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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7
조선의 지조(志操)-성삼문과 이순신을 돌아본다

 


윤종호

(문협회원, <계간수필>동인)

 

 이승만 정권 말엽,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지조를 흙같이 여기던 세태였나 보다. 그런 풍조에 분노한 ‘마지막 선비’ 지훈(芝薰)은 그의 명 논설 <지조론, 1960>에서 일침을 가했다.“지조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려는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겠는가? 식견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라고.

 

 세종의 탁고(託孤)를 입은 중신이 목숨 바쳐 충의를 떨친 게 성삼문의 모습이다. 지조는 양심이 명하는 바른 뜻을 지키는 굳은 의지다. 순도와 품격을 기준으로 지조의 등급을 매긴다면, 첫 번째는 성삼문일 것이다. 절개를 굽혀 판서, 정승을 지내고 적절히 공적도 이룬, 소위‘꿩 먹고 알도 먹는’처신의 전형은 정인지. 신숙주, 정창손, 권람, 최항 등에서 본다. 그들이 성삼문의 서슬퍼런 절의 앞에 선다면, 빛이 흐리고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임진. 정유 7년여의 왜란 때 내부의 적들은 이순신의 활약을 시기하는 데 열심이었다. 그들은 왜장이 획책한 수작(酬酌)에 놀아나면서도 순신을 음해했다. 내부의 적 중엔 선조임금도 있었다니, 한(韓)민족의 나라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하겠다. 순신은 꿋꿋한 지조와 살신성인하는 인품으로 안팎의 난관을 극복하고, 20배, 30배나 많은 왜적과 싸움에서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연전연승을 거두고 나라를 구했다. 그는 현충사, 이순신대교, 군함 이름, 거리 이름, 지폐, 광화문 광장의 동상 등으로 기념되어 겨레의 존숭을 한몸에 받는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적 성취는 한글 창제일 것이다. 성삼문은 한글의 음운체계를 개발하느라 신숙주와 함께 명나라와 요동 지역을 열세 번이나 다녀오는 등 공적이 컸다. 단종의 복위를 꾀한 성삼문 등의 쿠데타 모의(세조 2)는 김질과 그의 장인 정창손이 밀고했다. 이때 주모자 70여 인과 그들의 가족 친척 등 6백여 명이 주살되었다. 세조가 친국하며 삼문의 한쪽 팔을 자르고,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다리를 뚫었다.

 

 (세조):“공모자를 불면 목숨은 살려주마.”(삼문):“박팽년 이개 유응부 등과 우리 아버지뿐이오.” 세조가 재차 다그쳤다. (삼문) “그게 전부요. 우리 아버지의 가담도 숨기지 않고 말했거늘, 항차 다른 사람이겠소!?.”

 

 국문장에서 강희안을 본 삼문이 청을 했다. (삼문)“이보시오 나리(세조 임금)! 나리는 선대가 아끼던 명사들을 다 죽이면, 누구와 더불어 정사를 논하려 하시오? 강희안은 어질고 재주있는 사람이오. 그는 모의에 가담한 바 없으니, 놓아주오.”강희안은 곧 풀려났다. 자신은 죽음의 길을 가면서 아까운 벗의 구명을 위해 변명을 한 것이다.

 

 능지처참 직전에 읊은 삼문의 절명시(絶命詩)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하지만,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한 대장부의 기개와 자부심이 넘쳐난다.

 

擊鼓催人命/ 回頭日欲斜/ 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 (울리는 북소리는 사람 목숨을 재촉하고/ 돌아보니 해는 지려고 하네/ 저승 길에는 주막 하나도 없다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 묵어 갈꼬)

 

 훗날 세조가, 그때 죽인 선비들을 회고한 자리에서 “금세(今世)에 난신(亂臣)이나, 만세의 충신이로다.”라고 했다. 세조가 평한대로, 사육신 등의 충의는 6백 년의 시공을 넘어 오늘에 전하는 메시지가 맵고도 뜨겁다. 그들의 서릿발 같은 기백과 지조가 없었다면‘충효(忠孝)’를 최고 가치의 덕목이요 이념으로 삼던 조선의 교육철학도 공염불이 되었을 것이고, 자칫 국민정신이 타락하여 곡학아세(曲學阿世)와 궁중 음모의 썩은 냄새만 진동할 뻔하지 않았을까. 사육신의 절의, 이순신의 끈질긴 충성심은 민족사에 부는 한 줄기 청량 풍이요, 우러러볼 교육지표라고 하겠다.

 

 근래 일부 교수가, 조선 초의 변절자 정인지 신숙주 정창손 등의 활동을 부각하면서,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 박제순 이완용 송병준 이근택 조중응 이지용 권중현 민영기 고영희 등을 유능한 관료라고 치켜세우는 등 해괴한 주장을 한다. 그런 자들은 순정(純正)한 충신인 성삼문 박팽년 등과, 구국 활동에 목숨을 바친 이순신 이회영 이상룡 김구 신채호 안창호 노백린 김좌진 안중근 윤봉길 유관순 등을 현실 부적응자로 치부(置簿)하며 비아냥거리는 부류다. 출신이 의심스러운 인간들이 토하는 치졸한 궤변으로서, 속이 뻔히 보이는 말장난이다.

 

 만약 우리 역사가 그런 자들의 희망대로 됐다면 조선도 한국도 벌써 없어졌을 것이고, 김 씨. 이 씨. 박 씨. 등 조상 전래의 성과 이름은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말과 한글은 쓸 수도 없고, 정체성을 잃은 우리 겨레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녹아들어 그들의 눈치나 살피며 연명할 게 뻔하다. 한류(韓流)라는 문화 현상은 꿈도 꿀 수 없을 일이다.

 

 지조있는 이는 제 뜻이 꺾이면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들고, 지조를 팽개치는 이가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천 리 밖으로 달아난다. 목숨이 귀한 건 같을진대, 두 부류가 위기 때 보여주는 믿음성과 지조와 관련해 나타내는 태도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지조 있는 이와 지조 없는 이의 품격 차이도 그만큼일까?

 

 지조는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겨레와 나라의 명맥을 지키는 실천적 정신이다. 지조 없는 자를 움직이는 건 선악을 구별하는 가치관도 양심의 명에 따르는 굳은 의지도 아니다. 개인적 안락을 셈하는 얄팍한 타산이 그의 사고를 지배한다. 이는 지식이 많고 적은 것과는 상관이 없고, 오직 말과 행동으로 드러난 것에 의해 평가가 이루어진다.

