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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까지 벗겨 먹으려 한다”-정치실화극 같은 영화 ‘보좌관2’

 

 

캐나다에서 오히려 한국 TV를 더 자주 보게 된다. 한국이 그립기도 하고, 다시 보기가 공짜로 지원되는 플랫폼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드라마를 잘 보질 않는다. 다음회를 기다리며 이어보는 드라마는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한국 드라마를 친구들과 평을 나눠가며 정주행한다. 우리는 한국 방송을 랩탑(Laptop)으로 주로 보는데, 하루는 “여보, 이거 엄청 재밌다. 한번 봐.” 눈 동냥으로 몇 번 본 ‘보좌관’은 일단 이정재를 TV에서 볼 수 있다는 것과 신민아, 김갑수, 정웅인, 임원희 등 조연들의 조합이 흥미를 끌었다.


 일단, 정말 꼴 보기 싫은 정치판을 꼬집는 정치드라마여서 관심이 갔다. 그동안 ‘제5공화국’(2005년) 등 인물이나 실화를 다룬 드라마는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기에 좀 모자란 내용이었는데 ‘보좌관’은 실화 같은 내용에 재미를 보탠 작품이었다. ‘이렇게 시원하게 눈치 안 보고 작품을 쓸 수 있나?’ 할 정도의 자유를 느꼈다. 서슬 퍼렇던 검열과 통제의 칼날 속에서 작품을 만들던 시대가 있었는데…


 

 


‘보좌관’은 시즌1이 10편, 시즌2가 10편이다. 이정재는 시즌 1에서 엘리트 경찰 출신 보좌관이자 다음 총선을 준비하는 예비 정치인 장태준으로 나온다. 검찰의 수사 속도 보다 앞서 함정을 만들고, 두 세수 앞을 보며 움직인다. 덕분에 극 중에 모시고 있는 4선 의원보다 능력을 발휘하며 조명을 받는다. 


시즌 2에서 국회의원을 거머쥔 이정재는 위험한 질주 속의 여의도 생존기를 그린다. 변호사 출신 초선의원 강선영 역을 맡은 신민아와의 호흡도 괜찮은 것 같다. 극 중 강선영과 장태준이 연인 관계인데도 흐름이 흔들리지 않는다. 동반자이지만, 언제든지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정치판처럼 이들 관계 역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인물 설정과 구조도 촘촘하게 엮여 있다. 국회의원에서 법무장관이 된 송희섭(김갑수), 송희섭에게 배신당한 조갑영 의원(김홍파), 장태준의 6급 비서 윤혜원(이엘리야), 강선영의 8급 비서 한도경(김동준), 법무장관의 보좌관 오원식(정웅인) 등이 주연 못지 않은 열연을 한다.

 

 

 


  
우리는 정치인을 욕하면서 정치 이야기를 엄청 좋아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자기가 싫어하는 정치인을 대화의 주제로 끌어내 씹기를 좋아한다. 식사를 하며, 커피를 마시며, 소파에 앉아서도, 사무실 책상 앞에서도 자동차 안에서도 정치 현안에 대한 저마다의 견해를 쏟아낸다. 


가장 치열한 자리가 술자리다. 일단 서로의 성향을 간 본 다음 조금 긴장이 풀어지면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검찰총장을 씹어댄다. 웬만한 장관들은 도마에 오를 안주감도 못된다. 이렇게 돌아가며 “국회의원들이 세비만 받아먹고는 일을 안 한다”며 입법부 해산을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며 행정부 무능을 열렬히 규탄한다. 


이처럼 국민 개개인 모두가 정치평론가라 할 정도로 지식도 많고 정보도 많다. 언론이 가장 편하게 기사를 만드는 것이 정치인들의 동정이다 보니, 웬만한 가십 정도는 온 국민이 꿰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정치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일은 오히려 쉽지 않다. 자칫 신랄하게 본질을 건드리다가는, 편파적인 내용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보좌관’은 국회의원실에서 일하는, 정치를 다루는 직원들을 통해 ‘정치가 세상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악덕 기업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슈를 만들어 내고, 이것이 노동 환경 개선법의 필요성으로 이어져 국정 감사를 하는 행위를 드라마에 담아낸다. 마치 ‘피디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리얼리티를 접목시켰다.


사실 드라마 감독인 곽정환은 1997년 KBS에 입사해 시사교양 PD로 5년간 활동했던 독특한 이력이 있다. 곽감독은 “시사 보도는 결정적 증거를 잡지 않으면 심증만으로는 보도 못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시사 보도만큼 현실적인 드라마를 그려내고 싶다”고 했다. 


‘보좌관’은 시사와 드라마를 녹여 만든 작품이다. 또한 작가 이대일은 “정치의 속성 상 본디 더러움을 피할 수 없다”며 정치 혐오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드라마 속에 노회찬, 유시민(이해찬 보좌관 출신), 이철희(김한길 보좌관 출신)등의 실존 인물을 찾아보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힘 있는 사람들을 움직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 그 과정이 다소 비열해져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선한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 역발상이 극의 재미를 더하지만, 그저 웃을 수만은 없다. 


극중에 송희섭(김갑수) 의원이 “팬티까지 벗겨 먹으려 한다”는 대사가 있다. ‘보좌관’은 한국 정치의 팬티까지 벗기려 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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