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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이유식의 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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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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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63024
10333
2018-01-18
자화상(自畵像)

 
자화상(自畵像)


 

 

지금까지 내 생존의 뒤안길을 보니
내가 소유한 것은 얼굴 주름살
대머리 되어가는 허허벌판의 두상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지난날의 회한들
읽지도 못하고 애처로히 꽂혀있는 책
그리운 사람 떠나간 빈터
이렇게 나의 현 주소를 본답니다

 

남 앞에
내 양심 들녘같이 내어 놓고
뜨겁게 사랑해주지 못한 아쉬움들
그래도 사람들은 사랑과 기쁨을 주고
하루하루 숨을 쉬게 하는 저 맑은 공기 속
오늘도 사랑을 찾으며 살아가는 허수아비
세월의 그리움만 안고 하루를 넘깁니다

 

갈대밭을 헤매며 허기진 이상의 꿈을
비우고 비우고 비워 내어도
바람은 어이 그리 차고 모질기만 한지
미로 위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향내
진한 핏방울만 뚝뚝 떨어트리고 있습니다

 

이승 떠날 때 남기고 갈 것 하나 없는 나의 노래
잠시 쉬어가는 이 거친 숨소리
누군가에게 주고 가고 싶은 나의 노래
그림자도 없는 이 슬픈 나의 노래를
어디에 숨겨놓고 길을 떠나야 한답니까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lee
이유식
61770
10333
2017-10-26
빚진 인생

 
빚진 인생  

 

 

 

자궁 속을 빠져나온 울음소리
그날부터 칠순을 훨씬 넘어서니
능력보다 받은 것 너무 많아
빚만 지고 살아가는 인생일세

 

그 알뜰한 성원과 사랑
그 격려와 지도에 오늘이 있었건만
이 감사함의 눈물 어찌할꼬

 

헤일 수 없는 도움의 파도
수양의 부족함이 미로의 길을 걸으니
내 마음 속에 겹겹이 쌓인 업보를
상처입고 분노할 사람들 어쩌란 말인가

 

서산낙조 하얗게 식어가는데
빚 갚을 마음 막막하여 울고만 있으니
공수래 공수거, 빚만 남기고 간다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lee
이유식
61640
10333
2017-10-24
침묵의 노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눈을 감았다. 아무 생각이 없다. 무아의 경지에서 눈을 뜨고 하늘을 보았다. 하늘은 파랗고 그 하늘을 보니 하늘이 침묵하기에 나도 침묵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왜 내가 남의 땅에서 내 땅이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나 자신을 모른다. 어디로 내가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집시의 방황일까 꿈 속을 헤매는 심정으로 미로 속에서 꿈을 꾸고 있다. 영육이 따로 놀고 있다. 식탁의 메뉴에 오른 국밥이 짜다 맵다를 외치며 하루를 살아왔다.


무엇인가 찾고 얻어야 하는 강박관념은 나의 갈 길을 막고 어디엔들 없을까 하는 이상의 파도는 정적만이 흐르는 생존의 빈터다. 값어치 있는 빛을 찾아보려는 이상은 잡소리로 나의 고막을 터트린다.


고심하고 번뇌하는 삶의 깊이에 일렁이는 바람, 그 흔들림의 바람깃을 잡을 수 없어 한숨을 쉬며 북미 넓은 들녘 목장의 소 떼들을 본다. 나아가 달팽이가 된 나의 몸은 아무 감각이 없는 촉각으로 인생사를 달관하며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그런 것이려니 라는 생각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짓는다. 한심한 작태는 내가 훨 넘긴 7순을 망각 속으로 묻고 아직도 피끓는 청년의 기백으로 용솟음치는 패기를 가슴에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루지 못한 꿈의 정적을 깨워 천하를 바라보지만 내딛는 발걸음에는 긴 여운의 짧은 그림자가 내 육신을 난자하고 있음에 나이는 못 속인다는 인생사에 눈물을 뿌린다.


 <푸쉬킨>의 시를 음미한다. 지난 것은 다 아름답고 현실은 언제나 고달프고 슬프고 미래는 아름답게만 투영되는 인생사를 음미한다. 한 인생이 살아가는 여정 그 여정의 술잔에 남겨진 만큼의 서글픔의 공허는 눈물이 되어 나머지를 채워보려 해도 그것은 한숨이며 허무다. 다시 말해 타고 남은 재일 뿐 불씨의 무료함은 지루한 날들의 햇살과 같음에 한탄을 하며 엉엉 울어본다.


잘낫다하는 사람들도 가을 단풍잎 물들고 떨어져 밟혀가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새 떼들의 귀여운 재잘거림과 창공을 날아가는 매력도 있다. 또한 익살맞은 빨간 엉덩이의 원숭이의 춤도 설레는 밀어를 주고받는 연인들의 밀회의 아름다움도 침묵 속의 환상이다. 흘러가버린 추억은 살아있는 자의 회상 속에는 서러울 뿐일 것임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가끔 생각을 한다. 무엇이 나를 괴롭히고, 슬프게 하고, 기쁘게 하고, 또한 무엇이 남을 괴롭히고, 슬프게 하고, 기쁘게 할까를 생각할 때가 있다. 뒤돌아 보면 모든 것이 허무요 낭패인 것이 점철된 채 아쉬운 미련만 남는 인생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길을 잃을 때가 반복됨에 종착역이 무에서 끝나는 침묵임을 어찌 알랴. 내 아둔한 뇌 속 희망의 싹을 찾으면 축복받는 행복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 얻는다는 미명아래 서글픈 미소를 남기려 함은 자연의 이법이다. 조물주의 지나친 농간에 춤추는 꼭두각시의 행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나는 생각한다. 절망의 한숨이 솟아나고 주어진 불만이 나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음을 알고 나 자신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 현실은 벌써 멀고 먼 곳에서 내 영혼이 탄식을 하고 있음을 안다.