 

 간사한 자는 면종복배(面從腹背)하고, 일구이언(一口二言)하기를 식은 죽 먹듯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래서 부귀를 누릴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들의 언행에는 방향(芳香)이 없다. 그러한 존재가 선비, 교양인 또는 지도자라는 우아한 너울을 쓰고 앞장선 사회는 불행하기 쉽다. 조심하고 경계할 일이 아니겠는가.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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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특별기고)티끌 모아 태산이다

 

원옥재(문협회원)

 

 

 며칠 전 신문 광고를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남의 일로만 생각하고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절실하게 한인요양원의 필요성을 깨달았던 경험은 어디로 사라지고, 벌써 그 일을 잊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의 노년은 요양원과 관계가 없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싶어서다. 이미 수 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는 생의 마지막 일년을 요양원에서 지내셨다.

심장마비를 겪으신 후라 일반 가정에서는 돌봐드리는 일에 한계가 있어 결국 요양원으로 모셔야 했었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죄송함에 영어로만 소통이 되는 곳이었기에 자식들의 마음고생이 어머니 못지 않게 많았다.

당시엔 한인요양원이 없었기에 캐슬뷰 요양원을 택했다. 비록 외국인 시설이라 해도 3층은 한인 노인 70여 명이 수용되어 있어 한인이 전혀 없는 곳보다는 나았다.

24시간 한국어 TV 방송을 시청할 수도 있고, 가끔 한국음식도 접할 수 있고, 주말마다 예배도 보고, 머리와 손톱 발톱을 깔끔하게 손질해주는 한인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손길이 있어서 가족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비록 그렇다 해도 내 집을 떠나 사는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불편함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언어와 음식문화가 달라서다. 누구나 몸이 아프고 외로울 때 찾게 되는 음식은 가족이 사랑과 정성으로 만든 따뜻한 한국음식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육신의 고통을 간호사들과 소통할 수가 없었으니 매사에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다. 또한 서양인 큰 체구에 맞춰진 화장실은 우리 동양인에겐 불편하여 볼 때마다 불안스러웠다.

몇 년이 더 흘러 한인 전용의 무궁화요양원이 문을 활짝 열었다. 꼭 가보고 싶었던 그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비록 작은 규모일지라도 한국어로 간호사와 소통하고, 한식이 삼식 제공되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 모두 한국어로 진행되는 걸 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고향에 온듯 평안했다.

 모든 시설이 우리에게 딱 맞춤이었다. 그제서야 외국인 요양원에서 한인 노인 한 분이 겨우 3개월 만에 한국어를 모두 잊어버렸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절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오타와에 사는 손주들의 수영 레슨을 같이 간 적이 있다. 그 수영장은 웅장한 시설에 보안까지 철저했는데 외형으로만 보아도 규모가 대단했다. 아들에 의하면 유대인 커뮤니티 소속 건물이라고 하는데 근처에는 그들만의 학교, 은행, 요양원, 도서관 등 모든 공공시설이 함께 모여 있다고 한다.

 가슴이 멍할 정도로 감동에 젖어, 과연 우리는 언제 이런 커뮤니티 시설을 모두 갖출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물론 그들이 이 땅에서 축적한 부와

명예는 우리와 비교할 수 없겠다. 헌데 우린 천심만고 끝에 세운 기존의 작은 한인요양원을 지켜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상태였으니 부끄럽지 않았겠는가. 사실 노년기에 들어선 한인 수에 비한다면 한인요양원이 더 필요한 실정인데 말이다.

 한인요양원 건립은 일찍이(1993년) 동포들의 노력과 성금으로 시작하였으나,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려 어렵게 우리에게 다가온 곳이 무궁화 요양원이다.

 겨우 60침상의 작은 규모로 개원하자마자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 후 무궁화요양원의 소유권을 찾기 위해 법원명령에 의한 공개입찰에 대비하여 1차 모금(2017년)을 했었으나 기회를 놓치며 사설 요양원을 운영하는 리카케어에 매각되고 만다.

하지만 작년에 시작된 코로나19 부실 대응과 운영상의 실책으로 그 리카케어가 운영하는 사설 요양원들로부터 집단 사망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무궁화요양원의 입찰권이 다시 우리한테로 양도(2021년)되는 행운을 잡게 된 것이다.

거의 잃었다가 되찾은 무궁화요양원은 원래 온주 정부가 소수민족 복지정책의 하나로 한인사회에 제공되었던 것이니, 우리가 끝까지 우리 힘으로 지켜내야 할 명분 하나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이제 우리 부모님 세대는 거의 떠나시고 이민 1세들이 서서히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이곳에서 30-40년을 살았어도 아직도 한국말, 한국음식을 먹으며 작은 한국을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무궁화요양원이야말로 바로 백세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미래의 마지막 거주지인 것이다.

 다행히 1.5세와 2세 전문인 중심으로 인수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대대적으로 2차 모금을 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이미 동포들 중 큰 뜻으로 앞장을

선 분들이 많아 약 260만 불은 모금되었다 한다. 그러나 아직도 성공적인 매입에  필요한 다운페이먼트 450만 불에 이르려면 갈 길이 멀다.

본격적으로 범 동포모금운동이 5월말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 ‘티끌 모아 태산이다’라 하지 않던가. 비록 팬데믹으로 우울하고 막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각 가정마다 작은 정성으로나마 기꺼이 동참해주길 바란다.

이는 우리의 프라이드를 지키는 일이며, 부모님 사랑을 위해서 아니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실천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코 불구경하듯 남의 일로만 여기지 말자. 동포들의 동참을 진심으로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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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2
구호 제창 문화

윤종호 칼럼

<계간수필>동인, 문협회원

 

 통신의 발달에 힘입어 고국의 소식을 쉽게 접한다. 뒤숭숭한 상황에서 ‘파이팅!’ 구호를 외칠 일이 그리 많은지? 운동선수로부터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유치원 봄나들이 때, 중학생들의 미술관 견학 시, 설악산에 오른 가족들도, 동남아 관광지에서, 뉴욕 타임스 스퀘어의 군중 속에서, 인천공항에 와서도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 촬영을 한다. 가관인 것은 교장 연찬회 기념으로, 문화 예술인의 작품 발표회에서,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에 선 배우도, 국회 앞 계단에 모인 의원들도, 모임에 참석한 대통령과 장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캐나다의 한인 신문에 오른 교회 행사 때 교직자들이 주먹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보면 쓴웃음이 난다. 한국인이 모인 곳은 어디든 이 구호를 외치는 게 유행이다. 남녀노소의 구별도, 지식 교양 직업의 차이도, 때와 장소의 구분도 없다. 구호 제창에 동참하여 동질감과 소속감을 확인하는 것이 한인 사회의 문화 현상인 것 같다.

