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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 골프(NATO GOLF)’ 즐기기

 

지난 토요일에 골프를 다녀왔다. 이곳 토론토는 팬데믹으로 5월 24일부터 골프를 칠 수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골프장이 매우 붐볐다. 오후 3시 20분부터 시작한 게임이 오후 9시경, 해가 질 때가 돼서야 끝났다. 평소에는 4시간 20분 정도면 마칠 것을 5시간 40분이나 걸렸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았는데, 마침 우리 앞 팀도 청소년들이었다. 골프를 배운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모두들 골프백을 메고 공을 찾으러 왔다 갔다 하며 치는 모습을 보며 내가 골프를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팀의 앞도 사정이 비슷하다 보니 골프장 전체 플레이가 정체된 느낌이 들 정도로 진행되었지만, 대신에 경기를 기다리는 동안 동반자들과 좋은 대화도 나눴고 김밥과 샌드위치도 맛있게 먹었다.

내가 간 곳은 레밍턴 파크뷰(Remington Parkview)라는 골프장으로 중저가 퍼블릭 코스인데 비교적 걷기 편해 시니어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토론토에서 30~40분 거리에 있고 트와일라잇(Twilight) 할 때 갔더니 워킹이 $28 이어서 부담이 없었다.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 조금 할인을 받은 가격이다.

보통 걸어서 칠 수 있지만 그날은 날씨가 30도까지 올라갔고, 새벽부터 그 전날 얻어 온 꽃 모종을 정원에 심느라 오전에 기운을 다 빼서 카트를 타기로 했다.

 

 

레밍턴 파크뷰는 36홀로 밸리 코스(Valley Course)와 어퍼 코스(Upper Course)가 있는데, 우리 팀은 어퍼 코스를 택했고 카트비 $18은 추가로 냈다. 가격에 비해 그린이 잘 관리되어 있었고 함께 친 동반자들도 모두 좋은 매너와 구력들이 있어 기분 좋은 라운딩을 했다. 첫 홀부터 4타나 오버했는데, “첫 홀은 ‘다 파’에요” 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나는 원래 공치는 재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골프를 안치면 어디에도 낄 데가 없을 정도로 교민들이 다들 골프를 좋아한다. 그래서 잘 못 치는 실력으로 일 년에 4~5번 정도 비즈니스 모임이나 동문 골프대회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나가곤 했다. 그렇다고 좀 더 잘 쳐 보겠다고 레슨을 받거나 연습할 의욕도 없으니 그리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팬데믹으로 어디 갈 곳도 없고, 골프장에 나가 파란 잔디를 보면 가슴이 뻥 뚫린 듯해서 매주 찾게 되었고 그러면서 흥미를 좀 붙였다. 하지만, 골프라는 것이 무작정 자주 친다고 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갈 때마다 점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못 할 짓이라서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시니어 골퍼로서 점수에 욕심내지 말자’는 것이다.

비단 골프뿐만이 아니라 내 나이에는 삶에 있어서도 욕심내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실 이 말은 정말 말이 쉽지 어려운데, 마음을 비우고 골프를 치면 실수를 해도 크게 속상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점수에 연연하지 않으면 같이 치는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방이 잘 못 치기를 은근히 바랄 필요도 없다. 대신 비슷한 나이에 대화가 되고 같은 취미를 갖고 있는 친구를 만나는 즐거움으로 필드에 나가면 된다.

골프를 시작한 지는 제법 됐지만, 아직도 에티켓과 룰을 잘 모른다. 골프는 공식적인 심판이 없고 골퍼 자신이 점수를 매기고 페널티를 주어야 한다. 골퍼 자신이 심판이기에 룰을 모를 경우, 자칫 상대방을 언짢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과 칠 때는 미리 ‘골프도 잘 못 치고, 룰도 잘 모른다’고 양해를 구하곤 한다.

오비(OB: Out of Bounds)가 나거나, 해저드(Hazard)에 빠졌을 때 벌타가 몇 개 인지 헷갈릴 때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뒤 땅’이라도 치는 날이면 내 타수가 몇 개 인지도 모를 때가 있어 당황한다. 그리고 내 꿀 팁 중의 하나가, 공 찾기가 어려울 때는 재빨리 새 공을 꺼내 벌타를 먹고 쳐서 동반자의 경기 흐름을 깨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느린 게임을 해서 동반자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내 왼쪽 주머니에는 항상 공 하나를 더 넣고 다니지만, 볼 2~3개를 연속해서 잃어버리는 날에는 동반자에게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는 표정으로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다.

골프가 신사의 게임이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세상의 골퍼는 모두 거짓을 행한다’는 일화가 있다. 4대 메이저를 석권한 바비 존스(Bobby Jones)가 어느 게임 중, 숲에 들어간 공을 치다가 공을 건드렸다며 자진 신고하여 벌타를 먹고 우승컵을 놓치자, 미국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바비 존스의 정직성을 칭찬하며 찬사를 보낸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이것이 골프를 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 행위가 칭찬을 받는다면 강도 짓을 하지 않았다고 칭찬받는 것과 같다.”라고 말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의 행위는 당연한 것인데, 이런 일화가 아직도 떠도는 것을 보면 그만큼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게다. 그래서인지, 골프 룰에 “모든 골퍼의 위반은 의도적인 것이 아닌 실수로 인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래서 필드에서 이루어진 모든 위반 행위는 모르고 한 것이니 그렇게 이해하고 배려하라는 것이다. 물론 아마추어 게임의 룰이지만, 알쏭달쏭 한 신사적(?)인 룰이다.

 

골프는 다른 운동과 달리 걷고 생각하는 시간이 9할이라면 실제로 스윙을 하는 시간은 1할 정도나 될까? 스윙과 스윙 사이의 시간이 길다 보니, 여러 잡다한 생각이 많아지고 동반자와 대화를 하는 동안 집중도 떨어지게 된다. 더구나 동반자가 은근히 신경을 자극하는 멘트라도 하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워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에 항상 조심을 해야 한다.

골프를 치다 보면 다양한 성품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마음 맞는 골프팀을 2개 정도 가지고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성격이 유연한, 경직된 또는 도덕심이 약한 동반자를 만날 수도 있게 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유연한 사고를 가진 동반자를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모처럼 비싼 돈 들여 긴 시간 동안 라운딩을 하는데 기분 잡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그런 동반자를 만나기가 쉽지가 않으니 ‘나 자신이 먼저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지’하는 마음 가짐을 가져 본다.

골프 용어 중에 ‘나토(NATO)라는 것이 있다. NATO(Not Attached To Outcome)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골프를 즐기자는 의미다. 스코어는 잊어버리고 골프를 함께 치며 세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골프는 잘 못 치지만, 잔디 위를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니 나름 행복한 골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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