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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남의 기획 연재

    국제펜클럽본부회원, 한국번역문학가협회 회원 / <눈물의 아들 어거스틴>, <윤치호 영문일기> 번역 외에 <좌옹 윤치호 평전> 2018년에 편저 간행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23인 클럽>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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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러시아에 가다(50)

죠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 윤경남 옮김

 

 

 

“작은 초는 신부님에게서 탈출하게 된 사건을 위해서라고요!” 


 빼뽀네가 소리치더니 작별 인사도 없이 나가 버렸다.


돈 까밀로는 교회로 건너갔다. 교회에는 그 큰 양초를 꽂을 만큼 큰 촛대가 없었지만, 큰 구리 꽃병에 큰 초를 끼워 맞춰 넣을 수 있었다. 두 개의 양초를 제단 위에 올려 놓고 불을 켠 다음에 돈 까밀로는 말했다.


“주님, 빼뽀네는 당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내가 잘못 안 것이 아니라면, 너도 잊지 않고 있단다.”


주교는 돈 까밀로의 보고서를 다 읽고 나자 그를 불러들였다.


 “자,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 봐요.” 하고 주교는 말했다.


돈 까밀로는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주교는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군! 타반 동무와 지뱃티 동무가 전향했고, 나폴리 이발사가 자유를 얻었고, 폴란드의 노부인과 교우 관계를 맺었고, 그 노부인의 따님이 이태리 병사와 결혼하자 그들의 여섯 자녀에게 세례를 준 일, 살인 누명을 쓴 병사의 고해성사와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일, 잊혀진 공동묘지에 묻힌 무명 용사들을 위해 미사를 드린 일, 그리고 죽음을 눈 앞에 둔 위험한 사태 속에서도 열여덟 사람에게 사죄경을 읽어 주었다니! 게다가 당신은 당의 세포 지도자가 되었었고, 그리스도를 적으로 여기는 나라에서의 엿새 동안에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단 말이지! 난 정말 그 일을 믿을 수가 없소!”


“주교님, 제가 드린 말씀 외에도 사진과 편지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증인으로 한 상원의원이 계십니다.” 


“상원의원이라고?”


노주교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나왔다. 


“그러면 그 피해를 보상할 길이 없군.”


돈 까밀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돈 까밀로 신부,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당신을 ‘추기경 예하’의 반열에 올려야 한다는 걸 모르시오?”


“주여, 저는 적합하지 않나이다.”


돈 까밀로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라틴어로 중얼거렸다. 주교는 고개를 저었다.


“몇 년 전에 나도 그와 똑같은 말을 해봤소. 그러나 아무도 주의 깊게 들어주지 않았네. 하느님이 그대와 함께 하시기를!” 


그 후 한달 동안 러시아에서의 모험 여행 건은 돈 까밀로의 마음에서 지워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가 교회 밖으로 걸어 나오다가 스미르쪼가 사제관 벽에 포스터를 붙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스미르쪼가 사다리에서 내려오다가 놀라 넘어질 뻔했을 때 그에게 물었다.


“동무, 만일 누군가가 아직 풀이 채 마르지도 않은 저 포스터를 찢어서, 자네 목구멍 속에 쑤셔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신부님,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런 짓은 안 할 겁니다.” 스미르쪼가 대답했다.


“지금 그러한 사람이 살아서 자네 앞에 여기 이렇게 서 있다고 상상해 보게!”


그는 스미르쪼의 닳아빠진 낡은 윗저고리의 옷깃을 꽉 잡고 놔주지 않을 기세를 보였다.


“좋아요. 그렇다면 상항이 좀 달라지겠는데요.”


돈 까밀로는 어조를 바꾸어 말을 계속했다.


“이것 보게. 내가 자네들이 사는 ‘인민의 궁전’에다 포스터 붙이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말일세. 무엇 때문에 자네는 이런 정치적으로 어리석은 짓을 내게 하는가?”


“이건 정치적인 게 아닙니다.” 스미르쪼가 말했다.


“문화 행사를 알리는 겁니다.”


돈 까밀로는 스미르쪼의 윗저고리를 움켜쥔 채, 그 포스터를 보았다. 상원의원 쥬세빼 뽀따지가 최근에 다녀온 소련 여행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날짜에 연설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질의응답도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자네 말이 맞는군.”


돈 까밀로는 스미르쪼의 윗저고리를 놓아주며 말했다.


“분명히 문화행사를 알리는 것이군. 어디서 표를 구할 수 있겠나?” 


“누구든지 환영하고, 입장도 무료입니다.”


스미르쪼가 구겨진 양복을 펴면서 말했다. “질문을 막는 일도 없습니다.”


“내가 질문해도 그럴까?” 


“주교님이 하셔도 상관없겠지요.”


스미르쪼가 조심스럽게 몸을 사리면서 말했다. “우리는 특별히 성직자들을 교육시키고 싶거든요.”


그가 돈 까밀로에게서 너무 멀리 물러섰기 때문에, 돈 까밀로는 그에게 다시 손을 뻗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는 사제관으로 달려가 펜을 들었다. 반 시간쯤 지나 한 소년이 빼뽀네에게 편지 한 통을 건네주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친애하는 상원의원 동무에게,


나는 내일 저녁모임 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질문을 미리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고통을 자초하고 있습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타롯치 동무로부터.’ 

 

 

그날 오후 늦게, 빼뽀네는 로마로부터 갑자기 호출 받았기 때문에, 그 다음날 아침 스미르쪼는 그 광고문에 짧은 추신을 달게 되었다.


‘연사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모임을 무기한 연기 합니다.’


스미르쪼가 사다리에서 기어내려 올 때, 그는 돈 까밀로와 다시 한 번 마주쳤다.


“이런 고약한 일이!” 신부는 말했다.


“성직자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암흑같이 어두운 무지의 시대 속에서 살아야 합니까?”


스미르쪼는 재빨리 사다리를 집어 들고 안전한 위치로 물러섰다. “신부님, 너무 걱정 마세요. 우리가 그분들의 눈이 떠지게 할 테니까요!”


그 이후로 집회 날짜는 다시 알려지지 않았다. 그 광고문은 빗줄기에 씻겨 내려갔고, 그 일에 대해선 더 말이 없었다. 여섯 달이 지나갔다. 그 후로 돈 까밀로는 러시아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그 일이 모두 한바탕의 꿈이 아닌가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가 서류를 정리하느라고 펼쳐놓고 있을 때, 누군가 대문에 와있다고 밭일하던 일꾼이 그에게 말해 주었다. 놀랍게도 돈 까밀로는 그 일꾼의 어깨 너머로, 스카못지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여기를 오셨소?” 그가 물었다.


“기차라고 하는 그런 게 있더군요.” 스카못지아가 말했다.


“그리고 뽀따지 동무에게 빌었지요. 당신 주소 좀 가르쳐 달라고요.”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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