생각을 해 보자. 여명이 밝아오면 식품점에서 캐싯대를 두들겨야 하고 부동산업을 하는 사람은 한 건의 딜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흥정의 날개를 편다. 그렇게 가는 하루 속에 로키산의 엘크 사슴 떼들은 먹이를 찾아 평지의 들녘을 찾고, 긴 밤을 지키는 부엉이는 뜬 눈으로 산야를 지킨다. 여기에 기러기 떼 정처없이 날아가지 않더냐. 그런데 이 모든 것 때가 되니 아무 것도 없고 보이지 않으니 이걸 어쩌면 좋으랴. 생각할수록 생존은 왜 이다지 허무로운지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알길이 없다. 우리 같은 범인에게는 초라한 침묵 즉 죽음만이 낙원이 될 것이라는 상념이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 이 모든 것들의 허무의 눈물을 일찍이 깨닫고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고 대견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읽고 들은 풍월로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말하기를 인생은 존재의식을 변혁하고 사물에 대한 내적 태도를 바꾸는 네 가지의 한계상황 즉 죽음과 죄, 싸움과 고뇌 속에 살아가는 한계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나 같은 멍청이는 이 한계상황의 참 뜻도 모르면서 하루를 넘긴다. 이제 이번 주의 잡설을 마치며 언젠가 <대구신문>에 좋은 시로 선정된 침묵이라는 작품을 여기에 상재해 본다.

 

 

침묵(沈默) / 이유식

 


 
하늘 땅 자연
그리움과 사랑도 그 곳에 있었어

 

외롭고 서러운대로
창공을 날아가는 새 떼들처럼

 

그렇게 살다가 떠나는
허수아비는 눈물을 흘려도
세월은 잘도 가고 있었지

 

식어만 가는 영혼은
시나브로 자맥질을 하며
이승 길을 질주하고 

 

어두움은 밝음을 잉태하며
변함없는 진리를 각인하고 있었어
잠든 호수는 말이 없는데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slee
이유식
61312
10333
2017-09-29
커피향 속에 보내는 9월

 

<9월을 보내며>

 

 

변화하는 물결들
어이 단풍잎 뿐이랴
보우강 강물로 흘러가는 내 마음의 단풍잎
무작정 익어서 흘러가는 저 물소리
9월을 보내는 풀벌레 울음소리여라

 

유성처럼 눈물없이 쏟아 놓은 빛
그 신비의 빛깔은 누구를 위함이며
허무 속에 감내해야하는 생애
오솔길 처럼 고즈넉히 나를 찾아와
낙엽 잎으로 사르어지누나

 

언젠가 먼 훗날
떠나간 너를 다시 만날 때에는
단풍잎 물들지 않아도 좋으며
새들의 울음소리 듣지 않아도 좋을

 

9월이 가는 소리 
단풍잎 내 마음에 떨어지는 소리

 

 

 

 쨍하고 햇살이 따갑다. 변함없이 찾아왔던 보우강가 피셔크릭 공원 단풍잎이 물들어간다. 물 속에 아른 거리는 나의 자화상, 단풍잎 되어 정처없이 흘러만 가는구나. 이 공원을 찾는 길에는 맥 다방이 있다. 맥 다방에서 어제 받은 쿠폰으로 커피 한잔을 픽업했다. 공원 파킹장에 차를 세우고 언젠가 발표했던 <겨울 공원의 벤치> 자작시를 음미한다. 


 그 시의 산실을 요약하면 이렇다. 겨울이 와 눈 속에 쌓인 겨울 공원의 벤치에는 아무도 찾지 않고 앉아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봄 여름 가을이 오면 뭇사람들이 떼지어와 앉아 벤치를 이용하며 생을 즐기고 음미를 한다. 숱한 비밀과 생존의 희로애락을 여과없이 토해내어도 듣는 이는 이 벤치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벤치에 앉아 비비닥 시시닥 온갖 즐거움을 만끽하면서도 겨울이 되면 언제 내가 너를 이용했던가를 잊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래도 이 겨울 공원의 벤치는 인류를 위해 불평불만 한마디 없이 자기 몸이 낡아서 쓰러질 때까지 희생과 봉사를 하고 있음을 상기한 시였다.


 이 시는 인간세상의 사람들의 삶의 형태를 음미하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자기의 이해관계에 따라 남의 인격을 멋대로 짓밟으며 살아가는 인간세상의 생존을 개탄한 시였으리라.


