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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호 칼럼

    김종호
    부동산캐나다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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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Victoria Square

 

 아침에 눈을 뜨니 온 천지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요즘 나는 오전 한때를 내 서재에 앉아 맑은 시간을 보내면서 뒷뜰의 설원을 보며 자연이 만들어 내는 선물에 고마워 하고 있다. 창밖에 내린 눈을 보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가로수와 나뭇가지마다 설화가 피어 볼만하다. 간간이 눈이 와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한바탕 법석을 떨어야 겨울다운데 이번 겨울엔 눈다운 눈이 몇번도 내리지 않아 내심 아쉽고 초조하였다. 밤새 살짝 다녀가서인지 내내 기다렸던 손님치고는 선물이 인색하였다.


 1월에 들어와서부터 기온이 떨어지고 매서운 바람이 불더니 들과 산에는 눈이 폭설로 변해 내려 앉았다. 나무에 앉은 잔설이 들판을 쓸듯이 불어오는 힘찬 바람에 날린다. 깃털처럼 가볍게 날리는 눈에 햇살이 내려꽂혀 보석처럼 반짝인다. 들판 가득 보석이 알알이 흩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이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음에 전율을 느낀다.


 겨울이 오면 집 뒷뜰에 바람기 없이 소복소복 내린 눈이 설원을 이루고, 겨울잠에 깊이 빠져 있는 것 같은 빈 가지만 남은 나무에 쌓여 황홀한 눈꽃을 피운다. 눈이 아니라도 안개가 피어오른 자리에는 차가운 기온 때문에 가지마다 그대로 얼어붙어 환상적인 상고대를 피운다. 이렇게 눈과 얼음이 만들어내는 이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눈이 내리면 어디에나 정겨워진다. 추수를 끝낸 넓은 농장, 낙엽이 자부룩이 쌓인 산, 푸른 소나무, 집, 동네공원, 산책길에도 눈이 쌓이면 그것은 더없이 아늑하고 평화롭게 다가 오곤 한다.


 우리가 이곳에 정착했을 때는 마을 주위에 비옥한 농장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시골이었다. 한해 두해 건축붐이 일어나 집들이 들어서고 학교가 들어서고 하더니 지금은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들이 처음 왔을 때는 앞뒤가 모두 숲과 넓은 농장들이어서 봄, 여름, 가을에는 사슴, 늑대 같은 야생동물들을 쉽게 볼 수도 있었고 겨울이면 설원을 이루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처럼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면서 인간의 영역이 말할 수 없이 넓어져 가는 세상에서는 야생동물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지금은 불행히도 그 넓은 설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자연은 스스로를 조절할 뿐 파괴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문명의 인간이 자연을 허물고 더럽힌다. 나는 아직 시골같은 우리동네 Victoria Square 를 사랑한다. 이곳은 1805년경부터 Pennsylvania에서 이주한 메노나이트들로부터 시작된 몇 집 안 되는 농촌 마을이었다. 이들은 이곳에다 집을 짓고 우물을 파고 가축용 헛간도 만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동네는 시골처럼 조용하다. 언덕의 숲속에서는 여우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 왔고, 안개낀 봄, 가을 아침 소리 없이 들판을 가로지르는 사슴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야생화들이 계절 따라 길손들의 눈과 마음을 무척이나 즐겁게 해주는 곳이다.


 자연은 그 나름의 뚜렷한 질서가 있다. 봄이오면 거리마다 꽃향기로 덮히고 여름이면 밀밭과 옥수수밭의 푸른 잎새들이 은은히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파도를 이룬다. 가을이면 거리마다 가로수의 단풍이 잔치를 벌이고 겨울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이 또한 일품이다. 나는 이 시골에 살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절절히 느끼고 살고 있다. 그것을 통하여 조금은 겸손해지고 너그러워졌다. 그럴수록 시골이 더 좋아졌고 그 품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계절만 하더라도 처음 맞이할 때가 가장 신선하다. 초봄과 초여름과 초가을, 그리고 초겨울은 신선한 계절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한여름이나 한겨울, 봄과 가을이 무르녹게 되면 처음 그 산듯했던 느낌과 분위기는 소멸되고 만다. 


오늘 시 당국에서 보내준 소식에 의하면 또 뒷편의 농장에 새로운 동네가 들어선다는 소식이다. 이렇게 해마다 숲과 농장이 줄어든다면 야생동물들의 설 땅은 더욱 더 줄어들 뿐 아니라 우리들이 즐겨왔던 자연의 아름다움도 점점 소멸될 것이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세계 인구가 74억이 넘었다니 인구팽창에 의해 지구가 겪고 있는 슬픈 사연의 하나다. 이 세계에는 인간들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식물과 동물들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나온 날에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았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가슴을 가득 채우는 기쁨을 맛보겠지만 그것은 흘러간 과거나 기약 없는 미래의 일이 아닌가.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이 가장 소중한 날이며, 오늘을 놓치면 영원히 사라져가는 물거품처럼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다. 기꺼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리라. 더구나 오늘은 내 남은 날 중에서 가장 젊어 기쁜 날이 아닌가.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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