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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리(別離)

 

 어느 조경학자가 우리나라 한시(漢詩)에 자주 등장하는 초목의 빈도를 조사했는데 제1위를 차지한 것은 소나무도, 국화도, 대나무도 아닌 버드나무였다고 한다. 이 조경학자는 버드나무가 부드럽고, 우리의 생활공간 가까이 있어서 자주 눈에 띄기 때문에 많은 시인들의 시재(詩材)로 쓰였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한시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낸 C교수의 해석은 다르다. 버드나무가 인용된 것을 우리 가까이에서 자주 볼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버드나무는 봄날의 서정을 일깨우는 나무임과 동시에 '이별과 다시 만남의 염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한시에서 버드나무가 빈도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면 그것은 봄날의 서정이나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았다는 말과 마찬가지라는 것.


 한시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까운 우리 옛 시조에도 버드나무는 가끔 나온다. 조선 선조 때의 함경도 종성 기생 홍랑(洪娘)이 고죽(孤竹) 최경창이 종성 부사를 그만두고 한양으로 돌아 갈 때 지었다는 시조를 보면 버드나무 ->이별의 연관성을 바로 볼 수 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현대의 시조 감상가들은 홍랑이 버들가지를 꺾어 보낸 것을 두고 멋과 낭만의 극치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별과 가장 자주 연관되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보낸 것을 보면(진부한 생각!) 미쓰 홍(洪)의 창의성이나 낭만은 극찬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홍랑의 선물을 요새 세상에 빗대어 말하면 그 흔해빠진 넥타이 한 개와 신사양말 한 세트를 선사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제 버드나무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한시(漢詩) 한 수를 보자.
 조선 중기의 풍류객이요 불세출의 문장가 백호(白湖) 임제의 <대동강의 노래>이다.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꺾어/
천 가시 다 꺾어도 가시는 님 못 잡았네
어여쁜 아가씨는 눈물탓이련가.
(離人日日折場柳 …)

 

 

 그런데 어찌해서 버드나무가 이별의 상징이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유명 시인이나 문장가, 이를테면 두보나 이백, 소동파 같은 문호들이 정운(情韻)의 표적으로 수목이나 물건, 장소를 그의 작품에 한 번 올리면 후세 시인들은 무조건 그 유명 선배의 일컬음을 따른다. 물론 조선의 시인들은 예외 없이 중국 시인들의 인습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에 많은 조선의 한시는 그 표현이 중국의 그것과 흡사하다.

 

 고려왕조 475년을 통틀어 이별 노래로는 단연 으뜸이요, 너무나도 유명한 노래, 정지상이 홍분(紅粉)이란 기생과 헤어지며 지었다는 <송인(送人)>이란 시(詩)가 있다. 이 시 첫 구가 "비 개인 긴 둑에 풀밭 고운데/ 남포에서 님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 " 하는 이별의 슬픔을 떠올리는 남포가 나온다. 이것은 옛날 중국의 굴원이 "사랑하는 님을 남포에서 보내며. " 라고 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 후로 남포란 말은 중국시인들에게는 물론 조선의 시인들에게도 '이별'을 떠올리는 애틋한 장소로 일컬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버드나무 ->이별도 무슨 논리적인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오늘날 연인들의 애틋한 이별장소나 이별을 암시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약간 부풀려 대답하면 내 눈에는 없을 것 같다. 구태여 있다면 페이스북(facebook)이나, 청계천 옆 어느 아이스크림 가게, 아니면 사방에 널린 커피 전문점이라 할까? 요새는 '애틋한 작별'이니 '보내는 마음' '그리움' 같은 정감어린 말은 어딘지 시대감각에 맞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세상 어느 구석에 있더라도 시내전화 하듯 웃고 떠들 수 있음은 물론, 지구의 이쪽 저쪽으로 떨어져 있어도 하룻밤만 지내면 서로 만나볼 수 있으니 애달픈 그리움, 버들가지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요즈음은 이별의 슬픔도 없어진지 오래고 만남의 기쁨도 곰탕집 드나들며 마주치면 손들어 인사하고 지나가듯 가볍고 얄팍한 감정의 나눔뿐이다. 세상은 이를 데 없이 편리한 세상이 되어 가지만 사는 재미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나같은 태곳적 인사만 그렇단 말이지 천만의 말씀, 요새 젊은이들은 그 반대다. 이들에게 세상은 갈수록 재미가 있는 세상이 되어간다. 귀가 헐도록 노래도 듣고, 밤새도록 말춤도 추고. 보고 싶은데 없어서 보지 못하는 것은 없는 이 좋은 세상, 여기가 바로 천당인걸!


 그러나 앞으로 수백 년이 지나면 오늘의 천당은 수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낡고 허물어지게 되고 말 것. 그러나 한 가지, 만나고 헤어지는 인생살이의 희비(喜悲)는 그대로 있을 것이다. 그런데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하다.(20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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