 이제 가을이 깊어 겨울로 접어드는 이 북극 산야의 공원, 나는 이 공원의 벤치에 홀로 앉아 커피향을 즐기며 먼 하늘을 본다. 그리고 이 커피맛의 효능을 상기하며 많은 분들에게 커피의 효능을 전하고 싶다.


 연전에 읽은 나의 커피향의 효능에 관하여 다시한번 음미하며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한번쯤 시행 해 보기를 권유한다. 내가 읽은 커피의 효능은 하버드라는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지난 50여년간 성인 남녀 3천명을 대상으로 사례연구(case study)를 한 내용이다.


 내가 공부를 잘 못하는 석두이기에 하버드라는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거나 연구를 했다는 내용의 글은 전적으로 존경하고 신뢰를 해왔다. 즉 커피효능의 내용은 젊을 때부터 커피를 먹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첫째 커피는 꼭 식사 후 20여분 후에 블랙으로 마실 것, 둘째 설탕이나 우유 등을 섞으면 독이되며 절대 이런 흰 색깔의 이물질을 타서 마시지 말것, 이 두가지를 명심하라는 것이다.


 그 효능의 결과는 늙어 갈수록 얻는 알츠하이머(치매), 고혈압, 심장질환 등 각종 성인병을 줄이고 머리를 맑게 해주어 기억력이 회생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 지난 2년간 이를 실천해오고 있는데 놀라운 기억력의 회생이다. 


 예컨데 우리 집친구는 나를 모든 것을 제압하나 나의 섬세한 기억력은 이겨낼 수 없다고 했었는데 과거 5년여 동안 나의 기억력은 어디로 갔는지 그저 금방 읽은 것들을 잊어버린다는 핀잔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제 나의 옛 시절의 기억력이 다시 회춘을 맞이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가끔 느끼며 어쩐 일인가 하니 커피의 효능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잡설을 읽으시는 독자분들 한번쯤 실천을 해보시라는 건의를 한다.


 9월이 가는 문턱에서 다시 한번 생존의 참된 가치는 무엇일까를 음미하며 커피향에 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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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61188
10333
2017-09-24
방랑 시인의 향내

 
방랑 시인의 향내 
 

 

 

바람따라 은은한 바람의 향기가 불어오고 사람의 마음따라 사람의 향기 불어 세상을 덮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더러운 냄새도 있고 달콤한 향내도 풍겨온다.
마치 장미꽃과 같은 향기도 있고 가을에 물들어가는 단풍잎과 같은 향기도 있다.

 

연두빛 나뭇잎 솟아나는 오솔길에서 울고있는 매미울음 소리 같은 향기도 있고
연륜은 불타고 반딧불도 반짝이는 뒷방 노인의 향기도 있다.
오늘은 천년을 살고 천년을 죽어서도 살아간다는 허깨비 나무에 올라 사람들을 본다.

 

어딘지 모르게 희노애락의 향기가 용암으로 흘러 바다를 만들고 있고
그 심해에서 살아가는 물고기 떼들이 허깨비 나무를 조롱한다.

 

너와 나의 향기는 매 마찬가지인데 지구 속에 살아남은 티끌은
희망의 눈물이고 절망의 꽃으로 어머니의 자궁 속을 배회하는 사랑이 있다.

 

나만이 간작한 희열을 나만의 고독을 자랑하며 석양 노을 위에서 서커스를 한다.
사람냄새가 구더기가 되고 파리떼들이 뿌려놓은 애벌레가 찌린 오물이 악순환을 거듭한다.
혼란과 나만의 독선과 이기는 어느 민족의 유전자(DNA) 자학의 울음이다

 

발전은 악화가 양화를 탄생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생존을 난자한다.
그 달콤한 향기에 취한 병든 사회는 꽃으로 피어나 자화자찬 속에 위선의 꽃을 피운다.
제 잘난 멋에 살아가는 나의 동공은 참 더럽고 아니꼬운 향기의 사회다.

 

어쩔 수 없는 원죄의 환성은 요단강을 건너가고
그 속에서 사회의 정의와 진실은 꽃을 피우고 
그 향기에 취해서 춤을 추는 허명의 악랄한 위선
나는 오늘도 너와 나를 보며 그저 울고 울어본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사라고 시를 쓴다.
내 시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허수아비가 시를 쓴다.

 

시래기 된장국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돼지고기 수육에 소주를 마시는데 취하지 않는다.
오늘은 <마리아 라이너 릴케>가 사랑했던 <루 살로메>의 인간적인 참 인간적인 생존을 음미한다.
첫 사랑의 상처를 안고 한평생 시를 쓰다가 세상을 떠난 <에머리 디킨슨>을 그려본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어느 것도 택할 수 없는 허수아비의 시
그 시는 바보의 절규이며 위선의 횡포로 메아리치며 허공을 날고
새 떼들이 창공에서 울고 있다.(2017,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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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60749
10333
2017-08-25
[제10회 민초해외문학상 대상수상작]하얀 목화꼬리사슴-최연홍(시인, 전 서울시립대 교수)

하얀 목화꼬리사슴

- 최연홍

 

 

아무도 없는

겨울 숲에서 만난

 사슴 한 마리,

하얀 목화꼬리사슴.

내 앞에 와서

그냥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다.

 

 

떠나실 무렵

아무 말 없이

나를 그냥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이

사슴의 눈 속에 들어 와 있다.

