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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과 "가을맞이 가곡의 밤"

 

 “여기, 효자동입니다. 수고 많으시죠? <가곡의 밤> 담당자 좀 부탁합니다.” 잠시 뒤, “여보세요, 정연호입니다.” “아, 네! 여기, 효자동입니다. 이번 공연 준비 잘 되십니까?”,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는 듯한 목소리로 얼떨결에 대답한다. “예~에에”, “이번에 어르신하고 대감님 몇 분이 세종문화회관에 가실 예정입니다. 표 좀 준비해주십시오.” “아~, 예 알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담당 부장한테 보고한다. “저, 청와대에서 전화 왔는데 <가곡의 밤> 티켓 좀 보내 달라고 하는데요.” “뭐, 걔네들 뭐, 장난치는 거야! 지난주에 김부장 편에 티켓 다 보냈는데… 이거 뭐 팔리는 거보다, 초대권이 더 많겠다. 젠장!”

 

 전화를 받았던 정연호는 문화방송 사업국의 <가을맞이 가곡의 밤> 담당자였는데, 1980년대 서슬퍼런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웃지 못할 이야기였다. 청와대를 효자동이라 표현하고, 대통령을 어르신이라 부른 것 같고, 비서관들을 대감님이라 칭했다. 각 언론사에는 안기부에서 파견 나온 언론담당관이 있었는데, 언론사 직원들은 그들을 ‘X’ 부장이라 불렀다.

 

1980년대 가을에 했던 <MBC 가을맞이 가곡의 밤> 공연은 매년 매진되는 인기있는 공연이었다.

 

 규모 있는 공연은 대개 언론사들이 주최를 하게 되는데, 그 당시의 담당자들은 미리 청와대에 보낼 초대권을 준비해서 안기부에서 파견 나온 담당관에게 전달한다. 그런데 대개 인기가 있는 공연은 배달 사고(?)가 간혹 났다. 그러다 보니 담당자들은 중요 인사들의 자리를 이중으로 확보했다가 혹 배달 사고가 나면 응급 처치를 해야만 했었다. 지금 같으면 SNS에 난리가 났을 법한 일들이 그때는 당연한 듯 있었다.

 

 ‘효자동’에서 가장 원했던 공연 티켓이 문화방송 <가을맞이 가곡의 밤>이다. 사실 지체 높으신 분들이 왜? 그리 가곡을 좋아했는지 모르지만, 담당자들은 공연 중간의 휴식시간에 그들의 의전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멀리서나마 ‘어르신’과 ‘대감님’들께 눈도장이라도 찍고 싶어하는 인사들도 많아 <가을맞이 가곡의 밤> 표는 항상 매진을 기록했고, 출연하는 성악가들은 세종문화회관과 같은 큰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영광이어서 서로 줄을 대어 출연교섭을 했던 시절이었다.

 

 요즈음은 가곡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이유는 그동안 세상이 너무 변했고, 노래도 변해 빠른 템포의 노래가 아니면 사랑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을맞이 가곡의 밤>은 지난해가 48회로 역사가 있는 공연이고 나도 6년간 기획과 연출을 했던 행사라서 더욱 애정이 가는 행사다.

 

 이틀 동안 열렸던 이 공연에 출연하는 성악가들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독일,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수학하고 활약했던 한국의 정상급 가수들이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한국의 은근과 끈기라는 특성을 지닌 고유한 시를 음악화한 가곡들을 주로 불렀다.

 

 스물여 명의 남녀 성악가는 여러 악기 중에서도 사람 악기인 성악의 뛰어남을 보여주었다. 에덴의 동쪽에서 아담과 이브가 기쁨과 행복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의 목소리는 진화한다. 시간이 지나며 인간의 목소리는 노래라는 예술성을 지니고 갈고 닦아 성악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다.

 


<MBC 가을맞이 가곡의 밤>은 부수적인 행사로 ‘가곡 공로상’을 시상했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성악가들이 모여 더욱 다양한 공간을 만드는데, 남자 성악가들은 검은 모닝코트를, 여자 성악가들은 형형색색의 이브닝드레스여서 다채롭다. 당시에 남자 성악가는 음악의 신인 아폴로고 여자 성악가는 뮤즈라 불렸고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격조 높은 가곡을 부르는 그들의 모습은 관객 가슴을 촉촉하게 적셨다.

 

 해마다 국화꽃 화분들로 무대를 장식하였는데, 이것은 <가을맞이 가곡의 밤> 만의 개성있는 연출이었다. 국화꽃을 즐비하게 차림으로써 그 향기를 공연장 안에 풍기게 해 꽃내음과 음악을 함께 느끼게 해 이미지 브랜드화 했다.

 

 <가을맞이 가곡의 밤>은 부수적인 행사로 가곡 공로상을 매년 시상하고 있다. 고국의 가곡이 이렇게 발전한 것은 창작하는 작곡가의 도움이 크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가 짐멜이 “예술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감사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 가곡 공로상 시상식은 그 같은 윤리적 행위를 실천하는 MBC의 자랑스러운 행사였다.

 

 <가을맞이 가곡의 밤>은 바로 ‘가곡의 날’이라는 구실을 할 정도로 찬사를 받았었다. 성악가들과 관객이 음악으로 밀접하게 맺어져 진지하게 호흡을 같이 했기 때문이다.

 

 가곡은 고향을 떠나 먼 이국땅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참 어울리는 음악인 것 같다. 가을 밤하늘의 별빛은 유달리 반짝이는 것 같고, 어디선가 바람을 탄 노랫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것 같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 내 동무 어데 두고 이 홀로 앉아서 /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현제명이 미국 유학 시절 고향을 그리며 작곡한 ‘고향 생각’이다. 급변하는 ‘알레그로’ 시대에 사는 요즈음, 차분한 마음으로 ‘고향 생각’을 들으며 세월의 옆모습을 더듬어 보고 싶은데, 코비드 19로 언제나 음악회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참 딱한 가을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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