내가 처음 ‘파이팅!’ 하고 외쳤던 게 국민학교 4, 5학년 때였던가. 당시 많이 진주한 미군의 영향인지, 또래들과 야구, 축구 등 단체경기를 하며 ‘파이팅!’ 하고 외쳤다. 전쟁을 치른 뒤여서 ‘싸우자!’, ‘무찌르자!’, ‘쳐부수자!’라는 구호는 교과서, 노트, 잡지, 만화책 등 모든 출판물에 박혀 있었고, 길가의 벽보나 현수막에도 넘쳐났다. 우리들의 친선경기 때도 ‘잘하자!’ ‘이기자!’ 하면 될 것을, 굳이 살벌한 구호를 앞세우곤 했다. 캐나다에서는 토박이 백인들의 구호 제창 때도 ‘Fighting!’ 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럼 이것은 한국인만 쓰는 구호인지? 이유가 어떻든 아이들이 시합할 때 소박한 승리욕으로 ‘파이팅!’ 한다면, 참아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사회 일반이 한결같이 그런다면 좀 들여다봐야겠다.

한국사회의 적폐를 집약적으로 드러낸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참사는 멀리 사는 내 얼굴도 뜨겁게 했다. 현장을 찾은 공직자들은 힘찬 ‘파이팅!’ 소리와 함께 주먹 쳐든 기념촬영에 분주했다. 역사적 현장에 간 증거를 남기려는 듯, 흰 이를 드러내며 ‘파이팅!’하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어떤 이들은 그 직후 공직을 떠나야 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은 부족하고, 이웃의 참극 앞에서 외친 ‘파이팅!’ 구호는 공허하게만 들렸다. 아무리 산 사람의 세상이라 해도 그렇지, 40여 미터 바다 밑에 침몰한 여객선을 수색하여 건진 자녀들의 주검을 통곡으로 맞이하던 팽목항 방파제였다.

그곳이 과연 ‘파이팅!’ 구호를 질러댈 자리였나? 그들은 자신의 행위가 몰염치의 극치임을 몰랐을까?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그리도 무지몽매한 짓을 공공연히 벌였다. 제 가족은 이 비극과 무관함을 확인한 안도감, 비교되는 행복감에서 웃으며 외친 ‘파이팅!’만은 아니었기를 빈다.

외국의 경우를 보니, Go, USA! 또는 Go!, Allez France!(나가자 프랑스!), 中國加油!(즁꿔짜요우; 중국 힘내라!), Nipon Ganbare!(일본 힘내라!) 정도이다. 응원 구호가 모질거나 그악스럽지 않고, 의외로(?) 순하고 담담하다. 말은 그 민족의 문화를 담고 있다. 그들은 적대감을 띤 ‘Fighting(싸우자, 쳐부수자)!’이란 말을 전투 현장 외에는 쓰지 않나 보다. 지성적이고 품위 있는 민족들은 점잖은 언어를 쓰고 있다. 우리와 관련된 특정 사안에서 지성적이고 품위 있는 언행를 했는지는 일단 제쳐두고, 그들은 대체로 국제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품격 있는 나라요 민족으로 통한다.

주먹 쳐든 ‘파이팅!’ 제창에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전체주의 망령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낮춰보는 북한식 독재체제에서 자주 쓰는 방편이기도 하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했다. 범죄자를 쫓는 형사의 눈빛이 범인의 그것을 닮아가듯,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지금껏 혐오하고 비난했던 집단의 그것을 닮아갈까 봐 걱정된다. 민주화 과정의 극한투쟁 때 썼던 제스쳐를 민주화를 이룬 후에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단세포적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경제적으로 선진 사회’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달성한 이제,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갈대답게 이왕이면 제스쳐도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어울리도록 마음을 썼으면 좋겠다.

21세기 국제화 시대인데, 모였다 하면 주먹 쥐고 거친 구호를 외쳐대는 그림은 좀 그렇다. 세계의 민족과 나라들은 선의의 경쟁과 협력의 대상이지 타도해야 할 적(敵)은 아니다. 그런 구호를 외치고 싶으면 ‘파이팅’만은 국방에 임하는 장병들의 몫으로 돌리고, 일반인들은 ‘한국 이겨라!’, ‘나가자 한국!’, ‘Victory Korea!’처럼 좀 부드러운 구호면 어떨까?

요즘 한국 음식이 과도하게 맵고 자극적인 맛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사나워지는 말투를 들으면 안타깝다. 이것도 심심하고 순하게 중용을 유지한다면 몸에 좋고 품위도 있을 텐데… 사적 취향의 영역이겠지만, 그런 것이 합쳐져서 우리 사회를 감싼 공기처럼 공동체적 생활문화의 내용과 외양을 형성한다. 가볍게 보아넘길 일은 아닐 듯싶다. 그러니 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품격있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염원하며 풍속과 관련한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사회발전이나 행복도 주위의 평화적 협력 속에 추구할 일이라고 보고, 나는 다양성이 존중받는 자유롭고 건강한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다고 다른 민족들이 부러워하는 지금, 일사불란한 군사 문화나 선동 구호 같은 건 버릴 때가 되지 않았을까. 깊은 생각 없이 천편일률로 따라 하는 이런 습성에서도 벗어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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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5
뒷모습을 챙기는 마음

 


윤종호
<계간수필>동인, 문협회원

 

자신의 뒷모습은 보기 쉽지 않다. 앞모습이나 옆모습은 거울 앞에 서면 바로 볼 수 있지만, 뒷모습은 몇 개의 거울을 동시에 비춰야 겨우 본다. 그래봐야 앞모습 같은 적극성이나 생동감은 없다. 본인의 의지가 사라진 뒷모습은 파장 뒤의 시장 거리를 닮았다. 그것도 자신의 모습인데, 정열과 혼이 빠진 껍질 같은 것인가.

누군가를 정면에서 보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나 의지를 레이저 광선처럼 발한다. 내로라하는 사람에게선 특히 자신의 능력이나 가진 것을 과시하려는 우쭐댐, 위압감, 또는 위선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적게 가진 이는 그런대로 말투와 몸짓에 결핍감, 초라함, 비굴 감이 느껴질 때도 있어 측은하다.

본인의 의지와 욕망이 강하게 표출되는 앞모습에서는 건강, 교양, 재물, 권세와 관련된 상황이 읽힌다. 하지만 떵떵거리는 사람도 홀로 가는 뒷모습에는 가을바람이 일고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함은 어인 일인가. 세상의 연줄을 끊고 홀로 떠날 때의 처량하고 기죽은 모습이 읽혀서 그럴 것이리라.

