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
ON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서 만난 한국인

 

Strasbourg 국제공항에서 Downtown 호텔까지는 택시로 약 50유로(Euro)를 지불해야 되는 꽤 먼 거리다. 나는 3일 동안 머물러야 할 Hilton Strasbourg Hotel에서 40-50대 초로 보이는 한국인 젊은 부부를 우연히 만났다. 먼저 캐나다 Toronto에 살고있는 동포라고 소개했고 그들은 유럽 여행차 서울에서 Strasbourg에 막 도착했다고 한다. Strasbourg를 여행한 후 체코공화국(Czech Republic)의 프라하(Prague)로 갈 것이라고 여행지까지 이야기한다.


 잠시 후 그 부부는 캐나다에 이민간 한국동포들은 무척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묻는다. 그 젊은 부부는 미국과 캐나다에 이민 간 한국동포들의 생활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듯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언제 캐나다에 이민 갔느냐? 묻는다. 나는 1964년 10월 4일 서독 루르탄관에 광부로 갔으며 1966년 캐나다에 이민갔다고 했다. 젊은 부부는 독일 루르탄광 파견 광부나 간호사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듯이 보였다. 


 젊은 부부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든 나는 계속하여 캐나다에 살고있는 우리 동포들은 새로 정착한 나라에서 모든 것들이 생소하겠지만 많은 소수민족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민이란 특수한 환경 속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힘들고 외롭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대부분 한국동포들은 캐나다 이민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리고 세계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삶의 질을 비교해 보아도 캐나다처럼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캐나다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은 오히려 특별한 선택과 축복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설명을 그들은 외면한 듯 미국이나 캐나다 이민생활이 너무 힘들고 고생이 되기 때문에 이제는 극소수의 한국인들만이 이민을 가며 오히려 캐나다와 미국에서 많은 동포들이 한국으로 역이민을 한다고 말했다. 어떤 선진국도 부럽지 않을 만큼 매년 천만 명이 넘는 한국 관광인들이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으며 이제는 어렵고 힘든 캐나다와 미국 이민생활은 더 이상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먼 미래를 위해 더 많은 한국인들이 캐나다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이민을 가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젊은 부부는 이민에 대하여 아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서 또는 이민으로 한국을 떠나는 동포들은 진실로 한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들이라고 했다. 이민생활의 어렵고 힘든 역경을 모두 극복하면서 미국과 캐나다에서 열심히 살고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젊은 부부의 언어나 행동은 마치 퍽 여유있는 한국인이란 사실을 나에게 인식시켜 주고 싶은 심리가 가슴에 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대화 속에서 나와 아내에게 많은 회의감이 생긴 듯이 보였다. 더욱이 어렵고 가난한 시기였던 1964년에 벌써 한국을 떠났고 캐나다에 이민을 갈 수 있었던 특별한 한국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서슴지 않고 대한민국이 가장 어렵고 가난했던 1964년 서독 루르탄광에서 광부로 일하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고 했다. 그들은 좀 당황스러워하며 참 용기있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1964년 12월 10일 고 박정희 대통령 부부는 서독에 파견된 한국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루르탄광을 방문하고 힘들고 가난한 대한민국을 위해 그들과 함께 흘린 눈물은 마침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오늘날 한국국민에게 무한한 자랑과 긍지를 주는 산업화된 대한민국을 건설하게 된 원동력이라 설명했다. 오늘날 당신처럼 한국국민이 가장 즐기는 세계여행도, 명품 구입도, 풍요로운 삶도 모두 그들이 흘린 눈물과 피의 대가이며 결과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3백만이 넘는 한국의 젊은 실업자들도 자신과 국가를 위해서 미국과 캐나다 이민도 가야 하고 세계 어디든지 일자리를 찾아 대한민국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이런 용기있는 한국인들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진정한 애국자라고 했다. 


 나의 말을 듣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은 가난으로 죽을지언정 어렵고 힘든 노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2백만이 넘는 외국노동자들이 한국인이 원치 않는 어려운 노동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배고프고 가난했던 한국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젊은 부부에게 과거 역사를 열렬히 설명하기란 너무나 높은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되어 대화를 멈추었다. 그리고 Strasbourg 안내책자를 보고 Fashion Street로 안내하는 Note를 써서 그들에게 주고는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고 박정희 대통령을 군사독재자라고 온갖 독설을 퍼붓고 있지만 지금까지 어느 대통령도, 정치인도, 종교인도 그리고 학자도 대한민국을 위해 불타는 애국심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안보질서를 파괴하며 부정하고 배반하는 모습과 부정부패 비리로 썩은 돈봉투 때문에 수갑차고 감옥가는 모습들은 진절머리가 날만큼 보았다.


 마침 Strasbourg T.V에서 들려오는 Beethoven Symphony No 9 "Choral" 을 감상하며 나는 Strasbourg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된 것을 무한히 감사한다.
 

2015-03-12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