 

 

눈물 같기도 하고

수정 같기도 한

서러운 이야기들이

우리들 사이에

남아 있다.

 

 


   목화 같은 눈송이들이

천국으로부터  내려와

이 겨울

어머니의 묘지를 덮고 있으리라.

 

 

부유하고

포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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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60477
10333
2017-08-04
루 살로메를 좋아했던 나의 연상의 여인(2.끝)

 

 

▲51살에 생을 마친 마리아 라이너 릴케의 근영

 

 

(지난 호에 이어)
 1615년 체코 프라하에서 출생하여 독일로 귀화를 했던 세계적인 시인 <마리아 라이너 릴케>는 유럽에서는 그가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줄을 서서 그를 찾아 왔것다. 그의 여성편력도 대단해서 감동적인 시만 잘쓰는 것이 아니고 여성들에게서 얻는 인기도 최고를 달했다. 2천여 편의 유작을 남기고 1815년에 생을 마쳤다. 


 그의 죽음의 원인도 세기적인 바람둥이임을 입증 하듯 <스위스 팔봉>이란 촌락에서 그를 찾아온 여성팬과 멋진 로맨스를 즐겼는데 이 두 사람은 산길을 걷고 있었다. 걷던 중 바위 사이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들장미 꽃을 발견케 된다. 이 여인이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자기와 비유한 듯한 말을 한다. 이에 <릴케>는 그 장미꽃을 꺾으려다가 장미꽃 가시에 찔린 것이 화근이 되어 51세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릴케는 평소에 시인이 붓을 드는 것은 사랑 때문이고 붓을 놓는 것도 사랑 때문이라 했다. 독자들에게 항시 시를 잘 쓰기위하여서는 남의 시를 읽고 또 읽고 나아가 자기도 계속 시를 써서 발표를 하면 언젠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말을 했었다 한다.


 이 유럽의 인기짱인 <릴케>가 <살로메>에게 반하여 연정의 시를 계속 써서 살로메에게 접촉했었음을 설명한다. 살로메에게 보낸 연정의 시 한편을 나에게 읽어주던 나의 연상의 여인의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큰 눈동자, 호수같이 맑은 눈동자, 백옥같이 흰 살갗의 소유자인 이 연상의 여인, 릴케가 살로메에게 보낸 연시를 읽으며 그 님의 눈에 눈물이 흥건히 고여있던 그 모습을 내 어이 잊으랴.


 릴케가 살로메에게 보낸 연시를 여기에 써본다. 옛 연상의 여인을 그리며.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꺾으세요/ 나는 당신을 내 마음으로 잡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멈추게 하세요/ 그러면 내 머리가 고동칠 것입니다/ 당신이 내 머리에 불을 지르면 그때는 내 핏속에 당신을 실어 나를 것입니다/ (살로메에게 보낸 ‘내 사랑’ 전문) 


 이런 종류의 연시뿐이 아니고 나아가 소유하지 않는 사랑을 노래도 했으니 릴케가 얼마나 살로메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역설을 한다. 나아가 나의 연상의 여인도 자기에게 어느 누군가 이런 열렬한 연시로 사랑을 전파해오는 남성이 있었다면 결혼을 했으리라고 말한다. 한참 듣고 있으니 나 같은 아득한 연하의 남자, 나아가 시라는 시자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것 같음을 각인하는 말로 나의 심장을 친다. 이어서 살로메의 생존을 이야기 한다.


 즉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렇다. <살로메>는 <길로트> 목사를 만났을 때 이미 성숙한 여인이었으며 그는 신을 부인하는 회의론자 였다. 살로메는 맑고 푸른 눈동자, 오똑한 콧날, 날씬한 몸매, 긴 다리를 갖고 있었으며, 양귀비같은 절세미인이라 부르지는 않았어도 남성들에게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풍겨주기에 충분했다. 


 살로메가 찾은 길로트 목사는 당시 <세인트피터스버그>에서 정계와 종교계 등 상류사회의 아이콘으로 불리고 있을 때였다. 길로트는 살로메를 만나 그의 해박한 신학, 철학, 논리학, 비교종교학, 독문학, 불문학 등을 온갖 정력을 가지고 그녀에게 전수하게 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이들의 인연은 길로트가 유부남으로 살로메에게 청혼을 함으로 끝난다. 


 이에 살로메는 스위스로 가 <취리히> 대학에 입학 <알로이드 비드만> 교수에게 수학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살로메는 중병에 걸려 학업을 포기하고 그의 어머니와 함께 다시 로마로 가게 된다. 로마에서 <프리드리히 니체>를 만난다. <파울레>라는 독일계 유태인의 거부로부터 니체를 소개받는다. 파울레는 살로메를 연모 하나 살로메는 별 의향을 보이지 않아 방황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살로메가 파울레에게 시큰둥하게 대하자 한 때 철학책을 출간한바 있는 그가 좋하하고 존경하는 니체를 로마로 초청 살로메를 소개한다. 니체는 첫 눈에 살로메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나 별 진전이 없이 서로의 만남은 계속된다. 이에 파울레의 제안으로 세 사람과 살로메의 어머니는 이태리 전역 여행길에 오른다. 