아름다워지려는 인간의 욕망에 끝은 없다. 어떤 이들은 앞모습을 꾸미는 데 열중하다가, 인공 개조도 서슴지 않는다. 내면을 채우고 빛내는 지루하고 힘겨운 노력보다, 쉬운 대로 겉을 꾸미고 보자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염려할 겨를이 있겠으며, 설사 그럴 마음이 있다 해도 얼마나 될까.

수다스러운 앞모습은 남을 현혹할 수도 있지만, 관심이 덜 가고 수동적인 뒷모습은 그럴 능력조차 없다. 앞모습은 혼이 없는 인공적인 아름다움일망정 본인의 의도 대로 보일지 모르나, 방치된 뒷모습은 버려진 채로 드러난다. 눈은 앞에만 있어서 뒷모습과 관련한 타인의 눈치도 살필 수 없으며, 잊고 지낼 때가 많다. 남들이 내 뒷모습을 어떻게 보든 정말로 의식할 필요가 없는가?

 쇼핑몰에서 우연히 사람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젊은이들의 균형 잡힌 몸매와 탄력 있게 걷는 뒷모습에는 춤추듯 한 율동 미가 보였고, 명랑한 자태가 피안(彼岸)에 노니는 사람들 같았다. 얄팍한 어깨를 우쭐대며 걷는 이의 뒷모습엔 자기의 성취를 뻐기고 싶은 허영심이 읽혔다.

중년이나 노년의 뒷모습은 대체로 무거운 감정을 일으켰다. 세상의 짐을 혼자 진 듯 한쪽으로 기운 어깨, 세월의 무게처럼 내려앉은 엉덩이, 불편해진 다리를 절뚝이거나 끌 듯이 가는 뒷모습은 보기에 안타까웠다. 오그라진 등의 주인공은 힘겨웠던 역정(歷程)에 얽힌 사연을 밤새워 들려줄 것만 같았다.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사라진다.”는 속담이 있는 걸 보면, 그런 뒷모습을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데 사람에 대한 기억이나 평가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에서, 면전에서보다는 없는 곳에서 이루어질 때가 흔하고, 사후에 옳은 평가가 나오기도 하는 것을 본다. 떠나간 누구를 그리워할 때는 겉으로 드러낸 그의 말이나 지위나 재물보다, 그가 건넨 미소와 따뜻한 속마음이 이미지로 남아서 오래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리 보면, 영혼과 인정이 깃든 교유(交遊)는 잘 잊히지 않는 것 같다.

샤를 드골(1890~1970)의 뒷모습은 실로 단출하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국장(國葬)이나 조문은 사절하였고, 시골 성당에서 동네 지인들만 모여 추도사도 없는 장례미사를 올렸다. 각국에서 온 사절은 ‘파리 노트르담성당’의 국가 추도식에 참석해야 했다.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공적이 크고 사랑받는 영웅은 어릴 때 죽어 성당의 가족묘지에 잠든 딸 옆에 묻혔다. 작은 석판에 이름, 생몰연대, 날짜만 새기게 했다.

한 시대를 주름잡은 위인도 죽으면 곧 잊히고, 거창한 업적도 옛 얘기가 된다. 드골은 이 점을 잘 인식했고, 자기보다 미약한 존재들인 장삼이사에게 말 없는 교훈을 남겼다. 프랑스는 나라를 상징하는 두 곳에 이 위대한 애국자의 이름을 붙여 최고의 영예로써 그를 기린다. 파리 신공항을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으로, 번화가 샹젤리제 거리가 시작되는 개선문 광장은 “샤를 드골 에뚜알 광장”으로 개명했다.

인간은 타인의 입과 눈을 의식한다. 남이 하는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평가 대상이 되는 우리는 자신을 거울에 비춰서 확인하기 쉬운 얼굴과 앞모습을 다듬는 데 꽤 정성을 들인다. 그런데 타인의 눈은 우리의 앞뒤를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훑으며 그로써 그들 마음대로 평가를 한다. 대강의 정보를 파악한 타인은 우리의 속마음까지도 유추하여 성급히 해석한다.

그러니까 앞모습을 상큼하게 꾸민 사람도, 뒷모습이나 떠난 뒤가 너저분하면 매력이 없다. 깊숙한 마음 씀으로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데까지 관심을 둘 수 있다면 성공일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앞 뒤의 자태를 곱게 유지하고 마음 씀의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챙기는 사람이라면 멋을 제대로 안다고 하겠다.

지난 길을 돌아본다. 시작은 늘 힘차고 희망적이었지만, 결과까지 아름다운 경우가 많지 않았음을 확인할 땐 얼굴이 화끈거린다. 앞으로의 길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렇게 살다가 떠난 자리에 향기를 남길 수나 있을까? 상념이 꼬리를 물어 잠들기 어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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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관계의 재정립을 바라며

윤종호

 

한 번 성(盛)하고 풍요로워지면, 그 행복감에 도취해 진취적 기상은 시들고 게을러지는 것이 나라든 개인이든 마찬가지다. 그로써 매너리즘에 젖어 쇠락한 많은 예를 역사가 알려준다. 이런 순환 원리는 인생무상에 눈물 젖게도 하지만, 신진대사에는 도움을 주어 세상이 점점 새롭고 공평해지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인접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협력과 다툼이 이어져 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두 나라의 행. 불행은 상대편에 관련됨이 크다. 이 관계가 순기능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함에도, 속 좁고 자질 부족한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흐트러지고 역기능을 할 때가 많았으니, 개탄스러운 일이다.

일본의 도쿠가와는 1603년 에도(江戶)에 설립한 막부(幕府)의 통치 기반을 굳히기 위해 “임진년에 조선을 침략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는 뜻을 거듭 표하며 화해를 갈구했다. 이에 양국은 ‘서로 속이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성신(誠信)으로 통한다.’라는 뜻의 통신사를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나 왕래시켰다.

그 과정에 조선인 포로들이 많이 돌아왔으며, 고구마 감자 고추 담배 같은 작물도 조선에 전해졌다. 또 조선에 성하던 유학과 선진 문화가 전해져서 외로운 섬나라의 생활상을 윤택하게 했다.

2차 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고난도 잠깐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이데올로기 싸움은 엉뚱하게도 만만한 조선의 국토를 토막 냈고 그 후 5년에 공산군의 남침으로 6.25동란이 터졌으니, 여태껏 민족의 아픔이 이어진다.

