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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구름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가 흰 구름 보면/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라/ 즐거워 즐거워 노래 불러요/ 우리들 노래 소리 하늘에 퍼져/ 흰 구름 두둥실 흘러가면은/ 모두 다 일어나 손을 흔들며/ 즐거워 즐거워 노래 불러요


 위는 유호가 쓴 노랫말에 한용희가 멜로디를 붙인 동요 ‘푸른 잔디’의 1절과 2절이다. ‘푸른 잔디’ 같은 노래를 들으면 마음 한구석이 밝아오고 명랑해진다. 마치 수박 한 덩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막 자르려는 순간의 가벼운 흥분, 기쁨과 비슷하다고 할까.


 노랫말을 지은 유호는 ‘비 내리는 고모령’ ‘신라의 달밤’ ‘고향만리’ 등 주옥같은 대중가요 가사를 남긴 극작가 바로 그 유호인가?


 지금 계절은 팔월 초, 여름의 절정은 이미 지난 것 같은데 요며칠 3, 4일 계속해서 맑은 날씨에 하늘 가득 뭉게구름이 피어올라서 여간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여름 하늘은 멋이 없다. 설령 구름이 있다해도 뭉게구름이 아니고는 여름 흥취를 느끼기 힘들다. 여름 하늘은 곳곳에 흰 구름이, 마치 수 백대의 함대가 바다를 메우며 항해하는 것처럼, 여기도 뭉게구름, 저기도 뭉게구름이 피어올라야 제격이다.


 중국 동진(東晋)의 시인 도연명은 사계절 특색을 하나씩 끌어내어 지은 오언절구 ‘사시(四時)’에서 봄은 넘치는 물, 가을은 밝은 달, 겨울은 푸른 소나무, 여름은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峯: 여름 구름은 산봉우리처럼 아름답다)이라 하여 아름다운 구름을 꼽았다. 


 구름 중에는 호랑이나 곰이 웅크리고 있는 형상을 한 것도 있고, 연인 둘이서 서로 부둥켜 안고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 형상, 제주도와 울릉도를 포함한 완벽한 한반도 형상을 한 것도 있다. 성격 심리학의 잉크 블로트(ink-blot) 검사처럼 보는 이에 따라 제각기 다른 것으로 보이는 것이 뭉게구름이다.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섰거라 너 가는데 물어보자/ 막대로 흰 구름 가리키며 돌아 아니 보고 가노메라


 물 따라 구름 따라 정처없이 떠다니는 스님을 두고 지은 송강(松江) 정철의 노래다.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하는 물음에 아무 대답 않고 지팡이로 흰 구름을 가리키며 가던 길을 가는 스님은 정녕 어느 그림 속의 풍경이다. 그러나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고속도로를 메우는 요즘 세상에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떠다니며 운수행각(雲水行脚)을 하는 스님이 있을까? 


 요새는 스님도 벤츠를 타고 거들먹거린다는 세상. 스님도 교만해졌지마는 사바(娑婆) 중생들도 말할 수 없이 험악해진 세상. 대답 않고 지팡이로 흰구름을 가리켰다가는 “저 놈이 간첩이다. 간첩 잡아라!”고 고함치는 애국지사에 붙잡히는 날이면 몰매 맞기 십상이다.


 여름은 단연 뭉게구름의 계절. 하얀 색깔의 뭉게구름이 내 고향 뒷산 청량산(淸凉山)만한 거대한 덩치로 피어오르는 것을 볼 때는 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희열, 마음이 밝아오고 넉넉하고 부드러워진다. 내 심상(心想)의 밝고 명랑한 면이 폭발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다.


 뭉게구름과 나의 인연은 무척 오래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있는 예안면 소재지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낙동강을 따라 신작로(新作路)길을 2~30분 걸어야 했다. 간혹 누구와 같이 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혼자 걷는 고적한 길. 여름 맑은 날이면 오다가 청고개(靑峴) 마루에 앉아 쉬면서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이 외로운 시골아이에게는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지금 청고개엔 인적이 끊어지고 학교 오갈 때 오르내리던 길도 해가 갈수록 이지러져 간다. 장마에 길이 여기 저기 토막이  나고 사람 키보다도 더 큰 숲과 나무들이 밀림을 이루고 있다. 내가 E여자대학에 몇 년 나가 있을 때만 해도 초등학교 같은 반에서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던 강 건너 동네 늘메에 살던 녀석, 나의 다정한 친구 C와 같이 청고개에 가서 옛날 학교 다니던 길을 걸어보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탱크나 장갑차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엄두도 못낸다.


 지금도 여름 맑은 날이면 60년 전 오늘과 마찬가지로 청고개 마루 위로 흰 구름은 피어오른다. 그러나 그 고개 넘어 옛 시절은 온데 간데가 없다. (201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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