 모셔둔 알토란들이 부실한 조식 위로 겹쳐 지나간다. 급히 나오느라 어제 준비해둔 음식들을 챙기지 못해 아쉽지만 그것 또한 누군가에게 일용할 양식이 될 터여서 위로가 된다. 


 나바라의 주도인 팜플로나 까지는 고작 3.5 km 거리이다. 다른 때 같으면 한 시간이면 충분하련만 걷고 쉬기를 반복하며 두 시간 만에 어렵게 도착했다. 팜플로나는 대도시답게 주민들의 움직임도 활발하고 높은 성벽에 둘러 쌓인 성채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행히 까미노는 지나는 객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려는 듯 성채 안 깊숙이 길을 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여러 민족의 침략을 버티어 낸 구 도심은, 빗장을 활짝 연 채 봄 축제가 한창이었다. 7월 초, 중순이면 소몰이 행사, '산 페르민 축제'로 북적이는 시청 앞 골목엔 학생들의 민속 춤 향연이 끝없이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원을 지닌, 자긍심 강한 바스크 인의 후예들이 사뭇 진지하면서도 경쾌한 율동으로 우리의 고단한 여정에 활력을 주었다.


 우리가 선 이 거리, 이 고장은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초기 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산실이기도 하다. 며칠간 문학 기행을 하듯, 그가 장기간 머물며 집필한 부르게테 호스텔을 지나 작품 구상에 몰두했을 '우로비 강'을 건너 소설의 절정을 이룬 투우 골목에 이르니 그의 창작 세계를 간접 경험한 듯 뿌듯하기만 하다. 


팜플로나의 구 도시와 신도시를 돌며 몇 시간 여유를 부리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별렀던 라면을 구입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다. 다음 대 도시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발 품을 팔아야 할지. 


 도심을 벗어나 다시 들판으로 나오니 고향에 온 듯 편안하다. 저조했던 컨디션도 한결 좋아져서 따끈한 햇볕을 받으며 제법 긴 거리를 소화해냈다. 멀리, 오늘의 코스 중 마지막 오르막이 보일 즈음 조그만 나무 그늘 아래 판초를 깔고 늦은 점심상을 차렸다. 두 배낭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음료, 과일과 빵들 중 어깨를 짓누르던 묵직한 스페인 오믈렛이 군침을 돌게 한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두툼한 햄이 속을 가득 채운 오믈렛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하지만 향신료에서 오는 이질감과 짠 맛 그리고 토마토 소스로 인해 물렁거리는 빵은 왕성한 식욕마저 떨어뜨리게 했다. 얼큰한 김치찌개 한 그릇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오후 5시경 자리키에기(Zariquiegui)에 도착했다.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성당을 중심으로 한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생동감을 주는 골목 바에서는 말끔하게 샤워를 마친 사람들이 맥주잔을 기울이며 담소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루 중 유일하게 말문이 터지는 시간, 치밀어 오르는 말들을 꾹꾹 눌러가며 앞만 보고 걸은 순례자들의 뒷담화는 다음 도착자가 오면 슬며시 그들에게 옮겨간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영접 하듯이. 


숙소라곤 한 주인이 운영하는 사립 알베르게 두 개가 전부인 이곳에서는 이층 침대 위쪽도 감지덕지 하며 받아드려야 했다. 밀린 빨래 감을 세탁기에 넣고 LA 에서 온 '짐'과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니던 직장을 일시 휴직하고 4개월간 세계를 여행 중이라는 청년은 걷는 게 즐거워서 이 길에 들어섰단다. 여행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신이 가벼워진다는 그의 경험담이 조금씩 이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과를 마친 저녁이면 숙소의 로비나 방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발바닥에 생긴 물집을 치료하느라 너도나도 붕대와 반창고 등을 챙겨 나와 영광의 상처들을 다독인다. 나도 큼직한 물집을 터트려서 연고를 바르고 바셀린으로 다리를 마사지 한다. 


신체 중 두 다리의 역할이 지대한 이 시점, 얼리고 달래며 내일을 기약하려 애쓰는 내 자신에게 묻는다. 살아오면서 애증의 눈길로 발바닥을 살펴본 적이 몇 번이나 되냐고.
 상태가 중증으로 보이는 S와 J를 내일 또 길 위에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침대 사다리를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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