이때 미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한 일본은 ‘제조업 강국’으로 우뚝 설 호기를 잡았다, 한국의 불행이 곧 일본 번영의 찬스가 되었음은, 실로 아이러니다.

아베 정부는 2019년 7월, 꽉 막힌 경제의 활로를 뚫을 욕심에 한국전자산업이 일본 부품 업체들을 거느리는 국제 분업체계에 기습적으로 분탕을 쳤다.

그들은 “전자 부품과 장비의 대한(對韓) 수출을 끊으면, 한국은 석 달 안에 일본 경제에 예속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한국은 ‘일본 관광 안 가기’, ‘일제 상품 안 사기’, ‘소재.부품.장비 생산의 자립도 높이기’ 등의 원론적 상식적인 방법으로 대처했다.

일본은 비겁한 수법으로 절체절명의 태클을 걸었지만, 예견 못한 일로 해서 실패했다. 미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이스라엘 등 세계의 기술 강국들이 한국전자산업에 앞다퉈 도움을 주게 될 줄이야! 환란 속에 살고 발전해온 한국의 저력이 이때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액은 격감했으며 한국전자산업의 자립도를 높여준 결과가 되었으니, 일본의 자충수였다. 아베의 심술은 새삼 자강의 중요성을 한국인들에게 깨우쳐주었다.

1997년에도 일본은, 한국에 머물던 단기 투기자본 200억 불을 일거에 빼내 감으로써 IMF 금융위기를 촉발했다. 이번엔 한국전자산업을 겨냥했지만, 그간 한국 경제는 엄청나게 커졌고 대비책이 있어서, 그들의 잔꾀가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일등 제조업’을 뽐내던 일본도 영고성쇠의 원리는 벗어날 수 없나 보다. 패기도 창의력도 유연성도 전 같지 않다. 국가 부채율은 260%나 되어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산업의 분야마다 한국에 추월 당하고 있다.

그들은 도쿄 올림픽을 대비하여 한국의 도움을 요청했다. 5G 장비는 삼성에, 5G 네트워크 기술은 SKT에, 카드 결제 시스템은 현대카드에, 보안관제는 윈스. 이글루 시큐리티에, 티켓 판매 시스템은 인터 파크 등…

주요 인프라 구축을 위해 한국의 선진 기술력에 온통 의존하면서 입으로는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 상종 못할 나라”라고 폄훼하는 일본 지도부의 거짓말과 위선적 태도는 이해하기 조차 어렵다.

‘혼네’(속마음)와 ‘다데마에’(겉 표현)라는 교활한 이중적 어법을 활용하면서, 그것을 품위 있는 문화로 여기는 그들이지만 한국을 언급할 땐 유독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을 쓴다.

지도부가 “한국에 전쟁이 터져야 좋은 기회가 올 텐데…”라고 무례한 발언을 내뱉으면, 그걸 강한 영도력으로 여겨 맹종(盲從)하는 일본 국민의 행태는 조선을 집어삼키던 백 년 전의 모습과 닮았다.

한국전자산업에 분탕을 치던 일본 지도부는 지금, 제 꾀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씩씩거리는 악동의 형국이라 보기에 측은하다. 심술의 결과로 한.일 관계 재정립의 당위성이 분명해졌어도, 그들은 애써 눈감은 채 옛 영광(?)에만 취한 사람들 같다.

‘도장 결제’, ‘팩스 문화’를 극복하지 못해 행정의 디지털화를 못하는 일본, 관습이나 꽉 막힌 사고에 사로잡혀 새로운 국면에서 한 발짝도 나아갈 줄 모르는 일인들을 본다.

음악, 미술, 스포츠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활동이 숙달된 경지에 이르면, 그 자체로 예술적 아름다움을 발한다. 한.일 관계도 이미 천 수백 년에 이르렀으니,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정치 외교 무대에 미학(美學)을 발휘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행.불행이 엮인 이웃 간에 상생의 훈풍을 일으킬 위대한 리더십은 언제쯤 보게 될지? (202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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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아쉬운 한인동포들의 기부문화

 

권용철(로열르페이지 한인부동산 부사장)

 

 우리 한인들의 기부문화는 어디까지 왔을까요? 한국 전쟁이 끝나고 가난 때문에 굶어 죽고 허덕일 때 우리 대한민국은 미국을 비롯해 여러나라에서 많은 원조를 받으며 성장해왔습니다. 그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기부를 하며 살고 있을까요?

 

 우리의 모국 한국의 예를 들어 보면, 미국과 비교해 미국인들은 100불을 벌면 약 2.3불을 기부하지만 한국인들은 0.5불 정도라고 합니다. 그나마 개인기부에 앞장서는 분들은 여유 있는 사회지도층이 아니라 대개 힘들게 살아온 김밥할머니나 떡장수 아주머니들이었다는 점이 더욱 혀를 차게 만드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그렇게 어렵사리 모은 재산을 쾌척한다는 소식을 많이 접하면서도 우리는 미담에 감탄만 하며 수수방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1,500억원 기부 선언은 개인재산의 쾌척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진일보시킨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안 원장의 기부를 그의 정치적 행보와 연관지어 비판하는 사회 일각의 견해를 감안할지라도 기부 풍토의 발전에 어느정도 기여했다는 점에서 그의 기부결단은 높이 살 만하다고 봅니다.

 

 안 원장 외에도 훌륭한 기부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남을 도와 줄 때 찾아오는 보람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부를 숨기며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개중엔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자랑을 하며 기부하는 사람이 아예 안하는 사람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미국의 유명한 기업인 워렌 버핏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열정은 성공의 열쇠이며,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제가 사회로부터 얻은 재산을 다시금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기부운동에 참여하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나눔과 기부 문화는 자원봉사와 함께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시민들의 자발적 행위를 통한 계층간 통합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나눔과 기부 문화를 통해 한 사회 안의 건강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캐나다 한인동포사회는 어떨까요. 이곳 역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단체가 무척 많습니다. 여성회, 한인회, 불우어린이후원회, 맹인후원회, 성인장애인공동체, 아리랑 시니어센터, 노인회, 무궁화홈스, 한인사회봉사회, 치매협회, 장학재단 등등…

 

 이 많은 단체에 기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한 두 단체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한인사회는 외국에 나와 살고 있는 모든 커뮤니티 중에서 모범적인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우리 토론토 동포사회도 굵직한 기부자들이 여럿 계십니다. 예를 들어 50만불을  기증한 신중화 선생을 비롯해 한상훈, 최등영, 정창헌 선생 등 한인사회 기부에 앞장서는 여러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한인동포사회를 전체 타민족과 비교해 볼 때 아직 우리의 기부문화는 걸음마 수준입니다. 그것은 정치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한인 종교단체를 비롯해 여러 동포단체와 개인들이 정부 부처의 도움이  필요할 땐 소속 신도나 직원들을 모두 동원해 이곳 정치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막상 선거가 다가와 도움을 청할 땐 종교단체와 정치는 별개라며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각 개인들 역시 본인이 원하는 것이 얻어지지 않을 땐 원망과 불평을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한 사람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단체나 일반 단체들 역시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헌금이나 모금운동을 열심히들 하는데 그런 도움에 의해서 운영되는 단체라면 다른 단체나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성의와 관심을 보여야 맞는 것 아닐까요?

