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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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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사도들-사도 베드로(2)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죽음을 정복하고 승리의 부활을 하신 예수님이 제일 먼저 찾은 제자는 베드로였다(고전 15:4-5). 승천하시기 전에도 예수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또 다시 베드로를 만나 함께 아침 식사를 하신 후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신다.


“그렇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은 아십니다.”라 대답한다. 예수님은 똑같은 질문을 한 번 더 하신다. 세 번째로 예수께서 같은 것을 물으시자 베드로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 답한다. 예수님은 이미 두 번이나 말씀하신 대로 “내 양을 먹이라.” 명하신다. 


예수께서 이처럼 세 번이나 베드로가 그를 사랑하는 것을 확인하시고, 세 번이나 그의 양을 치라고 당부하신 것은 그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수석 제자로 다시 인정함과 동시에 그에게 복음전선의 총사령관 직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광되고 중대한 임무를 부여 받은 베드로는 즉시로 십자군을 이끌고 복음전선으로 향한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끝까지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 명령을 주셨으며(마 28:19-20; 막 16:15),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천국의 일을 말씀하시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분부하셨다(행 1:3-4).


이 말씀에 순종하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과 주님을 사랑하는 여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그들은 자기들도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한 것이다. 그때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던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그들이 이상한 말로 떠들기 시작하자 이상하게 여기기도 하고, 술에 취해 그런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는 것은 술을 마셔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요엘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으로 시작된 베드로의 설교는 사도에 의해 행해진 최초의 설교였다. 


이 설교는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한 신앙고백처럼 목숨을 건 담대한 설교이기도 했다. 불과 두 달 전에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기에 설교 도중 군중들의 분노가 폭발하면 돌에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해진 베드로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음을 소리높이 외쳤다.  


동시에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기에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여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모든 사도들은 그 일의 살아있는 증인들이라고 담대하게 증언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신 것을 확실히 아시기 바랍니다.”라며 베드로가 설교를 끝내자 모든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그렇다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 사도들에게 묻는다. 


“여러분, 모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가 베드로의 답변이었다. 정식으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베드로가 성령의 힘으로 감화되어 행한 이 설교를 듣고 그 날 회개하고 세례 받아 구원에 이른 성도의 수는 삼천이나 되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형성된 초대교회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게 되는데, 초대교회 부흥의 중요한 원동력은 베드로가 베푼 놀라운 신유의 은사였다.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는 베드로의 외침에 벌떡 일어나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 


때문에 산헤드린 공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사도들의 동태를 주시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계속되는 말씀 증거와 기도로 숱한 불치의 병자들이 낳게 되자 성도의 수는 날로 늘어나게 된다. 


이때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일어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재산을 제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쓰기 시작하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들의 땅 판 돈을 사도들에게 바쳤다. 


이때 베드로가 일부만을 가져와서 전부를 가져온 것처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라고 꾸짖자 아나니아가 베드로 앞에서 쓰러져 죽는다(행 5:1-4). 3시간 쯤 후에 남편에게 생긴 일을 모르고 베드로 앞에 선 삽비라가 그들은 땅 판 돈 전부를 바쳤다고 말하는 순간 그녀도 쓰러져 죽고 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의 권능을 두려워하게 되어 병자들을 업고 길거리로 나와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산헤드린 공회가 사도들을 불러서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하느냐 묻자 베드로는 주저하지 않고 “너희들이 죽였으나 하나님이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한다.”(행 4:9-12)고 당당하게 말한다. 


할 말을 잃은 공회원들은 앞으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때 베드로가 한 말은 그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한다. “우리는 너희들의 말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를 것이다.”(행 4:19)가 베드로가 그들에게 들려준 말이었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초대교회는 날로 부흥되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중 하나가 외국 태생의 유대인들과 본토 출신 유대인들 간에 구제문제로 의견 대립이 생긴 것이 그것이었다(행 6:1). 


이 같은 갈등이 표면화하자 사도들은 즉시 성도들을 모으고 그들은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할 테니 성령과 지혜로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하여 구제사업을 비롯한 행정문제를 담당하게 하자고 제안한다. 그 결과 스데반을 위시한 일곱 성도가 초대교회의 집사로 선출된 것이다. 


이 일을 주도한 사도가 베드로였으며, 그는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 유다를 대신할 맛디아를 사도로 임명하는 일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행 1:15-26).


적지 않은 이들이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위한 사도였고,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는 바울이라 말하지만 베드로는 초대교회가 형성되는데 주역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바울보다 먼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이기도 하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주둔한 로마군 백부장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행 10:1-48).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지도자로서 한 가장 중요한 일은 주후 49년 예루살렘 교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할례와 율법준수는 구원의 필수조건이 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초대교회의 구원의 원칙을 확립한 것이다(행 15:1-35).


이방선교의 큰 장애요소였던 세례와 율법준수의 문제를 해결한 후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떠나 소아시아 여러 나라 지역을 다니며 선교에 힘썼다(벧전 1:1). 그는 고린도와 안디옥에 가서도 선교하며 성도들을 돌보았으며, 안디옥에는 7년이나 머물렀다고 한다(C. Bernard Ruffin, "The Twelve" P. 51)


그 외에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선교하는 베드로 옆에는 언제나 그의 아내 퍼페투어가 함께 했다. 그녀는 남편을 보조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선교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가 마지막으로 간 곳은 로마였다. 


그가 언제 로마에 갔으며, 거기서 바울을 만난 지는 알 길이 없다. 베드로가 로마에 머물 때에 황제는 네로였는데, 그는 기독교인들을 극도로 증오했으며, 따라서 기독교를 가혹하게 탄압했다. 


로마에서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서신에서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 차리고 근신하며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벧전 4:7-8) 다가올 환난과 시련을 이겨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은 그가 네로의 광적인 기독교 박해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라 믿어진다.


베드로가 네로에게 죽임을 당하면 초대교회가 위험에 처할 것을 염려한 성도들의 간곡한 권유로 로마를 빠져나가던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고 오시는 예수님을 만난다. 


어디 가시냐고 베드로가 묻자 주께서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려 로마로 간다고 하시자 즉시 발길을 돌려 로마로 돌아간다. 얼마 후 베드로 부부는 체포되어 9개월 간 옥에 갇혔다. 주후 67년 6월 29일에 십자가형에 처해 졌다고 초대교회 사가인 유세비우스가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는 그보다 먼저 십자가에 달리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님을 기억 하세요.”라 말한 후 그 자신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초대교회 교부 오르겐이 전해준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 사도 베드로의 인생을 보며 우리들은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지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의 능력에 의지하면 승리하는 인생을 살수 있다는 귀중한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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