 나이로 따지면 파울레는 살로메보다 5살 연상이고 니체는 16년이 연상이다. 여행을 마치고 이들은 독일에 도착한다. 여행기간에 알듯 모를 듯 니체는 심혈을 기울여 살로메에게 연정을 표시하건만 살로메는 학문적인 인간관계로 니체를 대할 뿐이었다. 니체는 짝사랑으로 남겨진 허탈감에서 다음과 같은 혹독한 결별 선언을 하며 살로메와 헤어진다. 즉 <조그맣고, 나약하고, 더럽고, 교활한 여자, 가짜가슴이나 달고 다니는 구역질나는 운명의 여자>라는 저주의 말을 남기고 살로메의 곁을 떠난다. 


 이태리를 여행을 하면서 니체는 살로메에게 완전히 그의 영혼이 점령당한 채 그의 연하의 친구 파울레에게 살로메를 향한 사랑을 토로하고 협조를 요청했으나 파울레도 살로메를 가지려하는 입장이고 보니 도움은 되지 않고, 도리어 니체와 살로메의 관계를 악화시킨 장본인이 되는데, 니체는 이 내용을 알 길이 없기에 오해는 더욱 깊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니체가 살로메에게 준 저주의 폭언에 살로메는 아주 멋진 답신의 글을 보낸다. <당신이 나에게 준 행복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값진 고통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 않나요> 이 저주에 대한 답신의 글을 음미하면 살로메가 니체보다 한수 더 깊은 사랑과 존경심을 니체에게 주지 않았나 하는 은유가 숨어있다는 것이 나의 연상의 여인의 일갈이다.


 남자들은 동적으로만 여자를 보다가 그 동적인 충족을 나름대로 채우지 못하면 이렇게 악마가 되지만, 여자는 깊고 깊은 심해와 같은 정적인 사랑을 간직하고 때가 와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고 그 깊은 곳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바치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며 나를 응시한다.


 나의 연상의 여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제 나와 미스터 리와의 만남은 아마 오늘로 끝이라는 말을 하며 허망한 눈동자를 허공에 날린다. 아쉬움이 있다면 앞으로 더 길고 깊은 살로메의 생애를 다 설명해 주지 못하고 헤어져야함의 절박함이 있다는 말이다. 


 나 지금까지 29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경천동지할 현실이 내 앞에 나타남이 있을까하는 마음의 망연자실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지만 현실이 내 눈앞에서 번개와 천둥을 치고 있었다. 조용히 내말을 들으라며 다음 말을 이어간다. 


 “나는 현재 E 대학 부속병원 간호사인데 이제 일주일 후이면 네덜란드로 공부하러 떠난다. 공부를 마치면 모교로 돌아와 교수 생활을 하는 것이 꿈이다. 아직 미혼이지만 살로메와 같은 멋진 생을 살아가고 싶다. 지난 2년여 동안 나의 말동무가 되어준 미스터 리에게 감사한다. 아마 미스터 리가 나를 찾아올 일도 없고 찾아올 수도 없기에 우리는 영원히 재회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의 연상의 여인에게서 눈물이 고인다. 나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아무말없이 가화다방을 나와서 명동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은성이란 동동주 집에서 생김을 놓고 앉아 동동주 두 대박을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서로가 취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흘렸다. 밤 11시, 밖에는 가을비가 소리없이 내린다. 퇴계로까지 걸어서 택시를 잡아 동대문 E 대학병원 기숙사로 그녀를 보냈다. 그리고 장충공원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걷고 또 걸으며 무언가 세상을 다 잃은 비참함 속에 눈물을 흘리며 걸었다.


 새까만 눈동자/ 싸늘한 지성의 소유자/ 새까만 눈동자를 감았다가 뜨면/ 맑은 호수 같은 눈동자/ 명상에 잠겼던 눈/ 그 눈에는 베풂과 사랑과 포용 속에 /그리움을 태양빛 같이 토해내는 눈동자/ 백옥같이 흰 살갗 위에 눈물이 고이면/ 이 세상사람 울지 않을 사람이 없는 눈동자/ 무작정 좋아했던 그 눈동자/ 그 눈동자는 나에게서 영영 떠났습니다/ 미완성의 아름다움/ 설익은 낭인의 발자국에 눈물이 고여도 /인생은 그 아름다움을 먹고 추억하며 살아가다가/ 흙이 되는가 봅니다/ <이유식 ‘눈동자’>


 그 살로메에 관한 생존을 끝까지 나에게 이야기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살로메같은 삶과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나는 파랑새 한 마리를 내 품에 안고 앞날을 저울질 한다. 그 님의 건승과 멋지고 알찬 생존을 기원하며 이방의 뒷골목에서 허어허이 헛 손짓을 한다. 파아란 하늘을 보며 눈물을 떨구는 허수아비가 여기에 있다. 오늘도 석양노을은 서산을 넘고 있는데 생존의 허무는 뜬구름으로 흘러가누나. (처음 써본 소설식 수필을 여기에서 마칩니다. 201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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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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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0
루 살로메를 좋아하던 나의 연상의 여인(1)

 

 늦은 가을비가 바람을 휘몰아치고 있는 저녁 석양노을은 찾아왔었지, 덕수궁에서 불어주는 하늬바람을 따라 휘날리는 노오란 은행 나뭇잎이 북창동 소공동 명동으로 불어와 내 어깨를 두들겼었어, 퇴근 시간이 되었건만 오늘따라 소주 한잔 하자는 친구가 없어서 쓸쓸하게 혼자서 소공동 뒷길을 걸었었지.