 

 유태인을 비롯한 여러나라의 동포사회를 볼 때 잘났건 못났건 자기 모국의 사람이 정치에 입문할 때는 개개인은 물론 우선 종교단체에서 나서며 모금은 물론 선거운동을 열심히도 해줍니다. 그러기에 유색인종 이민자들이 정당의 당수와 국방장관을 비롯해 힘있는 여러 부처의 장관들을 하고 있고 그들의 파워는 곧 그들이 속해 있는 동포사회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캐나다 정치인은 캐나다를 위해서 일해야 된다고요? 고상하고 맞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찾고 누려야 할 혜택과 권리의 보호는 역시 현 정치가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특히 캐나다의 정치자금은 기부하는 사람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최고 기부액을 정해 놓고 또 기부한 돈의 거의 대부분을 세금 크레딧으로 돌려주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돈보다 관심과 정성인데 우리 한인동포사회의 장래와 이 나라에 살아가야 할 우리 자식들을 생각한다면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할 한인 2, 3세들의 정치 입문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벌써 2021년도 2월이 되었고, 곧 연방선거 및 내년 주 선거가 다가 오는데 제발 이번에는 우리 2, 3세 한인 정치가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줌으로써 한인동포들의 결집되고 단결된 모습을 캐나다 주류사회에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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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From Toronto toward the World

정태인 토론토총영사 영문 기고문

 

I

 In world history, great powers have something common. They are multi-national and multi-cultural. There are numerous examples: the Roman Empire and the Ottoman Empire in Europe; Chinese dynasties and Mongol Empire in Asia. In 20th century, the former Soviet Union and the United States also fall into the same category.

 Recently, Canada is attracting my attention, because it tries to learn lessons from the rise and fall of the world powers in the past. Not so long ago, Canada started to exist, following the destiny almost same as that of the United States. But unfortunately, since someday it has been on different path from its neighbor. The gap between the two countries became large in many ways. But now Canada is waking up…

 

II

 As well known, Canada started as a bi-national community between French and British in the land of the indigenous people. Canada apologized to the indigenous people for their atrocity in the old days and embraced them. Canada declared itself to be bi-lingual country and also embraced French minority. Later on, it opened the door to the European and Asian immigrants and recognized their culture of origin. The multi-nationalism and multi-culturalism are getting stronger in Canada. Step by step, Canada strengthens the basics to show and prove itself to the world.

 In the near future, Canada will be a country with population of 40 million, endowed with abundant natural resources. While the size of its market is growing accordingly, Canada pursues diversification of cooperation partnership from heavy dependence on its neighbour, supported by the global ethnic network from the multi-national integration. It does not stop there. Canada continues to explore promising potentials to survive and to be competitive.

 The oil and gas from the inland Canada are looking for the exit to the Pacific. The Free Trade Agreement with Korea is not enough. Other partners are on the waiting list. Canada joined the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 In the advent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the development of AI and space industries is also encouraged.

 

III

 To make its own voice in the world, Canada does not hesitate to play its deserved and required role. It has never refused the role as an honourable member state of the NATO together with active participation in the UN peace keeping operations. For the purpose of making contribution to the peaceful settlement of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the Vancouver Foreign Ministers’ Meeting was hosted in 2018. To promote the fair trade and to fight against protectionist movements in the world, it also provided a venue by hosting the Trade Ministers’ Meeting in Ottawa same year. In the area of climate change, Canada is a leading country implementing the Paris Agreement in the world.

 Though Canada is a member state of G7, it is comfortable and friendly to rest of the states in G20, further to other countries in the world. While maintaining the Canadian values, it has been fexible to others. Furthermore, Canada does not show ambition to the world, but it proves that Canada is a country of principle. Even better, Canada is a country facing Pacific as well as Atlantic Ocean under no threat from outside. Thus, it can accommodate all the philosophies and religions of the world. Canada can embrace all the countries with different ideolgies.

IV

 Suddenly, some idea strikes me. Toronto is the heart of Canada, and from there many things can be initiated for change of the world by realizing the above mentioned merits, advantages and potentials. Toronto is strong in economic, political, socio-cultural, and geographical features of Canada. Commercial and mining finances in Canada are centered in Toronto. Lots of investments are guided to the AI and IT industries in Greater Toronto Area. Many think-tanks and educational institutions are concentrated in and nearby Toronto. Many opinion leaders are working there, influencing the provincial and federal politics. Most important is that the GTA accommodates the various ethnic communities from across the world.

 The global ethnic network from Toronto makes many things possible too. Toronto has a potential to be a hub of entertainment industry or another Hollywood in Canada. The hub is possible by absorbing and processing various national stories from rest of the world, to consume the result products in the enlarged domestic market, and to disseminate them to the world through the ethnic network and diversified partnerships. As a byproduct, if redeveloped a little more, Toronto can be a widely known tourist attraction surrounded by its various ethnic communities. Furthermore, supported by upgrade of AI and IT industries, the smart economy may come true, probably leading to construction of a smart city at the waterfront, and making Toronto another mecca of the future to be followed by other countries.

 

V

 Many think-tanks together with opinion leaders in Toronto can guide the open, comfortable and friendly Canada to make friends as many as possible in the world, thus strengthening its global voice. They can also contribute to Canada’s global leadership in peace by suggestion of sending peace delegations to Asian regions in conflict, and in world economy as well by advocating the principle of fair trade. Or they can do that with some peace initiatives in Asia, an example of which may be organizing regional memorial events for the tragedies in the World War II, comparable to the Victory Day commemoration in Europe. There are still many other opportunities to initiate change to create better future of the world from Toro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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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3
한 해를 보내며

임정남 기고

(토론토)

 

 2020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코로나로 두려움과 우려 속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으며, 또한 한국의 정치에 우려와 걱정이 깊었으며, 그러한 속에도 보람과 희망이 가득 했던 해였습니다

우선 코로나로 10여 년을 함께 걷고 커피를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던 ‘아침의 향기’ 그룹 활동을 중단시켜 아쉬움이 컸으며, 10여 년

저녁 근무였던 직장이 새벽 근무로 바뀌고, 3월부터 미용실 폐쇄로 자가 이발, 바깥 출입 대신에 드라마 보는 시간을 채워줬습니다.

