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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섭 시평]내가 사랑하는 사람-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서울의 예수> 등 

 

 

 

 

한방울 눈물이 된 사람


 많은 시인들이 사랑에 관한 시를 쓰지만 정호승 시인 만큼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시인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제목을 포함해서 이 시는 <사랑>이 열 한번 반복됩니다. 다음으로 <사람>이 아홉번 나옵니다. 사랑의 대상이 사람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사랑과 사람은 순수한 우리 말로, 받침의 ‘ㅇ’과 ‘ㅁ’만 다를 뿐입니다. ‘ㅇ’은 구슬 같고 ‘ㅁ’은 바위 같습니다. ‘ ㅁ’은 한 곳에 듬직히 있어야 할 것 같고 ‘ㅇ’은 영롱한 빛을 띠고 굴러서 달아날 것만 같습니다. 잠시 옆으로 흘렀습니다.


 그의 시는 아름답고 따뜻합니다. 그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슬픔의 따뜻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슬픔이 따뜻할 수 있는 것은 시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일상으로 돌아온다면 슬픈 것이 어떻게 따뜻하며, 따뜻한 것이 왜 슬프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따뜻한 슬픔>이라는 이 모순된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시 속의 <그늘>은 <슬픔>의 다른 이름이고, <햇빛>은 <기쁨>의 다른 이름입니다. 슬픔과 기쁨이 적대적이지 않듯, 그늘과 햇빛도 적이 아닙니다. 항상 좋기만 하거나 항상 나쁘기만 한 것은 없습니다. 선하거나 혹은 악한 것 그 어느 한편에 영구불변히 고정되어 있는 것 또한 없을 것입니다. 그의 시가 이분법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단순논리로 떨어지지 않고 아름다운 것은 이 진부함의 너머를 건너다 보는 시인의 눈 때문입니다.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한데 어우러질 수밖에 없고, 어우러짐을 통해 그것들은 좋고 선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기쁨은 슬픔이 있어 의미가 있고, 햇빛은 그늘이 있어 의미가 있다는 시인의 말은, 이 신념이 바탕이 될 때에만 비로서 시적인 진술이 됩니다.


 눈물을 아는 자만이 진실한 기쁨과 사랑을 압니다. 눈물과 슬픔은 <사랑>을 낳는 밑거름입니다. 배가 부른 자들은 배고픈 자의 고통을 모르고, 기쁘고 행복한 자들은 슬프고 불행한 자의 밑바닥에 있는 서러움을 알지 못합니다. 서럽고 힘든 고통을 경험한 자들만이 남의 슬픔에도 눈을 돌릴 줄 압니다. 그러므로 <슬픔>은 남들의 처지에 눈을 돌리게 하고 그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사랑>의 시작입니다. 스스로가 눈물이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줄 줄 압니다.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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