 

 

 


 행여 이곳에는 누군가 나를 기다릴 것만 같아 ‘일품향’이란 중국집에 들어갔었어, 비가오고 바람이 불고있는 탓일까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던 이 중국집도 오늘은 텅 비어있었지, 한쪽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 언제나 즐겨마시던 오향장육 중국집 특유의 술안주와 ‘빼갈’ 한도꾸리를 시켰었어, 독한 고량주지만 이날은 한도꾸리로 양이 차지 않아서 한도꾸리를 더 마시니 온통 세상이 내 것이 되는 것 같았었지.


 총각이란 고유명사가 좋기는 좋다는 생각을 하며 언제까지 이 총각이란 명예를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얼큰한 몸을 이끌고 일품향을 나와서 언제나 찾던 바로 옆 건물의 ‘가화다방’으로 들어갔었지, 이상하게 조용한 다방에서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야상곡’이 은은하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었어, 쓸쓸한 마음은 가중되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상대할 사람이 없어 나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지,


 그런데 외로움은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길을 열어주는 것일까 한 여인이 우산을 털고 다방으로 들어왔었어, 첫 인상에 아름다운 중년의 여인이 어이 혼자 왔을까를 생각하며 나의 눈은 이 여인에게 쏟아지고 있음을 나 자신이 알았었지, 


 용기를 낸 나는 이 여인의 옆 의자에 가서 앉으며 주접을 떨었지, “안녕하십니까, 혼자입니까,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옆 좌석에 앉아도 되겠습니까”하며 온갖 예의를 갖추어 영국신사의 품위를 지키려 노력을 하며 이 여인의 반응을 보았지 처음에는 이상한 눈으로 한참을 응시하더니 혼자이니 옆에 앉아도 좋다는 허락이었어, 이로서 나의 연상의 여인과의 교제는 시작이 되었것다.


 (독자님들 총각시절을 그려 보시고, 젊은 친구들은 60, 70년대의 낭만을 음미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픽션을 쓰고 있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각설하고! 나의 연상의 여인과 나와의 만남은 잦아졌어, 일주일에 한번꼴로 가화다방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멋쟁이들과 미인들만 나온다는 소공동의 티파니 다방에서 명동의 청자 다방으로 고전 음악만 들려주는 설파와 훈목 다방으로 때로는 사보이 호텔 지하 구디구디에서 양주잔을 들기도 하고 때로는 코스모스 백화점 앞 샛길에 은성이라는 동동주 집과 명동 성당 앞의 동동주 막걸리 집에서 마른 생김과 오뎅국물에 우그러진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 토종 막걸리를 즐겨 마셨지.


 은성이라는 동동주 집은 지금도 그 유명한 탤런트 최#암이란 분의 어머님이 경영을 하고 있었는데, 가끔 이 어머니에게 물어보았지, 어머니 아드님이 훌륭한 탤런트로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짱인데 왜 이런 막걸리 집을 경영하느냐고, 그러면 이 어머님 왈, 아들은 아들의 삶이 있고 나는 나대로의 삶의 가치가 있지 않느냐며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르지,


 북쪽에서 월남을 한 동포들의 생활력과 남쪽 사람들의 생활관 차이가 있음을 지금에야 느끼고 있는데, 이는 북쪽에서 남으로 온 사암들이 잘살고 성공한 것을 엿볼 수 있었어.


 그런데 세월은 흘러 다시 일년이 지나고 겨울눈이 펄펄 휘날리는 날 우리는 가화 다방에서 다시 만남을 가졌었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 “결혼은 하셨습니까.” 묵묵부담, 다시 물었지 “왜 가화다방을 좋아하느냐”, 그때 들려오는 대답 “19세기의 독일이 나은 미인 작가 ‘루 살로메’를 아느냐?”고, 나 천장을 쳐다보면서 멘붕이 되었는데 루 살로메에 관한 일장연설이 시작되었어, 


 독일 출신 작가라 하지만 그녀는 불란서 출신이 맞는다는 말과 17살에 25세 연상인 ‘길로트’라는 네덜란드 출신의 목사와 소련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2년여 간 교제를 했었는데 길로트 목사는 가정을 가진 유부남으로 살로메에게 청혼을 함으로서 이들의 인연은 끝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이 가화다방에 자주 나오는 이유는 한국의 훌륭한 작가들이 즐겨찾는 곳이기에 자기도 이 다방을 찾는다는 대답이었어,


 나는 이 연상의 여인의 나이를 알고 싶었지만 물을 수는 없어 애를 태웠었는데 길로트 목사가 가정을 가졌는데 어이 25세 연하의 여인에게 청혼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질문이었어, 한편으로는 이 여인의 나이를 알고자 유도를 했었지, 행여 젊은 남성이 청혼을 한다면 어떠냐고 물었지, 