 

무궁화가 준 특별한 선물

무궁화를 실내에서 기른 지 3년. 그런데 올해는 아주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1월14일 무궁화 한 송이가 활짝 핀 것입니다. 겨울에 핀 것도 신기하고, 무엇보다 1월14일은 우리가 캐나다에 이민 온 날이라 더욱 감격스러웠습니다.

이것은 기적 같은 일이요. 무궁화가 저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라 생각 들었습니다. 무궁화사랑모임에서는 토론토 여러 공원에 무궁화 동산을 만들었는데 여름이

되면 늘 저는 큰 걱정을 합니다. 그것은 풍뎅이 때문입니다. 한 해는 얼마나 풍뎅이가 많은지 무궁화가 꽃을 피우기 전에 다 갉아먹어 흉하고, 무궁화 동산이 없어질까 가슴을 태웠습니다.

참으로 그때는 눈물 겨웠고, 8일 동안 풍뎅이 잡느라 너무나 혼이 낫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풍뎅이가 없고 튼튼하게 활짝 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제비와의 재회

매년 아파트 지하 차고에서 제비가 집을 짓고 살았는데 작년에 아파트 공사로 들락날락 하던 차고 문이 공사로 한달간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난 제비에게 알려줄 수도 없고 굶어 죽지나 않았을까 가슴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지난 6월4일 제비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난 제비를 보자 뛸 듯이 반가웠습니다.

 

화분 분양

화초가 커지고 많아졌습니다. 겨울이 오면 화초를 어찌하나 걱정하던 차에 런던에 있는 딸이 달라기에 8월24일 차에 가득 싣고 딸네 집에 분가를 시키니 자식 분가시키는 듯 감격스러웠습니다.  

 

4552 일일 방문기록

 2003년 컴맹을 벗어나고자 63세에 컴퓨터를 배우고 시작,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지난 12월3일에는 일일 방문자 수가 4,552명으로 기록을 세웠습니다. 현재 총 방문수는 377만7926. 정말 놀라운 기록으로 감격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현충일 행사

무궁화사랑모임에서는 매년 제임스가든 이상온 무궁화 동산에서 한국전 전사자들을 위한 현충일 추모행사를 열고 있는데, 금년에는 코로나로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우선 행사 허가가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정훈 회장님과 가지치기를 하면서 공원 담당자에게 신고하니 흔쾌히 허가를 내주었고, 거리두기를 지키며 11월10일 11회 현충일 행사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추모동산 새 모습

5년 전 무궁화사랑모임에서는 평화사 경내에 캐나다군 한국전 참전 516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516그루의 무궁화로 150여명의 교민들이 모여 추모 무궁화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돌보지 않아 많은 무궁화가 사라지고 잡초에 가려 죽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금년에는 일부분 평화사에서 풀을 깎아주어 생기가 돌고 많은 무궁화 꽃이 피어난 것을 보니 얼마나 고맙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한 해를 돌이켜 보니 코로나의 두려움 속에서도 활력과 보람, 희망이 넘치는 한해였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깊은 감사의 뜻을 담아 봅니다. 그리고 새해 소망을 빌어봅니다.

 우선 코로나가 종식되어 세상이 정상을 되찾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어두운 터널에서 허덕이는 대한민국이 긴 터널을 지나 밝은 세상을 맞이하기를, 한인회 국세청 감사도 원만히 해결되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제임스가든 이상온 무궁화 동산에는 수천 개의 새 무궁화가 자라고 있는데 새해에는 많은 무궁화를 분양할 계획으로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위령의 벽에 작년 가을 새 무궁화동산을 만들었으나 아쉽게도 많은 무궁화가 죽었는데 새해에는 다시 단장할 계획입니다.

마지막으로 새해는 80세가 되는 의미 있는 해입니다. 그래서 새 홈페이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제목은 ‘영원한 미소’. 지난 80년 세월을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황혼을 위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의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도 희망과 활력에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용기를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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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8
검찰 개혁을 보는 눈

윤종호

(캐나다한인문인협회 회원)

[email protected]

 

한국의 신문, 방송들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 대 윤석열 검찰총장 간의 노골적인 싸움으로 매일 도배된다. 희한하게도 윤 총장이 “조직 어쩌구. ” 하는 말을 읊을 때마다 그의 처신을 보는 다른 부문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나 평범한 국민의 마음속엔 “뭔가 빗나가는구나.”라는 느낌이 일어날 것 같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기대는 그 조직은 말할 필요도 없이 만천하를 무릎 꿇리면서 시시때때로 국민의 머리 위에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휙! 휘-익~~!”하는 칼바람 소리를 일으켜 백성을 주눅들게 했다. 서민들은 뭔가 불만이 있어도 머릴 치켜 들거나 한마디 항변을 할 엄두도 낼 수 없게 하는 그 조직을 말한다.

 ‘그 위대한 조직’의 일원이 된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나듯’ 구질구질한 옛터를 벗어나서 훨훨 날아오르는 짜릿한 맛을 본 이후로는, 순식간에 그 조직의 생리에 젖어들 것이다. 검찰이 스스로 개혁할 리가 없으니 대통령과 장관들이 교대로 그 험한 작업에 투신했다.

70년 넘게 권력의 안방에 똬리 튼 공룡같은 검찰권을 수술하는 추 장관이 욕 먹고 피를 덮어쓰는 것은 당연하다. ‘검찰 개혁’, ‘공수처 발족’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몸 바쳐 나서서 넓은 전쟁판을 뛰어다니며 분투하는 추 장관을 보는 눈도 각자의 입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관전평이 큰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법조계 내에서도 평하는 온도가 다르다. 그렇게 한 분파적인 생각으로 보고 평하는 주장은 그쪽 편의 마음을 사기엔 충분하나 반대편 쪽의 생각을 지닌 국민의 마음에는 전혀 호소력이 없을 것이다.

한국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적으로 지녀,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누리는 집단이다. 그런 원인과 이유는 꽤 길다. 독립지사들을 추달하던 왜정시대, 좌우 대립으로 험난했던 해방 직후, 6.25 전쟁 후의 반공 이데올로기, 군사정부 등이 흔들리는 사회를 강권으로 제압하던 과정에 커지고 굳혀진 국가 공권력의 행사 방식이요, 독재자의 손 역할을 해오던 조직이다.

