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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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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유-망대건축과 전쟁준비 비유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 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르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테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5-33)

 

 

예수께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수많은 무리가 뒤따랐다. 그런데 그들 전부가 예수님을 인류를 죄에서 건지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현실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그를 끈덕지게 따르는 무리를 향해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요 6:26) 하신 사실로부터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둘러쌓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주님을 이스라엘을 로마의 속박에서 구하러 온 민족 해방자로 믿고, 그가 집권하면 한 자리를 하려는 야망을 품은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슬프게도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가운데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요한과 야고보였다. 


예수님은 이 같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들을 말씀해 주셨다. 그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는 첫째 조건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부모와 처자와 형제자매 그리고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 하신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으로서 듣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말씀이 아닐 수 없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전부였듯이 부모와 형제와 처자는 우리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기에 그들을 미워하라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 뿐 아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과 형제를 네 몸 같이 사랑하라.”하신 예수님 자신의 말씀과도 상반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것인데, 목숨까지도 미워하라니 이 또한 우리들의 논리와 이성으로 받아드리기 힘들다. 하지만 여기서 사용된 “미워하라”(Hate)는 단어가 상대를 경멸하고 증오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것보다 저것을 “덜 사랑하라”는 의미임을 안다면 모든 의아심이 사라진다. 


그의 제자가 되려면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우리가 정성들여 보살피며, 보호하고, 사랑해야 할 부모와 형제까지를 멀리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그들을 향한 사람보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더 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어야 그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도 실제로 주님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를 진정으로 섬기려면 목숨까지도 불사하고 주님께 충성하며, 주님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요약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어떤 사람이나 값진 것은 물론 자기 자신을 위하고 아끼는 마음보다 더 진실하고 강해야만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충성스런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시다.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 또한 듣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며 우리가 진 슬프고 괴로운 인생의 짐들을 다 맡아주시겠다 하신 예수께서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힘든 십자가를 져야만 그와 함께 할 수 있다고 하시니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삶의 최고 우선순위로 삼는 것이 그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조건이라면 그를 위해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 영광과 권력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말씀이 쉽게 받아질 리 없었다. 그러기에 그의 말씀을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들려주신 비유가 망대건축과 전쟁준비에 관한 것이었다. 


그 당시 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 소유의 농장이나 포도원에 망대를 세우곤 했다. 거둬드리는 곡식과 과일을 침입자들에게 도난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망대가 있는 농장이나 포도원은 그 가치가 망대 없는 것들보다 높았다. 


뿐만 아니라 망대를 세우면 인근 주민들의 칭송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세워진 망대는 그 지역 전체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농부들은 가능하면 망대를 세우기 원했는데, 간혹 무턱대고 공사를 시작했다 자금이 부족하여 중도에 그만두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농장이나 포도원은 가치가 떨어짐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서 무능하다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려주신 까닭은 자신과 그 지방을 위해서도 유익한 일이지만 망대의 높이와 그것을 세우는데 필요한 공사비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자기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다. 


계속하여 들려주신 전쟁에 임하는 임금의 비유도 내용은 다르지만 취지는 같은 것이었다. 적국이 국경을 범한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어느 나라 임금이든지 국토를 지킬 태세를 갖추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자국과 상대국의 국방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침략군과 싸울 것인가 협상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임금의 군사는 만 명이었고, 상대의 병사 수는 이만 이었다. 따라서 적군의 절반밖에 안 되는 병력으로 싸우기 보다는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현명한 결단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듣는 이들이 깨닫기를 원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첫 번째 비유에서는 망대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소요경비를 산출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일러주셨고, 그 다음에는 자국의 병력으로 적을 격퇴시킬 수 있는가를 면밀히 검토한 후에 전쟁과 화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통치자의 올바른 자세임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의 제자가 되려면 어떤 결단을 해야 하나를 생각할 수 있도록 예수님은 두 비유를 들려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원하지 않아도 해야 할 것들이 있고, 하고 싶지만 해서는 안 될 일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그들을 감당할 각오를 한 후 예수님과 세상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이다.


두 비유를 마치신 후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그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라 말씀하신 조건들은 참으로 받아드리기 힘든 것들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세상 모든 족속들을 나의 제자로 삼으라.” 엄숙한 명령을 내리셨다. 할 수 없는 일을 하라는 부당한 말씀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며 예수님이 망대건축과 전쟁준비 비유를 들려주신 것은 그의 제자 되기를 원하는 이들을 돌아서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반대로 그에게 충성하고 헌신하며 그들의 인생을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그의 제자로 만들라는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신 것이다. 


선택해야 한다면 부모, 형제, 처자에 앞서 예수님을 택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모든 소유를 버리고 주님 가신 길을 걸어야만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의 문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은 이 두 비유를 들려주신 것이다. 


순간적인 충동이나 감동만으로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에베소 교회가 그러했듯이 첫사랑을 잊어버리게 되고(계 2:3), 예수께서 토해내고 싶다 하신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미지근하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계 3:15-16). 


예수님은 세상을 동경하는 마음과 하늘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을 반반씩 가진 제자들을 원하지도 않으신다. 그런 사람들은 돌밭에 뿌려진 씨처럼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드리지만 그 말씀으로 인해 고통이나 핍박이 오면 넘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 두 개로 나누어진다. 우리들 앞에는 숱한 목표들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바에 초점을 맞추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어느 길을 걸으며, 무엇을 택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시켜 드리기를 원한다면 하늘나라로 가는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 주의 뒤를 따르려면 우리의 인생 전부를 예수님께 바쳐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단을 할 시기는 “지금”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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