 그런데 대답은 자기의 나이는 나보다 십수년이 위인 것 같다며 그저 씁쓸한 미소를 남기며 먹을 수 없는 감나무에 달린 감은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을 남겼어, 이때부터 내 나이보다 십수년 연상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5, 6년만 위라면 나도 총각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하는 상념을 씹으며 혼자서 웃었지,


 이어 살로메는 소련 세인트피터스버그에서 출생했으며 훌륭한 작가이고 평론가였으나 그녀 자신이 저술한 책은 없고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개척자 중 한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강조했었어, 또한 뚜렷한 학문적 업적은 없어도 당대의 독일 제일의 철학자로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나 ‘말테의 수기’, ‘비가’ 등을 저술한 천재시인 마리아 라이나 릴케 같은 사람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한 장본인으로 더욱 유명하다는 것을 강조했지,


 이후 덕수궁 돌담길을 아무말없이 무작정 한 바뀌를 걸었지, “내 마음에는 무작정 당신이 좋아졌습니다”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걷고 걸어서 광화문 쪽을 향하다가 초원 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쓸쓸히 헤어졌어, 나에게 루 살로메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으나 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고차원의 작가세계를 알 길이 없어 그냥 잊어버리고 한 달여 지나갔지, 다음에 만날 수 있다면 살로메에 대하여 좀더 진지하게 물어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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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ee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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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7
편운 조병화 시인의 죽음과 사랑의 철학

 

▲편운 조병화 시인 근영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조병화)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서러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외로운 까닭이 아니올시다. //사나운 거리에서 모조리 부스러진 /나의 작은 감정들이 /소중한 당신 가슴에 /안겨 들은 것입니다. //밤이 있어야 했습니다. /밤은 약한 자의 최대의 행복 /제한된 행복을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눈치를 보면서 눈치를 보면서 /걸어야 하는 거리 /연애도 없이 비극만 깔린 아스팔트 //어느 이파리 아스라진 가로수에 /기대어 별들 아래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나보다 앞선 벗들이 인생은 걷잡을 수 없이 /허무한 것이라고 말을 두고 /돌아들 갔습니다. //벗들의 말을 믿지 않기 위하여 /나는 온 생명을 바치고 /노력을 한다 해도 나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같이 믿어야 했습니다. <2005.03.10> 

 

 상기 편운 선생의 시는 내가 중부전선 전방지역에서 근무할 때 잠이 없는 밤 혼자 즐겨 암송하던 작품이다. 읽고 암송을 하고나면 내 마음에 편안과 희망을 안겨주는 작품이었다. 아마 이 한 작품 때문에 내가 시라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닌가를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다. 


 문학이 무엇인지 시가 무엇인지 모르는 젊은 시절 나의 사랑과 꿈과 희망과 낭만을 안겨주었던 이 시를 나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아마 이 시 한편이 오늘의 나에게 시라는 것을 쓰게 한 것이라 생각을 한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나대로의 영감의 사랑과 생존의 철학을 음미하며 나대로의 즐거움을 찾은 시간들이 많았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때로는 주어진 여건에 실망감을 느낄 때, 사회가 어이 이 모양으로 흘러가는가, 정의와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위선과 질시와 가변의 진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살아가야하나, 사랑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은 누구일까, 내 생존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좁은 땅덩이일까, 어이하여 이렇게 못 살아가는 나라에서 태어났을까, 나는 왜 아버지를 못 본 유복자로 태어났을까, 대농의 부유한 가정인데도 나는 어이하여 조상님들로부터 유산 한 푼 못 받고 이 고생을 하면서 살아갈까, 형님은 돈으로서 군대를 가지 않고 고생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나는 왜 왜를 외치며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 속에 내 젊음을 불태웠다 말하고 싶다.


 한 마디로 조병화 시인의 시는 이해하기 쉽고 아름다운 언어로 인간의 숙명적인 허무와 고독을 심도있게 독자에게 전파시켜 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아가 철학적 명제의 성찰을 통하여 꿈과 사랑의 생존을 형상화해 주고 있었다. 이에 나의 여린 마음에는 그의 시는 내 삶의 이정표 형성에 일조를 한 것 같다.


 소월의 시가 전원 서정을 바탕으로 민족의 정한을 노래한 데 비하여 조병화의 시는 외로운 도시인의 실존적 모습, 경쟁과 혼돈의 시간들 생존의 틈바구니에서 민초들의 애환을 그려주고 있다. 나아가 꿈과 사랑으로 자아의 완성에 이르는 생존의 아름다움을 깨우쳐주는 낭만이 거기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상기 시를 얼마나 좋아했는가 하는 것은 하기 이 시를 패러디한 나의 시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이유식)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당신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나그네의 서러움도 아니었고/배고픔의 절규도 아니었습니다.//망각된 세월 속에/당신의 검은 눈동자가 있어야 했고/버림받은 착각 속에/ 허무한 인생을 더듬던//당신의 검은 머리카락이 있어야 했습니다.//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수정같은 눈물 속에 /무작정 당신의 환영을 되새겨야 했으며


얄팍한 지식과 기회에 얽매이면서도/ 당신의 하이얀 살결은 있어야 했습니다.//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위선 증오 시비에 휩싸이지 않으려고/팔딱이는 심장을//당신의 가슴 속에 응고시켜야 했고/ 기약없는 방랑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될 줄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 (1979년 10월 초창기 이민자의 고통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편운 문학관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편운 문학관을 찾아서 교류를 튼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생존시의 조병화 시인이 쓴 작품 <죽음과 사랑의 철학>이 나의 문학관에 들어 왔기에 그 전문을 발표를 하니 독자 제위님들이 한번쯤 음미하시기를 바라며 나의 30번째 잡설을 마친다. 