 민주화 과정에 많은 비민주적 조직이 개선 또는 변화했지만 그대로 남은 유일한 숙제가 ‘검찰개혁’이다. 문재인 정부는 선거 때 그 점을 우선적인 공약으로 내걸었고, 지금 그 일을 하는 중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섣부르게 추진하다가 보수 언론과 검사들의 조직적 반발로 실패하고, 자신의 명을 단축한 사건은 교훈이 되고 있다.

 공직자가 누구나 국민에 봉사하고 국리민복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자기에게 쥐어진 권한이 클수록 원칙과 신념은 흐려지고 권력 행사 그 자체에 탐닉함으로써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게 하고, 불의의 재물을 탐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된다.

 검사가 형사 피의자에게 성 상납을 받고, 그랜저 승용차를 받고, 사업하는 친구로부터 백억 원 상당의 주식을 선물(?)로 받은 사건이 천하에 드러나도, “그것은 뇌물이 아니라 아름다운 우정(?)의 징표”로 넘기는 검찰의 행태를 보는 국민은 허탈해진다.

 평검사 일부가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어 “추 장관의 횡포” 운운함은 순수한 마음으로 읽히지 않는다. ‘선배 검사들이야 좋은 시절을 만끽한 재미라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이게 뭔가? 열심히 공부하여 검사직을 누리려 하는 참에 ‘공수처 발족’이니, ‘검찰개혁’이니 하면서 가장 비민주적 관행을 깨트리고 가장 민주적인 공무원 생활을 해야 할 판이라 섭섭하고 야속하기 한량없다.”라고 외치는 소리쯤으로 들린다.

 평검사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진정 헌법과 법률이 가리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던가? 그대들이 잘했다면 왜 ‘검찰 공화국’이란 소리가 나오며, 왜 우병우, 김기춘이 감옥을 들락거리는가? 그대들의 하늘 같은 상전이던 박근혜나 이명박이 왜 감옥 생활을 하는가? 2016년 10월부터 눈비 나리는 영하 10도의 추위를 무릅쓰고 2017년 2월까지 주말마다 백만 명씩 평화적인 시위를 펼치던 촛불 혁명의 함성을 잊었는가?

 쫓겨났거나 영어의 몸이 된 권력자들이 나쁜 짓을 할 때는 대부분 검사가 손발의 역할을 했음은 국민이 안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에 구속되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에 국회의 탄핵 결의와 헌법재판소 탄핵 재판을 거쳐 쫓겨나고 구속되었다. 그런 정변 후에 검사들 중에 “내가 큰 잘못을 했다. 죄송하다.”거나, “나는 검사로서 올바른 공직자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니, 이제 검사직에서 물러납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양심 고백하는 검사를 본 기억이 없다.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남북통일”을 되뇌며 통일을 입술에 올릴수록 통일의 가능성은 자꾸 멀어지는 느낌이다. 그런 역설처럼 수신(修身)에 낙제점을 받을 검찰총장이 “조직” “조직”하고 검찰 조직을 입에 올리며 전국을 순시하는 빈도가 높을수록 그는 조직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지 모른다.

 깡패 조직도 개인의 사조직도 아닌, ‘검찰’이란 지극히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 공조직을 이끄는 사람이 스스로 편향적인 자세로 바람을 잡는다면 그는 점점 수렁으로 빠져든다. 선거로 뽑혀서 그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닌 사람이, 야당이 추켜주고 보수 언론이 부채질하는 바람에 본래의 길을 벗어나서 본인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국가와 국민은 검찰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조속히 검찰개혁이 이루어져서 민주주의에 걸맞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검찰’로 새로 태어나기를 빈다.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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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6
유튜브 강좌를 시작합니다-한인 시니어분들의 많은 참여를


이민
(전 MBC 사진기자)

 

 저의 친한 벗, 마인즈 프러덕션의 황현수 씨와 부동산캐나다 이용우 사장과 함께 토바구(‘토론토 이바구’)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토론토에서 활동하시는 화제의 인물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첫 편을 제작한 후 코로나가 창궐해 시작과 동시에 휴면에 들어갔습니다. 한두 달이면 끝나겠지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활동을 재개할 때까지 ‘토바구 유튜브 강좌’를 해볼까 합니다.

 

 몇 달 전, 토론토에서 활동하시는 유튜버들의 모임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창립행사도 성황리에 가진 것으로 들었습니다. 같은 유튜버로서 축하드릴 일입니다. 그런데 그 모임을 알고 조금 놀랐던 점이 세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유튜브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 두번 째는 회원분들 중에 연배가 되시는 분들이 꽤 많다는 사실, 세번 째는, 모임에 참석하시는 몇 분을 만나뵙고 안 사실이지만, 관심만큼 유튜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마 토론토에 사시는 시니어분들 중에는 모임에 참석하지 않지만 유튜브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이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만든 비디오를 많이 보기도 하고 본인 것도 많이 올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셀폰 하나로 찍고 편집하고 올리는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10년 넘게 유튜버로 활동하며 백여개가 넘는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그중 방문자수 200~300을 넘는 비디오는 극히 일부입니다. 그러니까 완전 허당인 유튜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튜브 강좌를 해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국과 캐나다에서 방송국 생활을 20년 넘게 했기 때문에 비디오 제작에 관해선 ABC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심은 많지만 지식이 부족한 시니어분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 지식이 모든 계층에게 도움이 될만큼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니어 분들의 유튜브 입문을 안내시켜드릴 만큼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유튜버 활동을 하고 계시는 몇몇 분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후 느낀 점입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같이 하고 싶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튜브 구조와 운영

-비디오 잘 찍는 법

-비디오 편집(openshot 사용 예정)

-비디오에 필요한 컴퓨터 그래픽 두개(gimp와 inkscape),

-음성녹음 및 편집(audacity) 등

 

 제가 시니어분들에게 유튜브를 권하고 싶은 이유는 첫째,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습니다. 둘째, 요모 조모 머리쓰며 할일이 많아 두뇌운동이 됩니다. 셋째, 좋은 비디오를 위해 많이 움직이게 됩니다. 넷째, 여러분의 삶이 기록으로 남습니다.

 

 그외 좋은 점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수익창출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우고 싶은데 마땅히 배울 곳이 없는 시니어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램으로 시작합니다. 

 

 저도 토론토에 거주하는 시니어이기 때문에 여러분과 의견을 나누며 이루어지는 강좌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강좌는 매주 한두 개씩 <부동산캐나다> 웹사이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카톡아이디 hifi8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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