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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오래전부터 ‘공적인 거리’로 살아오고 있다. 가는 곳마다 이만희 같은 인사(人邪)들이 김치찌개처럼 바글바글 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오늘 두 여자에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처럼 느릿느릿 끌려 나갔다. 우연한 기회에 강제로 수다커피를 얻어 마신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미라mirra인지 미아迷兒인지? 이름이 확진이 안 되는 여자가 자꾸 ‘친밀한 거리*’를 가지려고 했다. 나는 릴리lily인지 릴리리♪인지 맥진이 잘 안 되는 여자의 눈치를 보며 ‘개인적인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렇게 팽팽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허가네*까지 갔다.

 

홀 안으로 들어서자 의자란 의자가 모두 테이블 위에서 원산폭격으로 앉아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더그 포드 온 주 총리가 선포한 ‘COVID19 비상사태’를 양성으로 확진할 수 있었다. 

 

역사에 없던 엄중한 사태의 음식을 맛없게 테이크아웃 해서 나오자 알록달록한 마스크들이 거리마다 바이러스처럼 활개를 치며 돌아다녔다. 

 

내 사전에는 없던 분위기가 스멀스멀 온몸으로 전염돼왔다. 그래서 긴급예산으로 비축해둔 마스크를 가방 깊은 곳에서 꺼냈다. 

 

내가 마스크 한 장으로 나의 나약함을 가려야할 줄은 몰랐다. 포토라인에 서서 개폼잡고 카메라 후레쉬 세례를 받으며 연기하던 사람들처럼, 내가 공포의 세례를 받아야할 줄도 몰랐다. 

 

그래서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할 것도 없는 내가, 성실하게 조사에 임할 것도 없는 내가, 코로나19한테는 송구스럽게 성실하게 마스크를,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2020.3.19) 

 

 

* 공적인 거리: 관객(사람)과 멀리 떨어져있는 거리 * 친밀한 거리: 가족이나 연인의 거리 *개인적 거리: 타인에게 침범 받고 싶지 않은 물리적 공간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 * 허가네: 노스욕의 한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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