 

죽음과 사랑의 철학(조병화)


 점점 가을이 가을답게 깊어 가면서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아 가는 느낌이옵니다. 어제는 그러니까 10월 21일 금요일, 안성 내 고향 난실리 편운회관에서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 코스에 있는 학생 여섯 명을 데리고 그들의 원대로 강의를 했습니다. 참으로 고향에서 이렇게 강의를 하다니, 하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하였습니다.


 ‘고향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고향을 빛낸다’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나의 인생, 걸어온 이야기들을 나의 철학과 나의 문학으로 이야길 했습니다. 실로 나의 인생은 죽음을 생각하는 철학이었고, 그 죽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고, 그 노력은 오로지 시간과 꿈과 허무와의 투쟁이었습니다. 그 시간과 꿈과 허무와의 투쟁 속에서 그 많은 시들을 얻어낸 생애였습니다.


 죽음은 어머님이 ‘살은 죽으면 썩는다’하는 말씀에서 터득하였고, 사랑은 어머님이 내가 동경고사(東京高師)에 합격을 해서 일본 동경으로 떠날 때 서울역에서 하신 말씀, “나는 네가 입학시험에서 떨어졌으면 했다”하시며 눈물 글썽글썽 하시던 그 말씀 속에서 터득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어머님은 나에게, 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철학, ‘죽음의 철학과 사랑의 철학’을 가르쳐 주셨던 겁니다.


 나는 이 죽음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나에게도 있을 죽음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긴장을 한번도 풀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어떻게 보람 있게 살 것인가, 하는 철학하는 마음으로 줄곧 시간을 일분 일초 아끼면서 살아왔던 겁니다.


 일을 하면서 인생을 보다 인생답게,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풍부하게, 생명을 보다 생명답게 아름답게, 생애를 보다 생애답게 보다 후회 없이, 이러한 생각과 노력으로 살아온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철학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시 작품 등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한동안 고향에 젖어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실로 가을비는 철학이옵니다. 몸 건강하시길, 그럼 또. (199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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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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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9
허수아비 시인의 향기

 
허수아비 시인의 향기

 

 

 

바람 따라 은은한 바람의 향기가 불어오고 사람의 마음 따라 사람의 향기 불어 세상을 덮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더러운 향내도 있고 달콤한 향내도 풍겨온다.
마치 장미꽃과 같은 향기도 있고 가을에 물들어가는 단풍잎과 같은 향기도 있다.

 

연둣빛 나뭇잎 솟아나는 오솔길에서 울고 있는 매미울음 소리 같은 향기도 있고
연륜은 불타고 반딧불도 반짝이는 뒷방 노인의 향기도 있다. 
오늘은 천년을 살고 천년을 죽어서도 살아간다는 헛개비 나무에 올라 사람들을 본다. 
어딘지 모르게 희로애락의 향기가 용암으로 흘러 바다를 만들고 있고
그 심해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떼들이 헛개비 나무를 조롱한다. 

 

너와 나의 향기는 매 마찬가지인데 지구 속에 살아남은 티끌은 
희망의 눈물이고 절망의 꽃으로 어머니의 자궁 속을 배회하는 사랑이 있다.

 

나만이 간작한 희열을 나만의 고독을 자랑하며 석양노을 위에서 서커스를 한다.
사람냄새가 구더기가 되고 파리떼들이 뿌려놓은 애벌레가 찌린 오물이 악순환을 거듭한다. 
혼란과 나만의 독선과 이기는 어느 민족의 유전자(DNA)의 울음이다.

 

발전은 악화가 양화를 탄생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생존을 난자한다.
그 달콤한 향기에 취한 병든 사회는 꽃으로 피어나 자화자찬 속에 위선의 꽃을 피운다. 
제 잘난 멋에 살아가는 나의 동공은 참 더럽고 아니꼬운 향기의 사회다. 

 

어쩔 수 없는 원죄의 환성은 요단강을 건너가고 
그 속에서 사회의 정의와 진실은 꽃을 피우고 그 향기에 취해서 춤을 추는 허명의 악랄한 위선
나는 오늘도 너와 나를 보며 그저 울고 울어본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사라고 시를 쓴다.
내 시를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허수아비가 시를 쓴다.

 

시래기 된장국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돼지고기 수육에 소주를 마시는데 취하지 않는다.
오늘은 <마리아 라이나 릴케>가 사랑했던 <루 살로메>의 인간적인 참 인간적인 생존을 음미한다.
첫 사랑의 상처를 안고 한평생 시를 쓰다가 세상을 떠난 <에머리 디킨슨>을 그려본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어느 것도 택할 수 없는 허수아비의 시
그 시는 바보의 절규이며 위선의 횡포로 메아리치며 허공을 날고 
새 떼들이 창공에서 울며 난다. (2017.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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